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9일 "무상급식은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것이지 (박근혜 대통령은) 한 번도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며 "다만
무상보육은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수차례 공약했다"고 말했다.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야권 교육감들이 무상급식 예산은 우선적으로 편성하면서
무상보육 예산 편성은 거부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무상보육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안 수석 발언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초등학생을 오후 5시까지 학교가 책임지고 돌보는 '돌봄학교' 공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돌봄을)
희망하는 초등학생들에게…급식 무료 제공'이라고만 되어 있다. 야당의 전면 무료 급식 공약과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의
여러 토론회에서도 '(무상급식은) 지자체 형편에 따라 하면 된다'는 정도의 말만 했다.
무상급식은 2010년 지방선거 때 야권의
경기교육감 후보가 처음 들고 나와 당선됐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무상급식을 주장한 범야권 후보가 이겼다. 그 후 무상급식에 관한 한
유권자들의 정치적 심판은 내려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무상보육을 선제적으로 공약한 것은 무상급식 이슈가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야권의 교육감들이 무상급식을 갖고 '공짜 복지'의 빗장을 열었다면 박 대통령의
무상보육 공약은 복지 논쟁을 더 확대시켰다고 볼 수 있다.
무상보육은 안 수석 말대로 영유아보육법 등 국가 법령에 따라 시행되고
있고, 무상급식은 그 근거가 지자체별로 제정한 조례(條例)다. 엄밀하게 따지면 지자체들이 법에 따라 무상보육 예산의 35%(지방), 또는
65%(서울)를 내게 돼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것은 위법(違法)에 해당한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무상급식은 법적 근거가
약하고 무상보육은 법적 근거가 확실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어느 한 정파의 수장(首長)으로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복리를 위해 일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다. 청와대가 대통령이 공약한 무상보육은 추진하고 야권이 주도한 무상급식은 알 바
아니라는 식으로 발뺌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국민은 대통령의 책임 회피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비명이 일고 있는 복지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 사태는 지난 4년의 선거 과정에서 여야가 표를 겨냥해 과잉 복지 공약을 내걸어 누적된 문제다. 무상복지를 앞장서서
밀고온 야권(野圈)의 책임이 크지만, 청와대나 여권(與圈) 역시 지킬 수 없는 온갖 복지 공약을 내걸었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것은 복지 혼란이 일어난 상황에서 공약을 취소하거나 축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데 대해 야권과 함께 공동으로 책임지겠다는 자세다. 그러고
나서 복지 제도의 전반적 재조정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