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일원으로 9일 한국에 온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3대째 이어가며 한반도 북쪽을 70년간 통치해온 김씨 일가 구성원이 대한민국 땅을 밟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여정은 북 왕조 체제의 속성상 사실상 2인자라는 얘기도 있다. 한때 김정은의 애인이었다는 소문이 났던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도 왔다. 김정은이 평창올림픽에 자신이 가진 자원을 총력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북측 대표단에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여행 제한 대상인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도 포함됐다. 유엔 회원국이 최휘를 받아들이면 제재 위반이 된다. 북은 문재인 정부가 솔깃할 수밖에 없는 김여정이라는 카드에 최휘를 끼워 넣으면 남측이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북측 대표단 및 예술단이 내려오는 과정에서 북 여객기나 선박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던 우리 5·24 대북 조치가 훼손됐다. 유엔이 대북 수출을 금지한 사치품들로 만들어졌고 건설 과정에서 아동 인력이 동원돼 인권 침해 비난을 받아온 마식령스키장에서 남북이 합동 훈련을 한 것도 국제사회의 눈총을 사고 있다.
이런 마당에 유엔 제재 리스트에 올라 있는 최휘마저 받아들여 인적 제재마저 허물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열외 지역이 돼 버린다. 김여정은 유엔 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작년 1월 미 재무부가 발표한 미국 입국 금지 및 미국 내 자금 동결 대상에 포함돼 있다. 마식령에 비행기를 보낸 것이 미국 독자 제재를 어긴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북 대표단이 추측대로 비행기로 오게 되면 북은 육·해·공 모두의 대북 제재를 비웃고 인물 제재까지 조롱하는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7일 "미국과 남조선의 군부 호전광들이 올림픽 경기대회가 끝나자마자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대규모적인 합동 군사훈련을 재개한다면 이제 겨우 개선의 첫걸음을 뗀 북남 관계가 휘청거리게 되고 조선반도 정세는 또다시 엄중한 파국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4일 전화 통화에서 "평창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자"고 일시 연기 방침을 밝힌 이후 북은 "한·미 연합 훈련을 영구 중단해야 한다"고 몇 차례 주장하더니 이제는 한·미 연합 훈련을 재개할 경우 한반도 정세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은은 평창올림픽을 볼모 삼아 대한민국을 흔들어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대열에서 이탈시키려 하고 있다. 펜스 미 부통령 측은 방한에 앞서 "북한이 평창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김정은
이 숨겨 뒀던 마지막 카드인 김여정 파견을 내민 것은 '평창 납치'의 그림이 완성돼가는 것일 수 있다. 김정은이 이러는 것은 결국 대북 제재에서 탈출하려는 것이다. 그만큼 이번 대북 제재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북이 비핵화에 동의할 때까지 대북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 그런데 벌써 흔들리고 있다. 대북 제재가 실패하면 남는 수단은 누구도 원치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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