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주교회의가 “기소권 수사권 국가독점은 안 된다”고 했단다(jtbc 보도). 천주교 주교들이 이러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다수 주교들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그런 점도 있을 터이고,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의 집단적 성향이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소권 수사권 즉 통치행위의 국가독점을 배척한 데는 중세기 이래의 로마교회와 세속국가 사이의 오랜 권력투쟁의 잔재인 점도 있을 것이다.
중세기 천주교회는 종교 권력이면서 동시에 정치권력 또는 통치 권력이었다. 그러다가 세속의 절대왕권이 확립되면서부터 로마와 세속국가가 피터지게 싸우다가 결국은 “씨저의 것(세속권력)은 씨저에게” 귀속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로마교회는 지금까지도 세속국가에 대한 ‘훈수’를 잊지 않고 있다. 개중엔 들어서 보약이 될 이야기도 없을 리 없다. 하지만 ‘훈수’ 중엔 “글쎄올시다…” 하고 느껴지는 것도 있다. “기소권 수사권의 국가독점은 불가”라고 하는 게 예컨대 그렇다.
세속국가는 통치행위(행정권 입법권 사법권)를 자격을 인정받은 국가공무원만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국가다. 이걸 부정하면 세속국가 특히 근대국가가 성립할 수 없다. 민간인 또는 임의집단이 통치권의 일부라도 행사한다면 그 국가는 이미 국가다움을 잃는 것이다.
주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건 근대 세속국가를 유일무이한 배타적 권력주체로 보지 않고 여러 다원적인 권력들 중 하나로 보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건, 대내주권을 독점하는 국가와 그 헌법질서의 구속력에 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국가를 여러 집단들 가운데 하나로 낮추보는 포괄적 교회권력이 있느니라” 하겠다면 더이상 나눌 이야기란 없다. 그렇게 하겠다는 데야 뭐라고 하겠는가?
주교들이 바라는 대로 임의집단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겠다며 너도나도 따로 떨어져나가면 국가권력의 통일성과 배타성은 무너진다. 주교들은 그래도 괜찮다고 할지 모르나 그건 겁나는 무정부주의적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건 곤란하다. 그렇다면 근대국가 탄생 초기에, 그리고 종교개혁 시기에 있었던 '성직(聖職) 대 반(反)성직' 싸움이 또 한 번 크게 붙어야 하나? 세속국가에 대한 성직자들의 월권(越權)적 자세가 좀 거시기하다.
류근일 2014/9/3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출처 조갑제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