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가 삶의 기본이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묘소 가까이 움막을 마련하고 거기서 기거하며, 제대로 씻지도 않고 먹지도 않던 효자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시대의 효자들 중에는 3년이라는 긴 세월, 날마다 곡(哭)을 하며 슬퍼할 수 있는 ‘뛰어난 인물들’이 있었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군대에 가서 전사할 수 있습니다.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은 이 어머니는 여러 날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을 할 것입니다. 자살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옆에서 함께 통곡해주는 이웃과 친지들만 있으면 외아들을 잃은 과부는 정신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울어주던 사람들은 마땅히 그 자리를 떠야 하고, 함께 웃어줄 사람들이 찾아와서 음식도 권하고 웃기기도 하면서 이 과부의 가슴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하는 일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산 사람들도 다 죽어야 한다는 주장은 있을 수 없습니다.
슬프지도 않으면서 슬픈 척 하는 인간들을 보면 속이 뒤집힙니다. 광대짓을 하고 우스갯소리를 해야 밥을 먹는 사람들도 우리나라에 상당수 있는데, 나도 그들의 등장을 고대합니다. 슬픔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김동길(www.kimdonggill.com) ‘자유의 파수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