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 사회부장
검찰은 묘한 조직이다. 직제상 행정부에 속하지만, 사법 분야 일을 한다. 국세청과 경찰청의 수장은 청장인데, 검찰청 수장은 총장이다. 대통령이 총장을 임명하지만, 청와대 권력과는 멀어야 한다는 게 불문율이다. 검찰의 독립성, 중립성 원칙이다.
오늘(2일) 김수남 제41대 검찰총장이 2년 임기를 시작한다. 어제 물러난 김진태 전 총장은 퇴임사를 통해 김 신임 총장에 대해 “폭넓은 경험과 훌륭한 인품을 겸비했다”고 상찬했다. 그는 후임으로 김 총장이 임명됐을 때 “순리대로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 안팎에서도 대체로 될 사람이 됐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로 입신한 인물이라며 반발했다. 정치적 사건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김 총장은 청문회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명심하고 모든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했다. 다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역대 총장마다 정치적 중립을 되뇌었으나 그대로 지킨 이는 드물다. 김진태 전 총장은 “(청와대가) 나에게 한 번도 이래라저래라 한 적 없다. 대통령이 연락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을 믿는다. 검사들이 주인공인 드라마 ‘펀치’는 검찰총장과 정치권력의 야합을 보여주지만, 우리 현실은 그보다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 전 총장 체제는 정치적 독립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이른바 ‘청와대 문건 수사’ 등에서 대통령의 이런저런 언급이 수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비친 탓이다. 검찰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애쓴 김 전 총장으로서는 억울하겠으나 세간의 시선은 이처럼 냉정하다.
김수남 총장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더욱이 박 대통령의 정치적 근거지인 TK(대구·경북) 출신이니 오해를 사는 일이 없어야 한다. 2016년 총선을 거쳐 2017년 대선 직전에 임기가 끝난다. 선거사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단 며칠을 재임해도 검찰 수장으로서 명예를 지키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1991년 시위 도중 숨진 여대생 김귀정 양 사건을 수사하며 당시 군사 정권에 불리한 결론을 내렸던 결기를 상기하는 것도 좋겠다. 물론 채동욱 전 총장처럼 권력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고 개인 스캔들이 불거져 퇴진하는 불명예를 당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 검찰의 불명예가 되기 때문이다. 채동욱과 김진태 전 총장이 걸었던 길, 그 중간 어느 지점에 김수남 검찰의 중립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기회주의적 처신이 아니고,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는 ‘중용(中庸)’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검찰의 중립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중립을 지켜서 이뤄내야 할 것은 공동체의 법질서를 세우고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것이다. 당장 5일로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새 총장의 법질서 시험대가 될 것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합법적인 시위는 보장하되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했다. 시위대의 불법 행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의 법치 의지가 드러날 것이다. 김 총장은 수원지검장 시절에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지휘했다. 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자유민주주의가 불변의 가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수남 검찰이 그 가치를 굳건히 지키는 데 헌신할 것으로 믿는다.
지금 검찰 내부에서는 고질적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 총장 직할의 대검 중앙수사부를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총장이 이 사안을 다루는 데 역시 중용의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중수부 폐지 이후 지지부진한 특수 수사를 강화하되, 그것이 과거처럼 검찰 권력의 전횡으로 나타나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새 총장 체제에서도 ‘사건 관계인을 우주의 무게로 대하고’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해야 한다’는 전임 총장의 방침이 이어지길 바란다. 검사는 수사의 칼을 꺼내면 뭐라도 자르려고 한다. 집어넣어야 할 때 집어넣어야 칼의 빛을 지킨다. 그 역할은 총장을 비롯한 지휘부의 몫이다.
김 총장은 ‘주이불비(周而不比·두루 살펴서 편향되지 않음)’의 인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찰 내부의 신뢰를 얻으며 중용의 길을 견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검찰 인사를 앞두고 법무부에 의견을 제시할 때부터 통합과 혁신의 지혜를 발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