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는 정부의 ‘안전(安全)행정’이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난(災難)에 대처하는 정부 시스템이 부실을 넘어 황당한 수준일 뿐 아니라 공무원들의 책임 회피도 고질이어서 국가 기관의 기능에 대한 국민의 근본적 회의까지 불러일으킬 지경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민 안전’이 최우선 가치 중의 하나라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칭한 취지부터 공허하게 들린다. 세월호 참사 원인을 한꺼풀만 벗겨내면 ‘간판만 안전행정부’인 정부 조직, 중구난방 안전 시스템, 복지부동(伏地不動) 공무원 행태 등 3중의 잘못이 얽히고설켜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재난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은 모든 국가, 모든 정부의 책무다. 박정부의 안행부 개칭·개편 배경도 달리 있을 수 없다. 하지만 6000여만 원의 예산으로 현판·로고 등을 교체한 일 말고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는 비아냥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했다. 재난안전실을 안전관리본부로 이름을 바꾸고, 본부장을 1급 실장들 중 선임자로 임명하는 식으로 뭔가 바꾸긴 바꿨다는 것을 겉으로 보여주는 일에 그쳤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간부 경력이 안전행정과는 거리가 먼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오죽하면 안행부 공무원들에게서 “안전 분야 보직은 어쩔 수 없이 한 번 정도 거쳐야 하는 순환 보직일 뿐”이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겠는가. 재난 사고에 대처하면서 고생해야 하는 보직은 최대한 기피하면서 다른 부처의 조직과 인사를 주무르고 지방을 통제하는 갑(甲) 공무원이기를 선호하는 풍조가 만연한 현실에서 안전행정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책임 회피에 급급한 행태는 다른 부처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평소엔 손을 놓고 있다가 재난이 생기면 임기응변식의 매뉴얼을 내놓는 행태가 관행화해 있다. 정부가 보유한 각종 안전 및 위기관리 매뉴얼이 3200여 개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중구난방의 매뉴얼일 수밖에 없고 분량이 방대하기도 해서 담당 공무원들마저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부처 간의 협업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더더욱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대로는 ‘국민 안전’이 요원하게 마련이다. 박 대통령은 21일 “자리 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반드시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의 실천과 함께 안전행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이고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