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과 검찰이 22·23일 잇따라 세월호 선사(船社)인 청해진해운 관련 기업과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유씨가 관련된 종교
단체 등을 압수 수색했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부처 합동 점검단을 구성해 교통·가스·전력·항공·교량·화학물질 등 안전 위험이 있는 시설물들에
대한 점검에 착수했다. 뒷북이긴 해도 고칠 것을 최대한 찾아 고쳐야 한다.
사고 후 청해진해운과 관련해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보면 이
회사 소속 배들이 여태 큰 사고 없이 버텨온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우선 회사 자체가 승객 안전엔 손톱만큼도 관심 없고 돈만 노리고 영업했다.
국내 최대 여객선을 책임지는 선장을 1년 계약으로 쓰면서 월급은 270만원씩 줘왔다. 선장·선원들이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승객 안전을 앞세우는
사명감이 솟아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사고 전날 밤 인천항에서 다른 배들은 짙은 안개 때문에 출항을 포기했다. 세월호가 그날 밤 유일하게 인천항을
떠난 배였다. 여객선이라면 다른 배보다 더 안전에 신경 써야 하지만 청해진해운은 수입(收入)을 앞세워 출항한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일본서 18년 된 고물(古物) 선박을 들여오면서 객실을 추가로 지었다. 그러는 바람에 배의 무게중심이 51㎝ 높아졌다. 화물도 엉터리로 묶어
맸다. 인천항 출항 직전엔 출항보고서에 등록되지 않은 컨테이너가 추가로 선적되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배가 뒤뚱거리건 말건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욕심뿐이었다.
청해진해운 소유주인 유병언씨는 1987년 종교 단체가 관계된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으로 수사받은 일이 있다.
유씨는 결국 신도들 헌금을 빼돌린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유씨는 한강 유람선 사업을 하던 세모그룹을 운영하다 1997년 부도를 낸 후
2000년대 들어 청해진해운을 세우면서 재기했다. 재산이 몇 천억원대라고 한다. 그는 청해진해운 직원들 한 해 안전 교육비로 54만원을 쓰면서
자기가 찍은 사진으로 만든 달력은 개당 500만원씩에 13개 계열사에 팔았다. 유씨가 거느린 계열사 간부 상당수는 유씨가 주도하는 종교 단체
회원들이라고 한다. 청해진해운 재산은 종교 단체와 연관된 환경 단체에 증여됐거나 환경 단체가 시골에 유기농 공동체 땅을 사는 데
투입됐다.
들여다볼수록 정체가 불투명한 이런 기업이 어떻게 수많은 승객들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여객선 사업을 해왔던 것인지 납득되지
않는다. 유씨 소유 세모그룹이 갖고 있던 인천~제주 독점 운항권은 세모가 부도난 후 다시 유씨 회사인 청해진해운으로 넘어갔다. 승인권을 가진
해수부 비호(庇護)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사고 후 해수부, 산하단체, 해운업계가 연결된 '해수부 마피아' 유착 카르텔에
관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선박 감독 업무를 맡는 한국해운조합 소속 운항 관리자는 선박 출항 전 화물 과다 적재 여부를 자기 사무실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걸로 끝내기도 했다고도 한다. 해수부 직원 수는 3500명이나 된다. 이들 귀에도 들어갈 얘기는 다 들어갔을 것이다. 이런
엉터리 선박 감독에 대해 해수부 공무원 중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해수부엔 자기 할 일을 다하는 공무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부처 공무원들이 일을 안 하고 있으면 그걸 감시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감사원 임무다. 감사원이 해운업계
적폐(積弊)에 대해 메스를 들었던 적이 없다. 지역 검찰·경찰도 해운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위치다. 그걸 몰라 여태 손을 안
댔다면 지역 비리를 인지(認知)하는 기능이 망가진 것이다. 세월호 사고 후 업계 속사정에 대해 전문가들의 증언·해설이 쏟아지고 있다. 그들의
전문 지식도 안전을 도외시하는 해운업계의 비정상 경영을 바로잡는 데엔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청해진해운 선원·직원들도 사고가 터진 후에야
"평소 늘 불안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자기 조직의 심각한 문제를 내부에서 과감하게 고치려 하거나 그게 안 되면 사회에 고발하는 풍토가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때까지 회사 내부는 물론 해운 안전 감시 기구, 해수부, 검찰·경찰, 감사원 등 거의 모든 단계에서 비정상과
비리를 견제·감시하는 교정(矯正)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원자력에 들어가는 제어 케이블 시험 성적서 위조 문제가 터진 게 작년
5월이다. 그 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전수(全數) 조사를 해봤더니 부품에서 2114건, 기기에서 62건의 성적서 위조가 확인됐다. 업계 종사자의
제보가 계기가 돼 드러나기 시작한 원자력 분야의 곪은 상처가 이 정도 규모였다. 해운업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원자력·해운 외의 다른 분야도
감시·견제 시스템 고장으로 곪은 상처가 터지기 직전 상황인 곳이 한두 곳이 아닐 것이다. 어느 분야 하나 국민이 안심할 수 없는
나라다.
지금 대한민국은 우리 사회의 허점들을 스스로 고치고 보완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앞으로도
자연재해(災害)이건 인적 사고이건 예측하기 힘든 시기에 예측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언제든 재앙이 닥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재해·사고가 국가와
국민에게 최소한의 피해만 끼치고 수습될 수 있게 하려면 평소 감춰져 있던 안전 취약(脆弱) 요소들을 하루빨리 드러내 꾸준히 수술해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그런 '안전 업그레이드'를 위한 반전(反轉)의 계기로 삼아야 그 많은 무고한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