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여사의 검소한 식생활과, 김일성의 60억 불꽃놀이
1955년, 육영수 여사가 노량진에서 셋방살이를 하실 때이다. 보기에도 딱할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여사님은 항상 조용하게 미소를 머금고 생활하시는 것이 놀라웠다고 한다.우리 집 명물 콩나물죽육여사님은 이런 농담을 하며 아랫사람을 달래 주셨다. 그래서 살림의 어려움과는 반대로 집안에는 화기가 넘쳐흘렀다. 그 만큼 알뜰하고 또 살림이 어려웠다는 뜻도 된다.사모님이 지어 주시던 콩나물밥은 정말 별미였어요.(당시의 연락병이었던 한사람의 회고)1964년의 일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근혜가 주말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딸을 위해 몇가지의 음식을 장만하였다.저녁 식탁에 생굴이랑 평소보다 두어 가지 많은 찬이 차려져 나오자, 근혜의 눈이 휘둥그래진다.이러다간 신당동 집에 가서 살게 될 때 어떻게 하려고....어른스럽게도 앞일걱정을 하며 자칫 지금의 환경에 젖어 버리기 쉬운 주변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키곤 한다. 내 딸이지만 그 소박하고 성실한 성품은 기특하고 본도 받아야 한다고 대통령은 흐뭇하신 표정이다. 어린딸의 기특한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육영수여사의 수기에서)1956년 어느 날이었다.육여사는 손님 대접도 분수에 넘치게 허세를 부리는 일
- 이정민 (나라사랑 어머니회 회원)
- 2010-08-08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