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당초 ‘성실 국감’을 다짐하며 처음으로 추석 연휴 전후로 국감을 분리 실시하고 기간도 22일로 늘렸다. 피감기관도 지난해보다 37곳이 늘어 역대 최대 규모인 708곳에 달했다. 그러나 방위사업청의 한국형전투기(KF-X) 사업 부실을 밝혀낸 것 정도 외엔 이번 국감에서 뚜렷한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볼썽 사나운 집안싸움이 국감 정국을 압도했다. 새누리당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당 대표가 난타전을 벌였고, 새정치민주연합도 공천혁신안과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논란으로 진흙탕 싸움을 펼쳐 국감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총선용 정치공세도 역대 어느 국감보다 거셌다. 새누리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연일 거론하고, 새정치연합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맞서 국감장을 이념 전쟁터로 변질시켰다. 거칠고 조악한 의원들의 질의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불러놓고 “축구 한·일전에서 누구를 응원할 거냐”고 묻는가 하면 출석기관장의 성희롱 의혹을 추궁하며 “물건 좀 꺼내 보라”고 요구하는 게 국감장에 나온 의원들 수준이었다.
국감 NGO 모니터단이 이번 국감에 역대 최하인 D학점을 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러니 국감 폐지론이 갈수록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사실 제한된 시간에 수백 개 기관을 상대로 벼락치기 국감을 하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내년 출범할 20대 국회에선 13개 상임위로는 감당하기 힘든 피감기관 숫자부터 대폭 줄이고 상시국감 전환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지난달 18일 교문위 국감의 경우 무려 25개 기관을 불렀지만 답변 기회를 얻은 기관은 18개뿐이었다. 그나마 답변 시간이 1분도 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피감기관을 격년제로 나눠 감사하거나 하루 몇 곳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미방위에서 처음 실시한 화상 국감 확대도 검토할 만하다.
증인을 무더기로 불러놓고 대충 따지는 관행도 근절해야 한다. 19대 국회가 매년 부른 일반 증인 수(평균)는 17대(183명)에 비해 159명이나 늘어났다. 이 중 40%가 기업이다. 때문에 오너나 CEO를 증인에서 빼기 위해 의원실에 로비를 벌이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증인 채택이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국감에서 처음 도입된 ‘증인 신청 실명제’를 확실히 정착시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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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감은 막을 내렸고 국회는 예산과 4대 개혁 법안 정국으로 넘어갔다. 여기서도 정쟁으로 일관한다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매서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