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공격에 대해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요격하는 소극적 방어만이 아닌 북의 핵공격 징후시 핵시설 및 방어시설을 선제 타격하겠다는 적극적 방어개념을 합참의장 내정자가 밝혔다. 26일 처음 실시된 합참의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육사 29기)는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의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무기)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냈던 김 내정자는 “북한의 핵무기가 우리(남한) 지역에서 작동하지(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계획을 세워서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내정자의 발언은, 그동안 군이 밝혀온 북한이 발사한 핵미사일을 패트리엇 미사일 등으로 공중에서 요격하는 개념이 사실상 최후의 방어수단을 이용한 소극적 방어였던것과 달리 북의 핵공격 전에 북의 핵시설 및 핵미사일 발사대를 정밀유도병기나 특작부대를 이용해 사전에 제거 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또한 이는 일종의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 개념이자 적극적 방어 혹은 공세적 방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부시 정부
국가정체성회복추진위원회(이하 국정협)은 28일 성명을 통해 제주시 봉개동에 건립해 준공을 앞두고 있는 「제주 4·3 평화기념관」개관을 연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 중앙위원 명의로 28일 동아일보와 한라일보에 낸 광고 성명에서 국정협은 제주 4·3평화기념관의 개관은 날조되고 왜곡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먼저 시정한 연후라야 한다고 주장했다.국정협은 이 광고 성명에서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서술된 날조·왜곡된 내용을 근거로 전시물을 제작하면서 군·경은 악으로, 폭도들은 봉기자로 미화하는 등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이 날 보도된 성명은 ▲ 「제주 4·3사건」은 남로당이 주도한 좌익폭동 이었다 ▲어떻게 군·경이 학살자이고 초대 대통령이 악마인가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좌익폭도도 희생자로 둔갑시키고 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대한민국 탄생의 고통의 상징물이어야 한다 는 4개항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한편 제주 4·3 6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27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제주 4·3 주간 선포 및 4·3 60주년 기념사업
티베트는 독립할 수 있을까?이광일/한국일보 논설위원 티베트 시위 사태를 접하면서 20년 전 일이 떠올랐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나는 메인 프레스 센터에서 외국 언론인 취재를 맡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공산권은 금단의 땅이어서 소련이나 동독, 헝가리 같은 나라의 기자 인터뷰는 충분히 기사거리가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백발이 성성한 백인이 리투아니아 독립을 외치는 팸플릿을 들고 한국일보 부스에 들어왔다. 호주의 한 통신사 기자인데 틈틈이 어릴 때 떠나온 조국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50년 만에 독립한 리투아니아아니,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합병된 게 언젠데 아직도 독립운동을 한단 말인가. 히틀러와 스탈린이 리투아니아를 소련에 합병하는 조약을 맺은 것이 1940년이니까 나라가 없어진 지 50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일제 36년간 나라를 잃었던 한국인으로서 그 할아버지 기자의 호소를 듣는 기분은 참 묘했다. 저런다고 소련이라는 강대국에서 벗어나 독립이 될까 싶었지만 꼭 기사화해야겠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 기사는 사회 2면 머리로 나갔다. 그런데 웬걸. 1년 반 뒤인 90년 3월 리투아니아는 독립했다. 다시 1년 후에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까지,
건국 대통령이 쓴 책, 건국 60주년만에 출판 건국 대통령 우남 이승만 박사의 탄신 133주년을 기리는 추모예배가, 李박사가 생전에 다녔던 서울 정동제일교회 본당에서 열렸다.26일 오후 ‘건국대통령 리승만박사 기념사업회’(회장 : 강영훈 전 국무총리)주최로 열린 행사에는 기독교계 외에도 많은 인사들이 참석해 ‘건국 대통령’의 탄신을 축하했다.특히 이날 행사장에서는 李박사의 저서를 재출판한 이라는 책이 소개됐다.李박사가 남긴 원고중 하나인 은, 일제가 한국기독교 민족운동 지도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데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105인 사건)에 대한 자료를 수집·기록한 것이다.이는 단순히 기독교사에 국한된 기록이 아닌, 당시 정치사·외교사가 함께 게재된 한국근대사의 중요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이승만 박사는 을 저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무릇 이 글을 쓰는 뜻은 일본의 잘못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한 바를 알리고자 함이다. 이 뜻을 알고 행하기를 힘쓰길 바라며, 이 글이 더 나아가 우리 민족 전체에게 유익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건국대통령 탄신을 축하하는 현직대통령의 화환(왼쪽). ⓒkonas.ne
12・12 사건은 8・15해방과 건국, 5・16혁명과 함께 한국현대사에서 우뚝서야 할 만큼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 각자에게 비쳐진 12・12의 영상은 난무하는 소문에 따라 달라지고, 기자들의 글쓰기에 따라 달라지며,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것이었다.세상은 각자의 머리 속에 있는 것만큼만 보인다. 역사적 인물, 역사적 사건을 놓고도 사람마다 평가가 다를 것이다. 그러하기에 같은 12・12사건에 대해 전두환 시대의 재판관들은 정승화를 죄인으로 재판했고, 세상이 바뀌어 민주화 세력이 사회여론을 지배할 때에는 헌법이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까지 위반해 가면서 전두환을 죄인으로 재판했다. 어제의 역적이 충신이 되고 어제의 충신이 역적이 된 것이다.1979년 12・12사건으로 체포된 정승화는 1980년 3월13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김재규 내란을 방조한 혐의로 징역10년을 선고 받고 같은 해 3월18일 관할관의 확인조치에 의해 징역7년으로 감형, 동년 3월25일에 항소를 취하함으로써 3월26일 형이 확정되었다. 이어서 1980
右派는 휴업, 左派는 대중속으로 북한해방을 위한 세미나에서 터져나온 우파들의 푸념 우리 체제로의 통일, 즉 자유통일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중인 청년우파 단체 ‘북한해방동맹’(공동대표 김성욱 外)이「북한급변사태와 자유통일방안」을 주제로 2차 세미나를 열었다.북한해방동맹은 지난달 15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북한급변사태 대비와 올바른 대북정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가진 바 있다.(2월15일자 코나스 관련기사 참조)25일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2차 세미나에 참석한 북한해방동맹 멤버들은 “대한민국은 對北작전을 통해 북한의 급변사태를 통제된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며,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좌파진영에서 말해왔던) ‘연방제’의 亦적용 및 군사적 북진(이 경우 국군단독 북진, 한미연합군의 북진, UN을 통한 북진 등이 있다)을 통해 자유통일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들은 “북한의 급변사태, 북한해방, 자유통일, 선진강국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개념”이라며, “이를 위해 (정부·국민의) ‘통일의지’가 절실하다”고 피력했다.이와함께 “향후 자유통일을 기치로 내건 新보수세력이 나와야 한다”며 “이는 新보수운동, 新보수정당, 新보수정권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주제발표에
오늘의 티베트 사태와 그 해결책 인왕산인 최근 티베트(西藏)에서는 주민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중국의 군대가 그 반란에 대하여 대대적인 진압 소탕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백수십명의 人命이 살상되었다고 하며 또 많은 시위군중이 잡혀가서 가혹한 고문이나 問招(문초)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국인 보도진이 모두 강제 추방되었으며 보도가 엄격하게 통제되어 있는 상황이라 그 피해의 진상을 파악할 길이 없다.티베트는 국토의 상당부분이 해발 4,500m 나 그 이상의 산악이나 不毛地(불모지)인데 크기는 광대한 중국 대륙의 8분의 1보다 더 큰 편인데 인구는 250만을 조금 넘어설 수준이라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地下資源(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앞으로 개발 만하면 많은 富(부)를 만들어 낼 가능성을 가진 나라라고 알려져 있어서 중국은 毛澤東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이 지역을 强占(강점)하며 개발을 기도해 왔다.그래서 농업집단화에서 남는 인력을 티베트로 보내어 티베트를 중국화하기 시작한지 오래이라고 한다. 이에 반말하는 티베트인들의 抵抗(저항)을 분쇄하다가 티베트의 寺院(사원)을 공격하고 저항하는 승려들을 마구 잡아들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래서 티베
남로당의 실패와 김대중 노무현의 좌파 전략 나는 개인적으로 김대중과 노무현을 좌익, 즉 누구보다도 분명한 적화통일론자로 평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이 평가에 대해 의심을 품거나 불만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방 후 번창했던 남로당의 60년 전(前) 역사를 도입해 설명하고자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우리가 왜 이번 총선에서 좌파들을 국회로부터 추방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1) 남침 실패의 두 가지 교훈 북한 김일성이 땅을 치고 후회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6.25 때 서울을 점령하고 3일을 머문 일이다. 서울 점령 후 무려 3일. 만약 그 기간에 인민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곧바로 부산으로 진격하였더라면, 미군과 유엔군은 군대를 파견할 시간을 벌지 못하였을 것이고, 남한은 말 그대로 적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은 서울에서 3일을 기다렸다. 남침만 한다면, 30만 남로당원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박헌영의 말만 믿은 것이다. 김일성은 이 폭동이야말로 인민군의 남한 침략이라는 전쟁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