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일본'은 최근 한 달 새 한국은 안중에도 없는 듯 폭주를 거듭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말 스웨덴에서 북·일 교섭을 갖고 북한이 납치 일본인 문제 재조사에 들어가면 일본이 독자적으로 실시해 온 대북 제재를 풀어주기로 합의했다. 이어 지난 20일엔 일제(日帝)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1993년 '고노 담화' 재검증 보고서를 발표했다. 다음 주에는 일본의 평화헌법 해석 변경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확정할 예정이다.아베 내각의 이 세 가지 조치들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거나 동북아의 평화·안보 질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과는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다. 일본은 과거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핵 저지를 위해 한·미·일 3국 공조를 강조해 왔다. 그랬던 일본이 북이 핵을 포기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데도 아베 총리의 방북(訪北)까지 검토하고 있다.문제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아베 내각이 고노 담화의 취지를 훼손하는 보고서를 내놓자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조태용 외교부 차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정부에 '한국의 우려'를 전달했다. 또 중국과 함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할 공동 자료집을 내는 방안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의장(빨간원) ⓒ 통합진보당 홈페이지 캡처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에서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석한 인사가 내란음모 사건은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주장해 논란이다.서울고등법원 형사9부 심리로 23일 열린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는 “사회에서 혐오하는 의견조차도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주장했다.박 이사는 “국가정보원은 지난 대선 시기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고 그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란음모 사건을 기획했다”며 “과거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처럼 실체가 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특히 “이 사건은 공론의 장에서 토론에 맡겨야 할 사안”이라며 “사법처리를 앞세우면 토론이 차단되고 우리 사회에서 비판의 자유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이에 대해 검찰은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고 후방을 교란하자는 얘기는 자유로운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며 “살인예비음모나 강도예비음모가 그런 것처럼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허용되어야 마땅하다. 그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자진사퇴와 관련, 보수성향의 대학생단체인 한국대학생포럼(이하 한대포)이 25일 새누리당을 향해 "새누리당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는 입장을 표했다.어버이연합, 시스템클럽 등 대표적인 보수단체들에 이어 대학생단체도 새누리당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문창극 자진사퇴 후폭풍' 보수단체 반발 거세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08787한대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힌 뒤 "더 이상 새누리당에 기대를 거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며 "이미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은 환멸을 느껴 대안정당을 찾고 있다"고 했다."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장 대국민 사과를 하고 늦게나마 정신을 차리시던, 아니면 이대로 해체해 버리시던 선택해야 할 때다."한대포는 "이제 와서 문 전 총리 후보의 애국심, 극일 정신을 설명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평생을 언론인으로서의 올바른 방향 제시를 해온 문 총리 후보를 온갖 비리와 권력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난도질 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한대포는 "박지원, 박영선 의원 같은 야당 지도부들이 문 총리 지명자에 대해 비난을 일삼는 것은 지극히 당
Flip▲ 아덴만의 여명 작전은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는 언론들에게 진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던 사건이다. [사진: 국방부·청와대 제공] 한겨레 신문이 말하는 ‘관행’, 통하는 곳과 통하지 않는 곳지난 23일과 24일 본지가 보도한 한겨레 신문 사진기자 A씨의 군인 폭언·폭행 사건에 대해 한겨레 신문 측은 “사실무근의 오보”라며 “엄정한 법적 대응”을 외쳤다. 정말 사실무근, 오보인가. ▲ 22사단 GOP 총기난사 범인 임 모 병장을 생포하는 작전을 펼치면서 출입을 통제하는 장병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와 통화한 한겨레 신문 관계자는 “큰 일 아니다. 관행 수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자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취재를 방해하는 군인들과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집회나 시위 현장 취재 상황을 잘 알지 않느냐? 경찰과도 그렇게 가벼운 실랑이들이 있는데 그와 비슷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취재를 제한하는 당국과 그런 실랑이는 관행 아닌가.” [관련기사]한겨레 기자 작전 중인 군인 폭행이 오보? 지켜보라!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208726한겨레 신문 측의 설명을
지난 23일 본지가 보도한 ‘한겨레 기자, 탈영병 생포 작전하던 초병 폭행 논란’ 기사에 관해 한겨레 신문 측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며 24일 자사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이다.“(생략) ‘한겨레’가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뉴데일리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겨레 기자는 작전 지역에서 다른 2개 신문사 사진기자들과 함께 취재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취재를 막는 장교와 언쟁이 오갔습니다. 언쟁은 3개사 사진 기자들이 취재를 막는 군에 함께 항의하는 차원이었을 뿐,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뉴데일리’가 ‘한겨레’ 쪽에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조차 없이 허위 사실을 보도한 데 대해 엄중하게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입니다.” 이에 한겨레 신문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연락했다. 어렵게 통화가 된 한겨레 신문 측은 “몸싸움은 있었을지 몰라도 폭행은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사진 기자들은 보통 집회나 사건사고 현장을 뛰면서 몸으로 부대낀다. 특히 집회나 시위현장 취재 알지 않느냐? 경찰들은 촬영을 막으려 하고 기자는 촬영하려고 몸싸움을 벌인다. 이번에 있었던 일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상으로 본다. 폭행이라는 표현은 좀 지나치다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대불총)과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은 2014년 6월23일14시~17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실에서 “법질서 파괴현상 진단과 개선”에 대하여“성직자의 정치개입과 위법행위 어떻게 볼 것인가?”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실시하였다.최근 성직자들의 정치참여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에서불교와 천주교 단체들이 뜻을 함께 했다는 것이 매우 의미있는 것이라는 평가이다. 두 단체는 본 세미나의 취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작금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에서 나타난 원인이 개인에서부터 단체에 이르기 까지 본분을 다하지 않고 법질서를 위반한 결과라는 국민의 소리와, 적체된 국법질서 문란을 바로 잡는 정부와 사법부의 개혁의지를 촉구 위하여, 종교단체들로서 종교문제를 중심으로 본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었다. 국민정신을 계도 해야 할 종교가 제 기능을 못하고 편향된 방향으로 신자들을 인도하고 있으나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되어 국민적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념적 분야에서는 국가보안법 반대, 주한미군철수, 6.15공동선언 이행 등을 주장하고,심지어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란 사찰내에 빨치산
함석헌을 문창극처럼 편집하면송평인 논설위원 악마의 편집은 무서운 것이다. 존경받는 함석헌 선생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갖고 내가 한번 그를 친일 반(反)민족주의자로 만들어보겠다. 함석헌은 조선이 망한 이유가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허탈해진 민중은 반항조차도 못한다. 그러나 민중이 그렇게 되면 그것을 짜먹고 살던 지배계급도 망하고야 만다. 그것을 모른 데가 우리나라 양반의 미운 점이다. 이것을 뜻을 붙여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노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그는 일제의 35년 식민지배도 받아야 할 교육이고 겪어야 할 시련이라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많은 민족이 해방이 돼도 우리는 빠졌고, 3·1운동을 일으켜 민족 역사에서 전에 못 보던 용기와 통일과 평화의 정신을 보였건만 그것으로도 안 됐다. 받아야 할 교육이 아직 있고, 겪어야 할 시련이 또 있다.”함석헌은 심지어 식민지근대화론까지 폈다. “당초에 일본이 올 때 먼저 신작로를 내고, 철도를 깔고, 토지를 측량하고, 농사 개방을 하고. 광산을 캐내고, 어업을 장려하고, 공업을 일으키고, 은행을 세우고, 각 방면으로 자본주의화에 힘썼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양반
제30차 아태공포럼 발표내용 주제: 李承晩 박사의 국가관 및 治績功過강사: 김제원 (전직 공무원, 서울시청 국장 역임)일시: 2014.6.11. (수) 오후5시 우리나라 건국대통령 李承晩 박사의 國家觀 및 治績의 功過에 대하여 지금까지 듣고 배운 것과, 관련서적을 읽고 알게 된 바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발표하고자 한다. 李承晩 박사가 90평생을 사는 동안, 특히 잃어버린 나라의 독립을 위한 투쟁과 건국 전후의 시기에 지도자로서의 역할과 건국 대통령의 책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의미가 크다고 본다.이승만 박사는 조선조 태종의 세자 양녕대군의 16대손, 즉 왕손의 후예로 1875년 태어나 구한말인 1905년 전후 독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한국최초의 미국 박사학위를 받고 1910년 35세 때부터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청장년기를 보냈다. 해방 후인 74세 때, 즉 1948년 건국대통령으로 취임 후 6・25전쟁 및 休戰정국에서 나라를 수호해 오다가 4・19후 하와이 요양병원에서 1965년 7월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1. 李承晩 박사의 삶과 國家관련 主要事件 이승만 박사는 어떤 인물인가?李承晩은 지금부터 139년 전인 서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