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정립(鼎立)하면서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것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모든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어느 한 축이라도 작동을 멈추면 민주주의는 물론 국가 권한 행사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이것은 국가비상(非常) 상황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가 연출하고 있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추석 연휴 동안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이럴 거면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고 질책한 것도 바로 이런 위기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국회는 지난 4월 임시국회 이후 5개월째 법안 처리 ‘0’ 상태가 계속되는 등 입법 기능이 마비됐다.
또 국회의 중요한 의무인 예산·결산 심사, 국정감사도 중단된 상태다.
더 어이없는 일은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 상정만 기다리는 경제·민생 법안이 91개이지만 방치돼 있다.
상임위 단계에서 표류하고 있는 안건은 8000건에 가깝다고 한다.
8월에 마쳐야 하는 결산 심사는 차치하고
선진화법에 따라 12월 2일 본회의에 자동상정되는 372조 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안 심사도 막혀 있다.
그러면서도 방탄국회에는 한마음이고, 세비에다 추석 보너스까지 모두 챙겼다.
직무유기를 넘어 국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과반수 의석을 가진 여당의 무기력, 선진화법에 따른 거부권을 앞세운 야당의 무책임이 적대적 공생을 하고 있다.
무릇 국가의 쇠망은 순수한 외적 침입보다 내부로부터 무너져내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 일분일초도 아껴야 할 대한민국이
언제까지나 여야의 한심한 정치력에만 기대어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적극적 의정 리더십 발휘가 절실한 이유다.
법사위까지 통과한 안건들을 더 이상 지연시킬 이유가 없다.
국회법 제76조는 긴급한 경우 국회의장에게 개의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선진화법에 따른 독소조항이긴 하지만 국가비상 사태에는 시한을 정해 상임위를 건너뛸 권한도 있다.
현재의 입법부 마비 사태는 국가비상 사태나 다름없다.
정 의장은 이런 비장한 각오로, 국가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중대 결단의 단계를 밟아가길 바란다.
그래야 여야 정치권도 경각심을 새로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