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측과 회담한 후 27일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이 2011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타고 갔던 열차가 삼엄한 경비 속에 베이징역에 도착했으며 이어 중국 공안의 호위를 받는 고급차 20여 대가 인민대회당을 향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홍콩 명보(明報)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으로 여겨지는 인사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국가 지도자와 3시간가량 회담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미북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되자 한반도 문제에서 자기들이 소외되는 것이 아닌지 불안해했다. 얼마 전 중국 공산당 선전 기관인 환구시보가 '북·중 우호 관계는 한·미·일의 방해를 절대 받을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낸 것이 이런 속내를 보여준다. 미국이 북핵 해결을 위해 주도해 온 유엔 대북 제재의 실효성은 90% 이상 중국의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북한이 제재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도발 중단과 대화 제의 계기가 된 것 같다는 세간의 분석이 맞는다면 중국이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중국 처지에서는 북한 압박에 가담해 북한에서 인심만 잃고 북한을 미국과 한국에 매달리게 만든 결과만 가져왔다는 심정을 가질 법하다. 그런 생각이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베이징에서 북·중 최고위급 접촉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초조함을 갖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배경에서 북한과 중국의 최고위급이 만났다면 둘 사이에서 논의한 핵심 주제가 대북 제재 문제일 것이라는 점은 짐작된다. 북한은 자기들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미국과 대화에 나서기로 했으니 그에 맞춰 제재 강도를 조절해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고, 중국도 유엔 결의를 명백하게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북한을 배려하는 방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그동안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혼자 협조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까 우려해 마지못해 참여해 온 측면이 있다. 이제 미·북,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된 만큼 북한에도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고 주장할 명분이 생겼다. 우리가 북한을 평창올림픽에 참가시키기 위해 대북 제재 결의에 몇 차례 예외 선례를 만든 것도 중국의 운신 폭을 넓혀주는 핑곗거리가 된다.
김정은이 신년 사설을 통해 남측에 대화를 제의한 것이 남북 정상회담, 미북 정상회담 성사로 이어지고 그것이 불편했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까지 호전시키는 연쇄 작용을 낳
았다. 그 결과가 중국의 대북 제재 전선 이탈(離脫)로 나타난다면 결국 북한 비핵화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미국으로 특사까지 보내가며 김정은의 대화 공세에 들러리를 섰으니 이제 와 중국을 말리기도 어려운 처지가 됐다. 이러다가 김정은이 한반도의 운전대를 잡고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만들려는 전략이 먹혀들어 가는 것 아닌지 불길하기만 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27/20180327033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