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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정일 생가(生家)라 우기는 ‘백두산 밀영(密營)’ 인근에 최근 산불이 터졌다. 고의(故意)건 실수(失手)건, 심상치 않다. 월간조선 최근호는 “김정은, 신체·정신질환으로 3년을 못 버틴다는 게 美정보당국의 판단”이라는 기사도 실었다. 여러 나침반이 한 곳을 향해 가리키는 느낌이다.
이번 산불이 난 지역은 양강도 삼지연군 소백수특별구다. 북한은 김정일 생가가 있다는 ‘정일봉’을 중심으로 소위 항일유격대 유적들을 꾸며 놨다. 유격대원들이 나무껍질을 벗기고 김일성 부자를 칭송한 글을 써 놨다는 이른바 ‘구호나무’1000여 그루도 있다.
김정일 정권은 1980년대 중반 한 두 개도 아니고 ‘1만 2천점의 구호나무가 나왔다’고 공개했다. 내용도“조선의 영웅 김일성대장 만세!” “조선의 대통령 김일성” 이런 식. 북한은 구호나무 보호를 위해서 외국서 수입한 통유리를 씌우고, 그 안으론 아르곤가스를 넣는다. 전기장치로 통유리를 감싼 보호천이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 돼 있는데 이 비용이 나무 한 그루 당 한 해 2만 달러가 들어간다. 이번 산불에서 이 악명 높은 구호나무도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 가문의 거짓, 날조, 위선, 사악의 역사도 산불 앞에선 무력했다. 6만 명 주민이 동원돼 불을 간신히 껐다는 것이다. 악명 높은 구호나무도 이번 산불에서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화(放火)일까 실화(失火)일까? 알 수 없지만 일반인 접근이 거의 없는 성지에 난 산불은 웬지 심상치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한국 정치권은 종북(從北)·깽판·새 정치 사기극과 기회주의적 웰빙노선에 함몰돼 있지만, 북한 주체사상 시스템에 서서히 파열구(破裂口)가 생기고 있는 건 아닌가? 민심은 물론 천심도 이미 평양 정권을 떠나 버린 건 아닌가?
지난 3월에는 ‘김정은을 지지하라’는 포스터가 훼손된 사건이 터졌다. 3월8일 영국 텔레그래프지 보도에 따르면, 북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앞두고 김정은을 지지하라는 선거 포스터가 잇달아 훼손됐다는 것이다. 아래는 당시 썼던 글이다.
<텔레그래프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 “포스터 훼손 사건 때문에 북·중 국경 순찰 강화를 위해 파견됐던 군 병력이 투표소 순찰에 투입됐다”고 전했다. 포스터 훼손은 김정은이 북한 주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텔레그래프는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일본 아시아프레스 지로 이시마루 記者 말을 인용, 선거 포스터가 처음 찢긴 채 발견된 곳은 ‘평안북도 정주’이며 ‘양강도 혜산’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발생 즉시 지역 국가보위부 책임자가 해임됐으며, 이로 인해 군대를 동원해 24시간 투표소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북한 전문가 대니얼 핑크스턴은 “최근 북한 내 균열(龜裂)이 생겼다는 정보를 듣긴 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처음”이라며 “작은 사건이 큰 움직임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3월5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 북한 함경북도 일대 곳곳에서 방화와 유권자명단 훼손 등 선거 방해 목적으로 추정되는 범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유사한 사건. 민심 이반의 전형적 사례다.
김정은 포스터 훼손은 특히 주목할만한 사건이다. 김정은은 소위 수령, 김일성의 후계자로 권위를 가지며, 수령을 상징한 물건을 훼손하면 유일사상10대원칙(이하 10대 원칙) 위반으로 최고형에 처해진다.
10대원칙은 북한을 지배하는 사실상의 가장 높은 규범이다. 1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기 위하여 몸 바쳐 투쟁해야 한다’를 시작으로 3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는 조항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 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 작품, 수령님의 현지 교시판, 당의 기본 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10대 원칙 위반자는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지거나 공개처형을 당한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북한은 지난 해 12월12일 소위 ‘장성택 처형문’을 통해서도 김일성·김정일 모자이크영상작품 현지지도사적비 건립을 ‘가로막고’ 김정은의 친필서한이 새겨진 화강석을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했다’는 것을 처형이유로 들었었다.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 형상물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은 흔한 일이다. 2012년 6월 함경남도가 고향인 한 여학생은 홍수로 집안 가재도구와 함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급류에 떠내려가자 이를 건지려고 물속에 들어갔다 목숨을 잃었다. 2007년에는 한 농민이 급류에 떠밀려 가는 아내보다 초상화를 먼저 구해낸 사례가 한국 언론에도 보도됐다. 2004년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에는 초상화를 화마(火魔)에서 구하러 건물로 뛰어든 주민이 속출했다.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이른바 북한 미녀응원단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김대중·김정일 플래카드를 보고는 급하게 차를 세웠다. “플래카드가 너무 낮게 걸려있고 비를 맞도록 방치돼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응원단은 눈물을 흘리며 플래카드를 고이고이 회수해 자리를 떠났다. 김정은 선거포스터 훼손은 북한 주민의 노골적 불만을 드러낸 것이자 목숨을 건 일이다. 북한 주민이 3만8천 여 개에 달하는 김일성 동상 중 하나라도 까부순다면, 악랄한 3대세습의 권위와 상징은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
출처 조갑제 닷컴 written by (사)한국자유연합 대표 김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