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與野)는 오는 27일부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원내대표들이 바뀐 뒤 두 번 만의 공식 회담에서 나온 합의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정조사는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조사로 안전 사회에 대한 종합 보고서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야가 국정조사 개시 시점을 불과 10일 뒤로 정한 것은 서둘러도 너무 서두른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진도 현지의 실종자 가족들이 "실종자 수색이 끝날 때까지 정치권 차원의 조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27일까지 실종자를 다 찾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조사 대상인 해양수산부장관과 해양경찰청장만 해도 지금 실종자 구조와 사고 수습을 총괄 책임지고 있다. 해수부장관은 진도에 상주하고 있다. 이들에게 국정조사에 응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 이들은 16일 국회 상임위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정치 일정상으로도 27일 국정조사 개막 후 1주일 뒤에는 지방선거가, 7월에는 '미니 총선'이라고 불리는 국회의원 재·보선이 예정돼 있다. 정치권 속성상 눈앞에 닥친 선거보다 국정조사에 더 힘을 쏟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정치권이 9·11 테러를 당하고 초당파적인 조사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건 사건 발생 후 442일이 지나서였다. 미국 의회가 우리보다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국정조사에서는 사고 원인과 구멍 난 구조 체계, 이번 사태를 불러온 업계와 감독 기관의 유착 실태를 파헤쳐야 한다. 더 나아가 나라 전반의 안전 시스템과 국민 의식을 개혁할 수 있는 방안까지 찾아내야 한다. 이 일을 제대로 해내려면 여야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사전 검토와 준비 기간을 가져야 한다. 조사 대상인 정부와 업계, 관련자들도 마찬가지다. 27일까지 불과 열흘 동안 뭘 할 수 있겠는가. 이 상태에서 국정조사에 들어가면 TV 카메라 앞에서 증인들을 호통치고 여야가 삿대질만 주고받다 끝나는 '정치 쇼'가 되풀이될 게 뻔하다.
지금 중요한 건 국정조사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통해 얼마나 완성도 높고 실천 가능한 안전 보고서를 내놓고 그걸 토대로 얼마큼 실행하느냐가 핵심이다. 이 목표만 이뤄낼 수 있다면 조사를 언제 시작하느냐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날림으로 국정조사를 하려는 것은, 여당은 빨리 문제를 넘겨버리고 싶고, 야당은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안전'은 겉으로 하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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