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중생을 위한 용왕제” < 서해 수륙 대제에 부쳐 > 시인; 김 하리기억해 달라 말 한 적 없습니다잊지 말아 달라 부탁 한적 없습니다내 이름, 내 얼굴 기억조차 못해도 괜찮습니다.그저내 조국 위해, 내 생명 바쳤을 뿐입니다.찔레꽃 향기 진동 하던 날혹은, 뼈 시린 겨울 어느 날 잘 가라는 인사도 채 나누기 전에이슬처럼 쓰러진 위국 충혼들이시여죄 없이 죽어 간 영령들이시여불러 도 불러도 대답 없는 영령들이시여나라와 중생을 위해 숭고한 생명을 바친 님들 이시여그 누가 그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가요?그 누구를 위해 목숨 바쳐야만 했던가요?내 조국 위해 고귀한 생명 바쳤건만 갈길 몰라 구천을 헤 메는 영혼 앞에목이 터져라 그리움으로 울부짖으며아들 이름 불러 보는 어머니 아버지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얼마나 외롭고 슬펐습니까?얼마나 절망스러웠습니까?2002년 6월 29일 외롭게 가신 님 들이시여 2007년 12월 7일 태안바다에서 고통스럽게떼죽음 당한 생명들이여!이제는 검은 눈물 거두십시오!자비로 우리들 겉에 다시 돌아온 님 들이시여!육신은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흩어지고空이되고 三界의 번뇌 다 끊으셨나니광명 연꽃으로 다시 오신 부처님 되 셨 나이다거룩한
한반도를 중심, 앞으로 예상되는 국제질서 동향은 어떤 변화 가능성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북한의 향후 위협 정도는 어느 정도나 될까?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포럼이 열려 관심이 집중됐다. 북한의 잔존전략은 크게 두 단계로 구성돼 우선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음으로써 외부 세계로부터 내정간섭을 차단하고 나아가 미국의 도움으로 국제기구, 국제사회에 진출함으로써 경제를 개선하는데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얻고자 합니다. 북한은 이 단계전략이 성공하면 핵보유의 우월한 지위에서 한국의 공산화를 추진하여 북한이 흡수하는 통일을 이루고 통일공화국이 완성된 후 베트남이나 중국식의 개혁을 해 나가려 할 것입니다. 또한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5년은 국제질서, 그리고 이에 영향 받는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는 혼란의 시대가 되리라 예상됩니다. 미국은 탈 냉전시대의 세계질서를 하나의 시장경제 질서를 수용하는 민주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아래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과 코소보전 등의 무력개입정책을 전개했으나 예상과 달리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 목표는 어느 곳에서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2008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북한 내 국군포로들의 실상을 담은 수기 ‘내 이름은 똥간나 새끼였다’ 출간기념회가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저자인 허재석 옹(78)은 6·25때 국군포로로 붙잡혀 북한에서 살다가 97년 탈북해 남한에서 지내왔다. 허 옹은 피랍·탈북인권연대(대표 도희윤) 자금을 지원받아 수기를 냈으며, 같은 날 이 단체의 창립 7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허 옹을 비롯한 국군포로들은 6·25 이후 북한에 억류된 이들이다. 戰後 포로교환 과정에서 1만3,469명(한국군 8,343명, 유엔군 5,126명)의 我軍포로가 돌아왔지만, 5만~8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는 북한에 계속 억류됐다. 허 옹 등 수 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들은 1956년까지 함경북도 아오지 탄광 수용소에서 강제노역을 당해야 했다. 이들은 이후 형식적 사회복귀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인간 이하의 생활을 보내야 했다.허 옹은 “내가 한국에 온 뒤 남은 가족은 모진 고통과 박해 속에 살아갈 것이고, 이 수기를 쓰면서도 가족들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았다”면서도 “그러나 죽기 전에 북한의 실상을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허 옹의 책제목 ‘내 이름은 똥간
국가보훈처는 지난 3월 31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승려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광복 후에는 조국 통일을 위해 혁신 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신 김성숙(1898.3.10 ~ 1969.4.12) 선생의 탄신 110주년을 맞이하여 선생의 공훈을 기리고자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김성숙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이유로 “1. 일제강점기 조국 광복을 위해 승려에서 임정 국무위원 등으로 활동 2. 광복 후 민족주의 실현을 위해 현실 정치인으로 온갖 고초를 겪음”이라 밝히며,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포스터 1만 5천부를 제작 배포하고 중앙일간지 및 정기간행물 등에 특집기사를 게재 김성숙을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25일 보훈처가 후원하고 대한민국 선열유족회가 주관한 ‘4월의 독립운동가 김성숙 선생 공훈선양 학술강연’을 통해 밝힌 김성숙의 행적을 보면서 국가보훈처가 운암 김성숙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보훈처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학술 강연을 통해 본 김성숙은 3.1 운동 당시 비밀리에 독립문서를 만들어 살
BBK 소방수 논공, 김재수 변호사 LA총영사 내정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자신의 캠프에서 도와준 인사들에게 한자리씩 보은 인사를 하는 것 까지는 정권을 차지한 승리자의 마음대로라고 하지만 자질도 능력도 없는 사람을 해외 공관장으로 임명하여 그 파문이 국내는 물론 미국 동포 사회 까지 확산되고 있다. 야당은 이명박 정권을 향해 정실 보은 인사라고 하지만 너무한 인사이다. 도저히 눈을 감고 봐줄 수 없는 망발 인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李 정권은 로스엔젤레스 오렌지 카운티에 거주했던 김재수 상법 전문 변호사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로 임명했다. 또 애틀란타 총영사로 내정된 이웅길 전 미주총연 부회장은 이명박 캠프에서 잠시 발을 담갔다는 이유로 애틀란타 총영사로 발령됐다는 사실에 동포 사회는 크게 실망하고 있다. LA 총영사로 지명된 김 변호사는 김대중 정권 시절 이신범 전 한나라당 의원의 변호사로 김대중씨의 차남 김홍걸 씨의 로스앤젤레스 근교 팔로스버디스 호화 주택 구입에 대한 진실 규명 소송 변호사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다. 또 해외한인들의 참정권 회복에 앞장을 서기도 했던 그는 2007 대선에서 BBK 김경준 의혹 사건으로 곤욕을 치루던 이
“남북관계 경색돼도 북한인권 챙길 것” 통외통위 출석한 金 통일 “남북대화, 北반응 봐가며 검토” 양정아ㅣ2008년 04월29일ㅣ조회 10 [2008-04-29 17:14 ]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북한인권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 전체회의에 출석, ‘대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북한인권 문제는 챙긴다는 게 정부의 의지인가’라는 무소속 이해봉 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인권대화나 여러 기회에 북한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전략적 차원이 아니고 인류보편적 가치의 하나로 얘기하고 있다”며 밝혔다. 또한 대북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해 “인도적 지원은 수혜국의 요청이 있어야 가능한데 북한은 아무런 얘기가 없다”며 “북한이 요청하면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은 남북대화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남북대화는 북한의 반응을 봐가며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과거 남북간 합의 중에는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선언, 10·4선언도 있는데 이행되지 못한 것도 많다
유영익 교수가 전한 청년 이승만 “이승만은 진짜 천재” 28일 문화일보홀에서 열린『조갑제의 현대사 강좌』초청강사로 나선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대해 이같이 평했다. 이날 “이승만의 재평가”란 주제로 강연을 한 유 교수는,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청년 이승만’에 대해 장시간 이야기했다.서당에서 1등만 했던 신동 이승만은, 갑오경장 이후 과거제가 폐지돼 벼슬길이 막히자 다른 진로를 찾게 된다. 그가 생각한 다른 ‘출세길’은 바로 영어를 배우는 것. 이에 이승만은 배재학당을 들어갔다. 이후 그의 ‘평생 모범’인 서재필을 만났고, 관리가 되려던 생각을 바꿔 ‘개혁가’가 되기로 결심한다.졸업후 이승만은 나라가 못사는 이유가 ‘전제군주제’에 있다고 보고, 일본과 영국같은 ‘입헌군주제’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고종을 폐위하고 박영효를 실권을 가진 총리대신으로 앉힌다는 내용의 쿠데타에 가담했다 발각, 옥살이를 하게 된다.당시 이승만의 이같은 생각은 곧 ‘역적모의’가 되는 것이다. 중죄인이 되어버린 이승만은 자신이 사형을 당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평소에 그를 좋게 보던 서양인 선교사들이 정부에 탄원서를 내는 등
-이 동복訪美 중인 李明博 대통령이 19일 캠프 데이비드 별장에서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예고되지 않았던 대북 제안을 내놓았다. “서울과 평양에 상호 ‘연락대표부’를 설치하여 ‘상설 대화채널’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것은 남북 양측이 협의할 사안이지만 사무소장은 남북한 최고 지도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관계라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습성화되어 있는 국내 언론들이 이 대통령의 이 느닷없는 대북 제안을 놓고 또 다시 달아오를 기세를 보이고 있다. “북, 이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한다”(조선)ㆍ“평양에서 워싱턴을 가려면 서울을 거쳐야”(중앙)ㆍ“북은 한ㆍ미가 주는 기회 놓치고 후회 말라”(동아) 등 朝ㆍ中ㆍ東 3대 日刊紙의 선두 사설 제목들이 그 같은 분위기를 잘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대북 제안이 과연 그처럼 언론이나 듣는 이들이 흥분할 만 한 것이냐는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우선 북한과의 ‘연락대표부’ 교환 설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결코 참신한 구상이 아니라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