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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산과 물은 얼마나 깊을까?

<철학 에세이>

 

  


 


                                                                                                   송 재 운(동국대 명예교수)

81년 성철스님 宗正 취임 法語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요즈음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 말은 19811월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宗正)에 추대된

성철(性澈, 93入寂)스님이 해인사에서 사부중(四部衆)에게 내린 종정 취임 법어(法語)이다.

보이는 만물은 관음(觀音)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妙音)이라

이 외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

시회대중(示會大衆)은 알겠느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어는 마침 중앙일보 이은윤(李殷允) 대기자가 성철스님의 인터뷰를 곁들여

스님 사진과 함께 신문 한 페이지의 전면을 할애하여 보도함으로써 전국민적 화제가 되었다.


제목은 역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인데, 주먹만한 활자로 박았던 것이다.

중간 제목 등 편집 자체가 더욱 선()적이어서 내용과 더불어 많은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성철스님의 이 법어 산산 물물은 지극히 평범한 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평범한 말이 대중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종파를 초월한 종교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의 추앙을 받는 한국 최고 고승의 입에서 나왔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하는 점에서 대중적 화두(話頭)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의미를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인터넷에도 성철스님의 이 법어는 많이 뜬다. 그러나 저마다 그 뜻은 모르겠다.” 라고 한다.


그럼 이 산산 물물의 난제(難題)를 풀어 보는 방법은 어찌 없을까?

필자도 역시 오래도록 생각해 봤다.

래서 관견(管見)이지만 그 생각한 방법론의 일단을 여기 피력해 본다.

먼저 불교라는 唯心의 종교 입장에서 본다

 

산산 물물이란 말의 배경은 불교라는 종교적 관점에서 찾아야 한다.

불교의 존재론적 사유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華嚴)와 만법유식(萬法唯識-唯識)에 있다.


일체유심조란

우주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은 마음이 짓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생겨나면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心生則種種法生)

마음이 멸하면 모든 존재 또한 멸한다(心滅則種種法滅)

원효(元曉)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이 이와 같은 화엄 도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만법유식은 모든 존재자(存在者)

내 마음이 그것을 인식하는 한()에서만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나의 의식주관이 건립한 세계이다.

서양철학에서의 관념론(觀念論)과 매우 유사하다.

일체유심조나 만법유식은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마음과 의식을 떠난 일체(一切)의 것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자연 만물 등 모든 것의 주인은 마음 즉 심()이다.


그렇다면 성철스님의 법어에서

보이는 것은 관음이요 들리는 것은 묘음이라 한 것 역시 마음의 문제이다.


눈과 귀가 아닌 마음이 관음을 보고 묘음을 듣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 인식에 있어서 눈이나 귀라고 하는 감각지(感覺知)를 떠난 유심(唯心)의 차원이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의 산산 물물역시도 우리들의 이와 같은 감각지를 초월한 경지에서의 이야기다.


유식(唯識)에서는

()()()()()까지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아는 식()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다음 마음()으로써 아는 식을 의식(意識)이라 하는데, 이것이 제6(第六識)이다

 

그리고 다음 한 단계 더 높여서 일종의 자아의식(自我意識)이라고 할 수 있는 식을

7(第七識) 말나식(末那識 Manas)이라 하며,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불멸의 장식(藏識)은 제8(第八識) 아뢰야식(Alaya 阿賴耶識)이라 한다.


유식은 우리들의 앎()의 단계를 이처럼 8단계로 설정하고 있다.

감각적 지각(感覺知覺-感性知)까지를 포함한 우리들 마음,

즉 의식은 제8아뢰야식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5식부터 제6, 7, 8식까지 끊임없이 앎의 경험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 앎의 경험을 우리는 <의식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불교적 수행이란 이 의식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하나하나 저급한 의식을 떨어 버리고,

최고의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진여(眞如), 반야지(般若知)에 이르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선()에 있어서의 몰록 깨우침인 돈오(頓悟)

아무 의식도 없는 가운데서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오랜 <의식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 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선(參禪) 자체가 바로 의식의 경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간화선(看話禪)에서 화두(話頭)를 드는 것은

그 화두 자체가 바로 <의식의 경험>에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철스님은 대선승(大禪僧)이시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참선을 가르친 게 아니라 절을 시켰다.

부처님 전에 삼천배를 하게 한 것이다. 절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법이고 기도법이다.


당시 어떤 스님은 이 삼천배 시키는 것을 가지고 굴신운동이라고 비판했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땀흘리며 고행처럼 부처님 앞에서 절 삼천배를 하는 동안

그 사람은 육체적인 절과 똑같은 정신운동을 하게 된다.

이 정신운동이 바로 저급한 의식에서 고급한 의식으로 마음의 경지를 향상시키는 의식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힘들여 삼천배를 하고 나면 누구나 사람이 달라져 나온다.

절 삼천번이라고 하는 일종의 고행을 통하여 정신이

그간 쌓은 좋지않은 업()과 나쁜 습()을 버리고 반야(般若-지혜)를 향하여 고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지를 우리는 전미개오(轉迷開悟)라 말한다.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법문은 스님께서 오랜 선 수행을 통하여 전미개오, 오도(悟道)한 마음의 경지를 설하신 것이다. 여기서

산과 물은 내 마음이요, 

내 마음은 산과 물이다.

그러니까 자연과 마음이 통일된 일여(一如)의 경지다.

그리고 산산 물물은 내 마음이고 바로 또 네 마음이기도 하다.

 

산산 물물의 변증법적 含意

 

중국의 송()대 선승(禪僧) 청원유신(靑源有信)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 공부에 들지 않았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老僧 三十年前 未參禪時

見山是山 見水是水

 

(그러나) 나중에 이르러 여러 선지식을 친히 뵙고 가르침을 받은 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乃至後來 親見知識 有個入處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허나 진정 깨쳐) 마음 쉴곳 얻은 오늘에 이르러

다시 그 예전의 산을 보니

산은 단지 산이요

물은 단지 물이더라.

而今 得居休歇處

依前 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설법은 성철스님에 수백년 앞서서 위와 같이 청원유신이 먼저 남겼다.


그런데 앞서 말한 그 의식의 경험적 변화로서의 과정을 보면,

19세기 후반 독일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drich Hegel, 1770-1831)이 내놓은

(-肯定-定立), (-否定-反定立), (-否定否定-綜合)이라는

삼단계의 변증법(辨證法-Dialectic Method) 논리(論理)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청원유신의 이와 같은 선() 체험은 참선에서의

깨우침의 과정이 변증법적 논리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추정해 보게도 한다.


헤겔은 유럽에 있어서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 나폴레옹의 집권과 몰락 등이 일어난 대변혁기를 경험하며 철학을 한 인물이다.

그의 주저는 <정신현상학 Phänomologie des Geistes>으로

이는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예나대학을 나폴레옹 군대가 점령하던 18061013일에 탈고하고, 이듬해 18074월 발베르크에서 초간(初刊)한 것이다.


<정신현상학>은 헤겔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의식(意識)의 경험의 학()’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은 정지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의 경험을 통해 진리를 파악해 나아간다. 의식의 경험이란 이런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의식은 인식 경험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내용과 대립되는 것들을 극복하고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와서 자기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기까지 멈추지 않는다.

의식의 이러한 상향(上向) 운동이 바로 우리 정신(精神)의 변증법적 운동이

 

의식은 감각적 지식에서 출발하여

자기동일(自己同一)적인 사물(事物)을 인식(認識)하는 지각(知覺),

그리고 법칙 안에서 관계를 인식(認識)하는 오성(悟性)으로 지양(止揚-Aufheben)되어 나아간다.

이러한 과정들은 우리들의 사물(정신적 대상도 포함하여)을 인식하는 의식이

그 사물에 대해 긍정을 통한 정립(定立-These-어떤 확신이나 주장을 세움)을 이루면,

의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그 속에서 어떤 모순 대립을 겪어 앞서의 긍정을 부정하는

반정립(反定立-Antithese)을 이룬다.


그러나 의식은 역시 여기서도 멈추지 않고 다시 그 부정의 반정립을 또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부정의 부정으로서의 종합(綜合-Synthese)을 이룬다.

이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거쳐 모순과 대립이 통일되는 새로운 단계이다.


그러나 헤겔의 정신변증법은 이 3단계의 변증논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서 셋째 단계인 종합은

다시 긍정으로서의 정립이 되어 정--합의 변증법적 의식운동을

의식(意識)의 최고 단계인 절대지(絶對知-절대정신)에 이르기까지 지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청원유신(靑源有信)의 경우,

선적 수행을 모르던 시기에 산을 보면 산이고 물을 보면 분명 물이었다.

이것은 헤겔 변증법에 따르면 긍정(-These-定立)으로 감각적(감성적) 지식에 속하는 지()이다.

아마도 이런 것이 범부의 지적 경계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단계 참선(參禪)에 들어 많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선() 도리를 배우고 실제로 자기 자신이 실참(實參)하여 오래도록 수행한 결과,

그 때의 산과 물에 대한 느낌은 선을 하기 전과 다르게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변증법(辨證法)적으로 보면

이는 확실히 선을 수행하기 이전의 산과 물에 대한 긍정적 정립을 부정(否定)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에서 이를 부정 하는 반()으로 나아 간 것이다.

산산 물물에 대한 감성지, 유식(唯識)으로 말하면 전5식을 부정하고 의식이 한발 앞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청원유신에서 마지막 제3단계는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산산 물물

맨 처음 제1단계인 긍정(定立)으로서의 산산 물물이 아니고,

두 번째인 부정(반정립)으로서의 산산 물물도 아니다.


앞서 12의 긍정과 부정의 모순 대립을 지양(止揚), 통일하여 새롭게 이루어진 의식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산산 물물과 의식 즉 마음은 불이(不二)적 관계이다.

불교에서 깨우침이란 우주와 자연,

사물과 내가 둘이 아닌 일여(一如)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성철스님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산산 물물은 나와 떨어져 있는 2분법적 존재가 아니라

내가 산이요 산이 나이며 내가 물이요 물이 나인 경지인 것이다.

물아(物我)가 합일(合一)된 하나의 의식상태, 그 것이다.


이러한 정신 경지는 헤겔로 말하면,

주관과 객관을 동일화하는 절대지(絶對精神-Absolute Geist)이고,

불교로 말하면 우주만유(宇宙萬有)의 실재(實在)로서

평등무애(平等无涯)한 진여(眞如), 반야지(般若知)라 할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성철스님의 산산 물물을 헤겔 변증법에서 보면 역시 제3단계의 종합(Synthese)에 든다.

청원유신에서 우리가 보아 왔던 그 것과 한 치도 다름없는 논리와 내용으로 말할 수 있겠다.

 

평등한 성품 가운데는 너와 나의 구별이 없고(平等性中 無彼此)

크고 맑은 거울(그런 마음) 가운데는 절친(切親)함과 소원(疎遠)함의 차별이 끊어졌도다

(大圓鏡中 絶親疎).”

<초발심자경문> ()

 

(2018. 4. 13.) 한맥문학 2018, 5월호 게재

 

사상의 빈곤 총 요약 <사상의 빈곤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의 최대문제인 갈등의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상의 빈곤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순 서≫ -시작하는 말 -개 요 -사상이란? -사상에 대한 판단 기준 -사상가가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 -사상적 빈곤 현상에 대한 이해 -사상적 빈곤에서 벗어나려면 시작하는 말 사상(思想)이란 우리들 삶의 길잡이이자 국가 체제의 골수(骨髓) 역할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상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평소의 삶에서는 소중함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공기가 희박해지거나 오염이 되고 나서야 심각한 고통을 느끼고 위험을 호소하게 되는 것처럼, 사상 역시 하루하루의 삶에서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빈곤해지고 오염이 되고 나면 그 사회는 위험해지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사상이 빈곤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지켜가야 할 사상은 날로 오염되어 가고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사상을 알고 사상의 빈곤에서 벗어날 때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낼 수 있고, 선진국이 될 수 있고, 자유통일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동서 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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