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명구(성신여대 강사 정치학)]
문재인 대통령이 끝내 개헌을 발의했다.
선거공약 이행과 개헌 비용 최소화라는 경제성 논리를 앞세우고 있지만,
집권 1년도 안된 시점에서 서둘러 헌법을 전면 개정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실 개헌은 일반 법률을 개폐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법률이란 구체적 현실에 대한 규율이라는 점에서 시의에 맞게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헌법은 국가의 일반 원칙과 구성원리를 다루고 있는 만큼 함부로 쉽게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법률이 도구적인 것이라면
헌법은 존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사실 현재 시점에서 개헌은 서두를 일이 아니고, 국민적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합의가 있다면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맞추는 문제,
그리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동떨어진 개헌을 서두르는 것은
촛불시민혁명으로 집권한 “제3기 민주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문 정부는 집권 후 안으로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구속, 사법처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밖으로는 평창올림픽 이벤트에 이어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이른바 한반도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담대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연관해서 볼 때 개헌은 문정부가 지향하는 국내외적 변화의 완결판이라 해도 좋다.
문재인 정부는 개헌안의 내용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쪼개기 발표’를 하였다.
스스로는 전면적 개정이기 때문에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많은 언론은 이를 정치 이벤트화, 다시 말해 정치쇼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복잡한 내용의 윤곽, 즉 이들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숨기려는 꼼수로밖에 보지 않을 수 없다.
헌법 전문(前文)은
원래 건국이념 즉 헌법제정의 유래와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기본원리의 선언이다.
우리 헌법의 경우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헌정원리와 기본권 보장
그리고 단일국가로서의 평화통일 정신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전문은 개정 대상 아니다
이러한 자유민주정치의 원리,
즉 헌정적 원칙은 헌법의 실질적 중핵이다.
헌법 개정의 대상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헌법제정 권력과 헌법 개정 권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어떠한 권력 혹은 심지어 ‘국민’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손을 댈 수 없다.
만일 이 부분에 손을 댄다면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
헌정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민주공화국도 대한민국도 아닌 것이 된다. 당연히 국민도 없게 된다.
문제는 이번 개헌안이
‘국민중심의 개헌’을 표방하면서
건국이념 즉 ‘자유민주적 헌정원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13일 국민헌법자문특위에서
“헌법은 국민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헌법이 국민의 뜻에 맞게 하루 빨리 개정되어 국민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얼핏 보면 감동적인 레토릭으로 보이지만,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헌정원리 특히 입헌주의와 권력 균형 그리고 대의제 원리는 누락되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설명은 보다 구체적이다.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국민들은 국민주권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보여주었고,
이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기본 틀은 개헌으로 완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입헌주의·권력균형·대의제 무시
사정이 이쯤 되면 이번 개헌안의 지향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국민주권 원리와 직접민주주의를 앞세운 체제의 변질이다.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또 개헌안 전문에는
4.19혁명에 이어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법적, 제도적 공인이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발생한 이러한 운동을
민주화 이후 30년이 된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의도가 무엇일까?
여기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국민을 동원,
자신의 숨은 목적에 이용하려는 기도에
헌법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측면이다.
이러한 목적과 기도는 공산혁명 전야의 통일전선(united front)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 개헌은 이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읽히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역대 정권 나아가 대한민국의 적폐청산을 부르짖으면서
그 반사이익으로 자신의 도덕성을 강조해 왔다.
이제 개헌을 통해 그동안 애써 숨겨오던 의도와 지향점을 일정 부분 드러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잡한 내용과 현란한 언사를 통해 정체를 애써 감추려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을 공론화의 계기로 삼고 지방선거의 전략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할지 아니면 마지막에 개헌을 밀어붙일지 확실치 않다.
어느 쪽이든 이는 시간에 쫓기는 문재인 정부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자유진영과 건전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나아가 헌정을 정상화시킬 대역전의 일대 전기를 만들기 위해 모두 힘을 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