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논설주간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생각이 복잡해지는 법이다. 지난 주말 사드 배치를 반대하며 분신한 고(故) 조영삼 씨 영결식에서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으로 집약된 국민의 뜻과 달리 미국 압력에 끌려다닌다”는 소리가 나왔다. 고 백남기 농민의 1주기 추모대회에선 “최소한의 농산물 가격 보장, 식량주권 실현을 농정의 중심에 놓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정통성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촛불헌법 요구까지 나왔다.촛불혁명을 들이대며 영수증을 요구하는 모습들은 불편하다. 문 대통령이 유엔 연설문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회복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이 집단지성으로 이어진 역사’였다. 촛불시위에 나섰던 대다수 시민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탄핵돼 단죄받는 것으로, 더러는 문 대통령이 탄생한 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여기서 지분을 요구하는 순간, 그가 바로 적폐가 돼버린다.
“대한민국의 새 정부는 촛불혁명이 만든 정부”라는 대통령의 말도 이제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엄밀히 말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헌법절차에 따라 청와대를 떠난 것이지 촛불시위대에 끌려 내려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도 이후 민주적 선거에 따라 당당하게 대통령에 선출됐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됐다고 자꾸 언급을 하니까 “문재인은 우유부단한 비서실장 이미지와 실패한 권력집단으로 간주된 ‘친노(친노무현)’의 정치적 한계 때문에 2012년 대선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으나 박근혜 정권의 실정과 촛불항쟁 덕분에 이번 대선에서는 약점을 극복하며 쉬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가 나오는 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를 앞두고 어제 김상곤 사회부총리가 “촛불혁명의 정신을 살리고 교육 적폐를 청산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이 봉합되기를 기대한다”고 한 것도 편하지는 않다. 굳이 국정화 진상조사를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럼 촛불혁명 정신을 죽이겠다는 거냐”고 따질 듯한 분위기다.
국가의 지배집단이 조직노동을 배제하거나 장악해 어용화(御用化)하고, 사회영역·시민사회를 탄압해 배제하거나 장악해 각종 끄나풀로 만드는 총동원 운영방식이 파시즘이라고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박근혜 스타일’ 논문에서 지적했다. ‘국민 이데올로기’로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며 노조를 배제하고 시민사회를 탄압한 박근혜는 사회적 파시즘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촛불혁명 정신을 받들어 노조를 배제 아닌 어용화하고 시민사회는 탄압 아닌 끄나풀로, 아예 지배집단으로 들어앉힌 문재인 정부도 파시즘과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좌절한 중간계층에 ‘금수저’와 엘리트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고, 적폐청산 같은 과거에 집착하며, 개인과 자유를 중시하는 근대성을 거부하고 국가가 책임져 준다고 강조하는 국가주의도 파시즘에 속한다. 이 밖에 에코는 남성주의와 전쟁 불사를 파시즘 요소로 꼽았다. 핵·미사일을 거의 완성한 김정은 앞에서 탁현민 청와대행정관 빼곤 남성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문재인 정부가 평화를 외치는 현실을 감사해야 할 것인가.
결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숱한 도상연습을 했다는 문재인 정부다. 노 전 대통령은 반미(反美)·반(反)부자 감정을 부채질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비판받는 회한을 남겼다. 민족적 포퓰리즘이 급진화한 형태가 바로 파시즘이다. 지지율 높은 집권 초기 촛불혁명 완수를 밀어붙이는 급진성이야말로 ‘촛불 파시즘’의 위험한 증상이다. ‘노무현 2기 정부’가 포퓰리즘도 모자라 파시즘 정치를 했다는 회한을 남겨선 안 될 일이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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