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조선일보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이 대북(對北) 삐라(전단지) 살포를 강행하려는 북한 인권단체에 대해 또 다시 매국노 매국단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최 대변인은 1일 국회 현안 브리핑에서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오는 2일 삐라 10만장을 살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삐라를 계속 뿌리는 한 분명히 매국단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삐라 살포를 강행하려는 소수 핵심 탈북자들은 매국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이야기했다.최 대변인은 이날 또 “민주당의 대변인을 포함한 몇몇 관계자에 대한 극렬한 반대, 심지어 인신모독, 사실왜곡 등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서 삐라 살포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이름으로 필요한 조치를 다할 것임을 밝혀둔다”며 삐라 살포 단체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최 대변인은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에도 삐라 살포 단체를 매국단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강력 비판했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지난달 28일 최 대변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뒤, 영등포 당사 앞에서 언제나 김정일의 편에 선 최재성과 민주당이야말로 천하의 매국집단이라며 규탄 집회를 가졌었다.자유북한운동연합과 납북자가족모임은
KAL 858편 폭파범 김현희(46)씨가 최근 국정원 과거사위원회와 진실화해위원회가 KAL기 폭파사건의 실체를 뒤집기 위해 자신을 무리하게 조사하려 했다는 취지의 편지를 언론에 공개한 데 대해, 진실화해위 안병욱 위원장이 28일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반박했다.안 위원장은 이날 진실화해위 설립 3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김씨가) 국정원이 북한에 의한 KAL기 테러를 뒤집어엎기 위해 강압을 했다고 둘러씌우고 있다며 테러범이 선량한 여성인 것처럼 왜곡된 진실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2006~2007년 국정원 과거사위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해, KAL기 폭파사건 조작의혹을 조사했었다.김현희씨는 최근 공개된 편지에서 이미 사법부가 3심한 것을 국정원 과거사위가 4심을 하고, 진실화해위가 5심을 하는 행위는 인민재판이나 다름없다면서 사건의 실체가 명백한 사건을 국가 공권력으로 계속해서 재조사하는 것은 일종의 음모로 간주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안 위원장은 당시 김씨에게 의혹을 제대로 해소하고 부실조사 논란도 피하려면 당사자 증언이 꼭 필요하다며 열 번 넘게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결국 그때까지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KA
김용갑 전 의원, SBS라디오 출연..국가안보좌우 심각한 우려 표명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 씨의 장문의 편지가 이동복 전 안기부 특별보좌관에게 전달된 이후 이를 철저히 규명해야 된다는 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김용갑 전 의원(한나라당)은 김현희씨가 노무현 정부 때 ‘진술 번복’을 강요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국정조사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원은 27일 S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KAL기 테러 폭파 사건 주인공인 김현희씨가 이동복씨에게 편지를 보내 노(盧) 정부 당시 국정원이 방송 3사를 통해 KAL기 사건을 조작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김 씨의 신변안전을 노출시키고 인권을 유린하였다 이같이 주장했다.김 전 의원은 이어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정원이 정권 코드에 따라서 국가 안보를 흔든 것이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말하고 “사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 국회가 국정조사를 할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 청원 드린다”고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또한, 김 전 의원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흔들려고 전술을 쓰고 있는데, 과거 좌파정부처럼 끌려 다니고 굴복하는 대북정책을 해서는 안 된다”
어제 오전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W 컨벤션센터(구 하림각)에서 “대한민국지키기불교도총연합” [창립2주년 기념법회]가 열였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호법 호국의 정신으로 출발한 대불총이 2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각 종단과 사부대중들의 적극적인인성원과 격려하여주신 혜념으로 국가와 불교계를 위해 열심히 정진하고 있었음을 보고 드리기 위한 창립2주년 기념법회였다. 행사에는 600여명의 참석하였다.주요 인사로서는 천태종 총무원장 주정산 큰스님(격려사), 조계종 법규위원장 진천제 큰스님, 조계종 군종교구장 일면스님, 벽해 스님등 50여분의 스님들이 참석하셨고,국회의원 불자모임인 정각회 회장 최병국 정보분과위원장(축사), 김현욱 전의원(천주교 평신도 회장 : 축사), 이승만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인수 박사, 전 서울대 총장 박 봉식, 전기승 전 대법관,자유시민연대 유기남 고문 등 전 현직 주요인사 30명과 상당수의 예비역 장성들이 참석하였다,특히 대한민국 전몰군경유족회, 실향민중앙협의회, 특수임무수행자 동지회, 대한해외파견전우회 등 애국시민단체들의 불자회 회원들이 참석 등으로 대불총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가름할 수 있었다. 박희도 회장은 인사말을 통하여 대불총의 창
북한의 18호 평남개천 정치범 수용소 실상이 최초로 공개 됐습니다. 대북인권단체 ‘자유북한 캠페인’ 은 북한정치범수용소 철폐를 위한 창립식을 갖고 국군포로 자녀 임경식 씨가 완전통제국역인 18호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 실상을 증언했습니다.자유북한 캠페인은 18일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 창립식을 갖고 완전 통제 구역인 18호 평남 개천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했습니다.그동안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완전 통제 구역 14호, 22호 수용소는 공개됐지만 18호 정치범 수용소의 인권유린 실상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라고 자유 북한 캠페인이 측이 밝혔습니다.이날 국군포로 자녀인 가명의 임경식 씨는 18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2003년 말 북한을 탈출하기 까지 20년 동안 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김씨는 18호 수용소 지도를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여기가 수용자들이 사는 마을 이예요. 제가 여기 있을 때는 약 10만 명 군보다 크다고 그랬거든요. 그 안에 역이 7개, 학교가 8개 있었어요. 그리고 여기가 탄광 철길에서 북창 화력 발전소로 탄을 실어 나르고 대동강 옆 섬 이예요. 공개처형을 여기서 했어요. 항상 섬에서 공개처형하는 장소예요. 연말이
검찰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에 대한 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또 다시 영장 집행을 저지하려는 민주당 측 인사들과 민주당 당사 앞에서 대치 상태를 벌였다.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 2명과 수사관 등 15명은 20일 오전 8시10분쯤 사전 구속영장 집행을 위해 김 최고위원이 농성 중인 서울 영등포 민주당사를 찾았다. 하지만 검찰의 영장 집행 소식을 듣고 당사로 몰려든 강기정·최재성 의원 등 의원과 당직자들이 물리적인 저지에 나서면서, 검찰 관계자들은 1시간 가량 민주당사 앞에서 대치했다.검찰은 오전 11시쯤 다시 당사로 찾아가 두 번째 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또 다시 당직자들과 대치를 벌이다 오후 12시40분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대치 상태를 풀었다.검찰 관계자는 영장 집행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니다. 점심 먹고 와서 다시 집행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미경 민주당 사무총장은 이에 앞서 오후 12시22분쯤 당사 앞으로 나와 “우리도 검찰 측 뜻은 충분히 알았다. 우리의 뜻도 검찰 측에 충분히 전달됐을 것이라면서 검찰 측에 철수를 요구했다.검찰 측은 그러나 “우리는 정당한 사법 절차에 따를 뿐이며
국토에 물길을 여는 국가사업을 함부로 반대해서 안되는 이유대운하사업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한반도의 물길을 열어 물을 풍족히 쓸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구상이다. 산과 물 그리고 사람이 사는 모습이 고래로 우리의 산수화에 담겨진 우리민족의 낭만과 동경 그리고 염원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풍경이었다.그러면 우리나라의 산수화 풍경은 많은 경우에 그림으로나 볼 수가 있었으며 실제로는 그 냇물이 말라있는 기간이 너무 긴 편이었다. 우리나라의 지형과 기상의 특성상 강우량 그 자체는 1300미리에서 1500미리로서 타국에 비하여 결코 적은 량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강우량의 2/3가 약 3개월간의 雨氣(우기)에 내려버리고, 그 물은 강줄기가 짧고 경사가 급한 지형의 영향으로 85%정도가 단기간에 바다로 빠져나가 버려서 물이 필요할 때는 물이 없어서 논이 마르거나 벼가 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농번기에 旱害(한해)를 숱하게 겪어왔으며 이런때이면 물고 싸움이라 하여 자기의 논에 물을 한 모금이라도 더 대려는 욕심으로 이웃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사례도 적지 안았다.박정희 대통령의 치수정책으로 그나마 호남을 비롯한 남쪽지방의 절대적 한해를 방지할 수 있었으나 아
광주사태의 객관적 사실은 희생자 대부분이 시민군 총기 사고와 시민군 차량사고에 의해 다치거나 사망하였다는 사실이다.집단발포란 없었으며,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시민군에 의한 집단발포였다.총기사고는 실탄 30만발을 보유하고 하루 만발씩 아무데나 쏘아대었던 시민군이 낼 수 있었던 것이지, 5월 21일 낮 12시 경에야 한동석 중위로부터 200발을 건네받은 7공수여단 병력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5월 20일 밤에 폭도들이 MBC방송국에 방화하였을 때 타죽을뻔 한 1개 소대를 구출한 31사단(광주향토사단) 한동석 중위가 21일 도청광장에 갇혀 사지에 몰린 7공수를 뒤에 두고 헬기로 탈출하는 것이 미안하여 실탄 두 상자를 넘겨주었던 것이다.이것이 객관적인 사실이요, 진실임에도 2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광주사태 유언비어가 많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사태 유언비어는 맨처음 김대중의 최측근 윤상원에 의해 유포되기 시작하였고, 광주사태 초기에 서울에 올라와 유언비어 삐라를 뿌린 조선대 운동권에 의해 증폭되었다.1980년 5월 김일성의 목표도 남한에서 전국적 민중봉기를 일으키는 것이었으며, 김대중의 목표도 서울과 광주를 거점으로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