그의 연설에는 북한 핵무기 폐기 전제 조건과 인권개선 대목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는 북한이 “핵을 버리는 결단을 한다면, 이에 상응하여 북한에게 필요한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국제투자 유치를 우리가 나서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정도로 그쳤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국제투자 유치를 도와주겠다는 말로서 핵을 포기하지 않아도 그 밖의 대북 경제지원은 할 수 있다는 우회적 표현이었다.
박 대통령은 또 “유엔과 함께 임신부터 2세까지 북한의 산모와 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모자패키지(1000 days) 사업을 펼칠 것”이라고 약속했다. 북한의 “교통, 통신 등 가능한 부분의 인프라(사회간접자본시설:SOC) 건설에 투자”할 것이라고도 했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2000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 자유대학 통일구상 그리고 2007년 10월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10.4 공동선언을 상기케 한다.
김 대통령은 베를린 선언을 통해 북한에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건설해 주고 대북 경제지원을 과감히 추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 대통령도 10.4 공동선언에서 북한의 ‘기반시설(인프라) 확충과 자원개발을 적극 추진’한다고 했다. 김·노 두 대통령의 대북제안의 공통점은 대북 ‘퍼주기’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동안 종북 정권들의 대북 퍼주기를 비판하면서 대북 원칙을 주장해왔다. 그의 원칙은 분명하다. 북한이 핵 포기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한 경제지원은 없다는 것이며 북한이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는 한 5.24 대북제재 조치는 해제할 수 없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박 대통령은 작년 9월5일에도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된다면 북한의 인프라, 예를 들면 통신이나 교통, 전력확충, 국제기구에 대한 가입을 지원하려고 한다”며 북핵 폐기를 전제로 했다. ‘선 비핵화 - 후 경제지원’ 원칙이다. 북핵 진전이 없는 한 북의 인프라 건설은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북한의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 ‘선 핵 포기 - 후 경제지원’ 원칙이 꺾였거나 구부러진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천안함 만행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도 북한 '인프라 건설 투자'를 약속함으로써 5.24 조치도 뭉개버리는게 아닌가 걱정된다.
그밖에도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의회 조차 올 5월 하원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북한제재강화법안(HR1771)’을 입안했다. 이 법안에는 반인권 범죄를 저지른 북한 개인과 기관을 제재하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 인권조사위원장도 지난 3월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는 독일 나치 정권이나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즈 정권에 해당한다고 규탄하며 인권개선을 촉구했다.
하지만 북한 인권을 미국이나 유엔보다도 앞장서서 제기해야 할 박 대통령은 드레스덴 구상에서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이 화를 낼까 두려워 그랬거나 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을 의식한 탓이 아닌가 싶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들을 연상케 한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통일 대박’에 너무 쏠린 나머지 남북대화 재개와 정상회담 분위기 조성에만 집착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진정한 남북한의 관계개선과 평화정착은 북한에 인프라를 구축해주고 퍼준다고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주면 바뀐다’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대북 퍼주기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그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는 진정성을 보이고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다면, 드레스덴 구상을 반드시 유보해야 한다. 통일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밝혔듯이 ‘행운’도 따라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변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행운도 따르지 않았고 북한은 변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 3일만에 서해 북방한계선(NLL) 가까이로 해안포 500발을 일제히 포격, 3년 전 연평도에 이어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했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대북 제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고마음’ 표시 대신 ‘포탄 세례’ 뿐이었다. 김정은이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음을 실증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산모와 유아의 영양실조를 걱정하는 ‘모자패케지’ 지원 보다는 한겨울 온기 없는 반지하 월세방에서 라면도 배불리 먹지 못하며 집세와 공과금을 내지 못해 함께 자살한 ‘세모녀의 자살’ 재발 방지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세모녀’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이 정부의 지원 없이 내팽개쳐져 있다. 박 대통령은 그들부터 먼저 지원해야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북한의 산모와 유아 영양실조나 걱정해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서둔다고 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차분히 대북 원칙을 지켜가며 시간을 갖고 대비해야 한다.(Konas)
정용석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