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19일 "북한에서 수십 년간 최고위층의 정책에 따라 '인도(人道)에 반하는 범죄'가 자행돼 왔다"면서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기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決議)를 채택했다. 또 북 정권 책임자들에 대한 '표적 제재'도 권고했다. 유엔 총회
제3위원회를 압도적 표 차이로 통과한 이 결의는 다음 달 유엔 총회를 거쳐 정식 발효된다.
유엔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북 인권 결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권력자들을 국제 법정에 세울 수 있는 유엔 차원의 근거가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사회가 이제부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북한 인권 개선을 압박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안보리 결의 사항인 ICC
제소는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당장 이뤄지긴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유엔 총회의 ICC 제소 권고는 효력이 영구적(永久的)이다.
북한 인권이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으면 유엔의 압력 수위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중국·러시아도 유엔에서 마냥 국제적 인권 범죄자로 낙인찍힌
'김씨 왕조(王朝)'의 변호인 노릇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은 이번 유엔 결의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유엔이 결의안 검토에
들어가자 북은 느닷없이 '인권백서'를 내놨고 유엔에서 인권 설명회를 갖는가 하면 유엔의 북한 현지 조사도 허용하겠다고 했다. 15년 만에
외무상도 파견했다. 얼마 전에는 장기 억류해 온 미국인 3명을 풀어주기도 했다. 북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인 까닭은 '대규모 반(反)인도
범죄'를 저지른 북 권력자들을 형사 법정에 세우겠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엄청난 공포와 압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인권 문제가 북한 권력의
급소라는 사실이 이번에 또 한 번 확인됐다.
이런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정반대로 우리 국회는 10년 가까이 북한 인권법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이 '인권 문제 제기는 남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 제정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유엔이
김정은 등 북한 권력자들을 국제 형사 법정에 세우겠다고까지 나섰는데도 대한민국 국회가 북한 인권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것은 더 큰 국제사회의
비판과 조롱을 부를 일이다. 국회는 다음 달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 결의 정식 의결 전에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켜서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북한 유엔대표부는 대북 인권 결의 통과 직후 "앞으로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 국방위와 조평통도
"누구라도 공화국의 최고 존엄(尊嚴)을 훼손하면 극단적 조치로 대응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북이 4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서해
NLL(북방한계선)과 비무장지대 등에서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와 군이 철저히 감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이 유엔
결의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향해 도발할 경우 북 권력자들이 국제 법정에 서는 날을 앞당길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