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 서울디지털대 석좌교수
북한 실세 3인방의 깜짝 방문으로 부풀었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는 지난 7일 북한경비정의 NLL침범사건으로 크게 줄었다.
그나마 2차 고위급 접촉을 10월말과 11월초 사이에 갖기로 한 양측의 약속이 있어
남북대화를 살려낼 불씨가 남아있는 셈이다.
여기서 대화의 가능성을 진단하고 남북관계를 전망해 본다.
쑨쯔(孫子)는 승리하는 용병술의 요체를
“상대방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출격(出其不意)”하며,
“상대방이 전혀 준비하지 못한 곳을 공격(攻其無備)”하고
“군대는 신속함을 귀하게 여긴다(兵者貴速)“고 썼다.
북한의 외교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상업거래 방식으로 외교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전체주의국가들이 썼던 전사(戰士)방식의 외교를 한다.
외교를 전쟁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이다.
북한 3인방의 한국 방문도
한국 측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과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정부, 정당, 언론 할 것 없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너나없이 허둥대고 상황에 맞지 않는 반응을 연출했던 것이다.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가를 명분으로
한국을 전격 방문한 북한의 목적은 3인방의 면면과 북한의 행태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우선 김정은이 제일위원장으로 있는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황병서는
김정은을 사실상 대행했다.
김정은의 유고설을 잠재우고
북한군의 존재감을 과시하여 겁을 주려는 낡은 수법의 심리전을 수행한 것 같다.
노동당비서이며 국가체육위원회의 위원장인 최용해는
김정은의 체육정책 성과를 홍보하는데 필수적인 인물이다.
북한의 그 후 행태를 보면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여자축구에서 한국에 이겨 우승을 하고 아시안게임 전체 성적 7위를 기록한
북한 선수단의 성과를 체제선전에 활용하려는 것이었다.
평양귀환 후 승전소식을 알리면서 북한매체는
한국에게 진 남자축구 이야기는 빼고
한국에게 이긴 북한의 여자축구 승리와 아시안게임 성과만을 대대적으로 선선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관심은
노동당 대남당당 비서인 김양건 통일전선사업부장의 등장을 통해 나타났다.
그가 한국의 대화재개 요구에 대한
임기응변적 대응을 위해서 온 것인지
아니면 김정은의 대화의지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적 상황과
국제적 고립이라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북한은 남북대화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대화의 진전여부는 유고설이 계속 나돌아 불안정해 보이는 김정은 체제가
언제 안정을 되찾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북한매체가
남북대화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하고 있는 것을
대화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속임수가 기본인 병법(兵法)의 사고방식에 비추어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다.
다만 최근 NLL사건과 대북삐라살포 중지협박에 비추어볼 때
북한은 대화에서 특기인 벼랑 끝 전술로 자신의 의지를 관찰하려고 시도할 것 같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 측은 현 정부가 내결었던 원칙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지난 40년 이상 수많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뚜렷한 결실을 못 거둔 이유는
원칙 없이 대화를 위한 대화만을 했기 때문이다.
집단과 집단 간의 관계는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거래 실적과 신뢰가 쌓이면서 누적적(累積的)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했으면 남북관계는 상당한 정도로 진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대 정부는
원칙 없이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면서 남북대화에 목을 매 왔다.
남북대화는 곧 통일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기초했던 것이다.
남북대화는 통일의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남북관계만 잘 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남북관계 발전은 북한주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분단을 고착화시킨다.
지난 시기 요란하게 진행되었던 남북대화와 원칙 없는 대북지원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니었던가.
지금부터라도
우리 정부는 북한동포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통일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단호히 이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동포를
곤경에서 구출하고
통일에 도움이 되는 사안은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투자해야 한다.
이런 대원칙을 가지고 대화와 통일문제에 접근할 때만이
통일은 우리에게 대박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2014. 10. 16 현대불교 A31에 제목을 “인천성화 평화의 불씨로 살리자”고 고쳐 달아 실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