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16 세월호 참사의 영령이 안치된 정부합동분향소에 29일 조문했다.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박 대통령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진도 현장을 방문, “마지막 한 분까지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이 이야기가 지켜지지 않으면 관계자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해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그 뒤 국민 눈에 비친 정부의 모습은 그런 약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정홍원 총리가 대(對)국민 사과를 하고 사의를 표명하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박 대통령이 사과한다고 해서 비극적 상황이 없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안전(安全) 행정이다. 불행히도 현실은 거꾸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과 함께 ‘국민 안전’을 국정 주요 지표로 제시하고,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으며, 그 산하에 안전관리본부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몇몇 사례들만 보더라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등의 ‘안전 무능’이 적나라하다.
지난 1월 세월호 소속사인 청해진해운의 전 중간관리자가 작성한 A4용지 11장 분량의 민원이 ‘국민 신문고’에 올라왔다. 세월호와 쌍둥이 배인 오하마나호의 지난 2006년 연속적인 사고 무마와 배후, 성수기 정원 초과 운항 및 운임 횡령, 불법적 비정규직 채용기간 연장, 임금체불 등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단순 임금체불 사건으로 간주해 고용노동부로 이첩하는 것으로 그쳤다. 지난 2월 경주 리조트 붕괴 참사가 벌어진 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실무진이 재난 예방과 훈련, 대응 관련 업무를 총괄할 ‘재난안전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보고서를 만들었으나 “우리 업무도 아닌 것을 왜 보고하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도 “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고 밝힌 판이다. 청와대 자유게시판의 대통령 문책 게시글로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는 우연이 아니다.
총리실 산하 정부업무평가위원회는 지난 3월 말 국가재난관리체계에 대해 ‘우수’ 평가를 내렸다. 세월호 희생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재난관리체계 및 예방점검 강화로 국민의 안전체감도가 향상됐다’며 이런 평가를 내렸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안행부가 만든 위기관리 매뉴얼은 구체적인 대처 방법은 없고 책임회피용 언론 대응 방법만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고 있다. 정작 필요한 골든타임 매뉴얼 같은 것은 빠져 있다. 해수부는 해양 관련 이권단체들이 소유한 건물에 장관·직원들의 서울사무실을 별도로 두고 있다고 한다. 무능을 넘어 부패까지 짚인다. 혁명적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