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신라)의 三國통일은 멋으로 한 게 아니다. 살기 위하여 한 것이다. 宿敵(숙적)인 百濟(백제)가 의자왕의 登極(등극) 이후 서쪽에서 대공세를 펴고, 지금의 합천에 있던 대야성까지 함락시켰다. 북쪽의 고구려도 親(친)백제, 反신라적이었다. 배후의 倭(왜)도 전통적으로 백제와 친했다. 7세기 초의 신라는 사방이 포위된 形局(형국)이었다. 지금의 서울을 중심으로 한 漢江下流(한강하류) 지역을 생명선으로 지켜내기가 힘겨웠다. 당시의 객관적 國力(국력)은 군사력은 고구려가, 경제력은 백제가 더 강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지도층의 단합력에 위기의식이 보태진 덕분에 가능하였다. 亡國(망국)의 위기를 통일의 好機(호기)로 逆轉(역전)시킨 것은 金春秋(김춘추, 태종무열왕), 金庾信(김유신), 金法敏(김법민, 문무왕)으로 대표되는 지도층의 決死的(결사적) 자세였다. 위기의식이 통일의지로 승화되어 통일의 주체세력을 만들어냈다.
'통일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게 되었다'는 위기의식이 신라로 하여금 유일한 活路(활로)인 백제 고구려 멸망 작전으로 나서게 하였다. 대야성 전투에서 사위와 딸을 잃은 金春秋가 倭와 고구려를 찾아가 동맹을 꾀하다가 실패, 마지막으로 고구려가 장악한 서해를 건너 入唐(입당)했다. 唐태종을 만나 羅唐(나당)동맹을 맺음으로써 현상타파의 발판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목숨을 건 외교였다.
한국의 상황도 統一前夜(통일전야)의 신라와 비슷하다. 한국은 핵무장 국가로 둘러싸여 있는 非核(비핵)국가이다. 北의 핵미사일 實戰(실전)배치는 이미 성공하였거나 임박하다. 한국도, 미국도 核미사일을 막을 수단이 없다. 미국의 애매한 핵 보복 약속이 김정은의 한반도 공산화 의지를 꺾을 것이라고 믿고 웰빙에 전념하는 것은 5000만의 생존을 요행수에 의탁하는 무책임한 짓이다. '北의 核미사일 實戰배치'는 대한민국에 선택을 강요한다.
<핵무장한 북한정권에 굴종하여 살아가든지 그들을 무너뜨려 살 길을 찾아라.>
우리는 노예냐 주인이냐의 岐路(기로)에 서 있다. 자유냐 죽음이냐의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朴槿惠(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꺼냈다. 우리가 처한 절박성보다는 우리가 누리는(또는 누린다고 생각하는) 優位(우위)를 강조하는 여유 있는 用語(용어)이다.
군사적으로는 핵무장한 국가가 핵무장하지 못하고 분열된 국가를 흡수통일하기가 쉽다. 핵무장하지 못한 한국이 안으론 利敵(이적)세력을 키워가면서, 바깥으론 핵무장한 집단을 흡수통일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천지분간을 못하는 철 없는 짓으로 보일 수가 있다. 지금 김정은은 누르기만 하면 10분 만에 서울 상공에서 터져 한국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핵미사일 발사 단추를 만지작거리면서 통일대박론을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北이 선전포고 사유가 될 만한 무인기 침투 작전을 전방위적으로 하였다면 이는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짓이다. 도발을 하고도 "우리가 核미사일을 갖고 있는데, 어쩔래?"라고 나오면 한국군이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을지 모른다.
핵미사일 實戰 배치 상황에선, 통일문제를 경제적으로만, 여유롭게 접근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절박한 심정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신라 식으로 부딪쳐야 성공할 것이다. '통일 하면 번영한다'가 아니라 '통일 못하면 죽는다'는 자세라야 한다. 이게 가장 정확한 현실인식이다. 北의 核미사일 實戰 배치라는 현실을 외면한 '통일대박론'은 통일의 당위성과 환상론만 키운다. 이는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가져야 할 위기의식을 마비시킴으로써 김정은을 도와주는 결과를 빚고 말 것이다.
역사 교육을 강조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가 全國(전국) 고등학교의 90%를 차지하는 상황을 막지 못했다. 좌익들에게 逆利用(역이용)당한 것이다. 이념과 전략 不在(부재)의 통일대박론도 그런 식으로 역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 朴 대통령 말고 통일주체 세력이 있는가? 21세기의 화랑도가 있는가? 통일의 공격수가 있는가? 통일을 향한 決死的 자세가 있는가? 없다면 키워야 하고, 키울 의지가 없다면 核미사일이 서울 상공에서 터지지 않도록 하는 수비에 전념해야 한다.
통일대박론의 내용은 統一決死論(통일결사론)이어야 한다. 통일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감으로 무장해야 성공한다. 그래야 親中反日(친중반일)의 외교 노선이 통일에 도움이 될지, 害(해)가 될지를 가려내는 이성적 눈도 갖게 될 것이다. 신라는 對唐결전에 즈음하여 宿敵 백제를 도운 倭와도 화친하는 현란한 통일외교를 보여주었다. 살기 위하여는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1976년 국방부 순시 때 이런 말을 독백처럼 했다.
"통일은 언젠가는 아마도 남북한이 실력을 가지고 결판이 날 겁니다. 대외적으로는 내어놓고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 소, 중, 일 4대 강국이 어떻고 하는데 밤낮 그런 소리 해보았자 소용 없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객관적 여건이 조성되었을 때 남북한이 실력으로 결판을 낼 겁니다.”
객관적 國力(국력)은 한국이 우세하다. 문제는 통일의지이다. 國力을 군사력과 통일능력으로 전환시킬 국가적 의지가 없다면 강도를 보고도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없는 노예의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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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쟁과 천재지변이 가장 많았던 신라가 통일에 성공하였나?
한국 역사학계의 원로학자인 申炯植(신형식) 교수가 쓴 '新羅通史'(주류성 출판사)에는 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삼국시대의 전쟁통계이다.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신라로서 총174회이다. 다음이 고구려로서 145회, 백제는 141회이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 가야, 倭(왜)와 싸웠다.
고구려는 중국 및 북방민족과 가장 많이 싸웠고 백제와는 다음으로 많이 싸웠다. 백제는 신라와 가장 자주 싸웠다.
신라는 지진, 가뭄,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에서도 삼국중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다. 申교수가 三國史記를 분석하여 통계를 냈다. 삼국시대에 한정해보면 신라는 322회의 천재지변을 겪었다. 백제는 191회, 고구려는 153회였다. 申교수는 천재지변이 가장 많다는 것이 오히려 신라를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삼국사기의 記事(기사) 내용을 분석해보면 신라는 정치에 관한 기사가 가장 많다고 한다. 정치란 권력승계를 평화적으로 하는 기술이고 지배층 내부 및 백성들과 지배층 사이의 단합을 도모하는 예술이다. 신라는 王位 계승이 가장 안정적으로 된 나라이다. 지배층과 백성 사이의 단합도 三國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군사적 승리 이전에 정치와 외교의 승리였다.
申교수는 신라가 수행한 수많은 전쟁의 긍정적 면을 이렇게 분석했다.
<전쟁은 제도개혁이나 정치반성의 계기를 제공했고, 이것이 사회발전의 轉機(전기)를 가져왔다. 특히 신라는 통일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확장시켰으며, 對唐(대당)전쟁을 통해서 백제 고구려의 殘民(잔민)을 하나의 민족대열에 융합했다. 신라는 對外(대외)전쟁을 민족적 自覺(자각)과 융합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전쟁과 천재지변은 국가가 당면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다. 이 난관을 성공적으로 돌파한 나라나 인간은 강건한 체질을 터득하게 된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逆境(역경)을 극복한 결과였다. 역사에 공짜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국가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통일인데 남북통일이 요행수나 공짜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학이 아닌 미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