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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대한민국에 충성한 고 전두환 대통령님의 명복을 기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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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은 2021년 11월 23일 오전 8시 45분에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서거(逝去)했다. 사인은 90노령에 지병이 많은 전두환 대통령에 코로나 19의 화이자 백신을 맞게한 의료진에 의혹설이 나돌고 있다. 코로나 19의 치료제로 정부의 알약수입을 조금만 기다려도 되는 데 한국사회에 백신주사 탓으로 부지기수의 노소(老少)가 죽어가는 주사제를 처방한 것은 의문이다. 정해진 운명인지, 아니면 화이자 백신 탓인지 의혹의 설왕설래(說往說來) 가운데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반공장군인 전두환 잔 대통령은 붉게 붉게 물들어가는 한국사회를 걱정하면서 애석하게도 떠나갔다.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못잊을 추억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연희동 자택에 내가 찾아가면 전 대통령은 언제나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그는 집안 대대로 불교를 신앙해오는 철저한 불교신도여서 더욱 예를 갖추어 내게 잘해주었다.

전대통령이 군인이 되어 위난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 마음을 먹은 것은 작금의 대구 공고 2학년 때라고 토로하였다. 교교 시절 그는 복싱 선수이기도 했다. 강펀치로 당할 자가 없는 무적이었다고 내게 자랑한 후 우리는 폭소하였다.

북-중-러가 동패가 되어 일으킨 6,25 남침전쟁이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한국을 점령해갈 때, 선봉에 선 인민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멈추었다. 낙동강에는 불독같은 미 8군 사령관인 워커 장군이 최후의 방어선을 고수하듯 유엔군을 독전하며 결사적인 전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워커 장군은 ‘리틀 패튼’장군이라는 별호가 붙은 용맹한 장군이었다. 인민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사이를 두고 결사작인 전투를 할 때, 인민군과 유엔군의 사상자에서 흘리는 피는 매일 낙동강 물을 벌겋게 물들여 흐르고 있었다.

그 무렵 전두환은 고2의 학생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인민군의 포탄은 대구 시 변두리까지 날아외 폭발하였다 한다. 이것을 목도한 전두환은 인민군을 무찌르고 조국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졸병으로 군임대를 하겠다고 모친에 졸랐다. 전두환은 고2 때부터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전선에 나가면 곧바로 아들이 죽는다는 것을 안 모친은 슬퍼하고 결사반대했다. 고집을 피우는 아들에게 모친은 “고등학교 졸업이라도 하고 가거라” 하고 아들을 간신히 만류하였다 한다.

전두환은 모친의 만류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머리에 태극기를 감고 당시 잔해에 있는 육군사관학교 모집에 기차를 타고 갔다. 그 때 기차안에서 운명의 친구 노태우를 만났다고 회고했다. 둘은 이마에 태극기를 두루고 손잡고 맹세하였다. “공산당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하자!” 서로 결의의 손을 잡았다. 전두환은 현제의 대구공고 출신이었고, 노태우는 경북 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

전두환은 한국전에서부터 반공정신으로 북-중-러와 씨운 군인이었다. 그 후 월남전에서도 연대장으로 자유월남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의 공산군과 전투를 해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느날 치지철과 함께 불러 국회의원이 되어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차지철은 “명령대로 극회로 기겠습니다”고하였지만 전두환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군인으로서 나라외 긱히를 지키겠습니다.” 그는 반공의 군인일 뿐이었다.

전두환 장군에 운명의 신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기이하게 현실로 나타났다. 전두환 장군은 2사단장에 취임하고 얼마후 사병들이 북괴의 땅굴을 발견하여 보고한 것이었다. 김일성은 베트남 호치민이 땅굴을 파서 통일에 성공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호지민의 땅굴전략을 흉내내어 미친듯이 북한군을 통원하여 대남 땅굴작전에 총력하게 하였다. 그것이 최초로 전두환 사단에 정체가 발각된 것이다.

땅굴보고를 받고 주한미군 사령관이 7차례나 땅굴에 왔고, 박정희 대통령은 11차례나 땅굴 견학에 왔다. 땅굴발견에 기뻐한 박대통령은 전두환을 보안사 사령관으로 영전하게 해주었다. 전두환 장군이 보안 사령관으로 오고나서 얼마후 중정부장 김재규가 박대통령 암살극을 자행하여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할 때, 전두환 장군은 김재규와 동패들을 채포할 때, 군심(軍心)이 모여 전혀 예상하지 않은 대통령이 되었다고 토로하며, 그는 나에게 “나는 군인으로 만족하고 사는데 운명은 대통령까지 만들어 주었다니까.” 하고 운명의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증하듯 하였다.

어느날, 나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단 둘이 있을 때, “5,18 광주사태 때, 시위대에 계엄군에 발포명령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정색을 하고 완강히 이렇게 말했다. ”당시 계엄사령관은 이희성 대장이었지요. 내가 발포를 명령할 계급이 아니지요.“

훗날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이렇게 언론에 이렇게 인터뷰를 하였다.

”전두환이 내게 발포명령을 해? 전두환은 나에 새카만 후배였고, 내게 '형님, 형님' 하며 어려워했소. 나를 뛰어넘어 감히 월권해? 내 성격을 알고 이런 관계만 알아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옵니다. 전두환은 밝은 사람이지, 음습하지 않아요. 몰래 그렇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오. 내 단호히 얘기하오. 광주에 관한 한 전두환 책임은 없소.”

이희성 대장은 또 이렇게 말했다.
“5,18의 군작전은 당시 “지휘 계통의 최고위에 있는 계엄사령관인 나와 국방장관(주영복)이오. 그래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소. 그때 전두환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있어요. 그는 보안사령관이었고 내 참모에 불과했소. 참모로서 내게 건의할 수는 있었겠지만 작전 지휘 체계에 있지 않았소. 진압 작전에 개입할 수 없었소. 그는 광주에도 내려간 적이 없소.” [출처] 이희성 계엄사령관 증언|

이희성 대장은 5,18 광주사태에 대하여 야당과 일부 언론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있디고 주장하며 책임을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했다. “광주가 수습되고 3개월 뒤 그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오. 대통령만 안 됐으면 전두환 이름이 그 뒤로 나오지 않았을 거요. 또 북에서는 박정희, 전두환을 특별히 증오했지요. 그래서 북을 추종하는 자들이 전두환을 증오하는 것이지요.”

나는 직접 광주사태 때 직접 광주에 가서 상황을 직접 보고 6,25 이후 최대의 내전이 발발했다는 의혹이 들었다.

당시 시민군이 어떻게 무장을 했는가? 지만원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시민군은 4시간만에 44군데의 예비군 무기고를 탈취하여 무장하고, 군용지프와 트럭을 타고 다니며, 장갑차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국군과 교전하며 우선 광주시를 장악하였다. 시민군은 광주교도소를 해방하기 위해 수차 진격하였으나 완강한 계엄군에 수차 좌절되었다. 국제사회에 무장한 시민군이 장갑차를 타고 국군과 교전하는 평화적 민주화 시위대가 또 있었던가?

내가 목격한 것은 6,25 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는 전투기 광주에 있었다는 것이다. 무장군은 광주를 장악한 후에 확보된 차량으로 순천을 거쳐 부산행을 하려했고, 또다른 무장 시위대는 대전을 거쳐 서울행을 하려 했다는 게엄군의 보고도 있었다는 후일담이다. 천만다행히 광주시를 겹겹이 포위하는 영특한 군작전이 없었다면, 광주사태 때 대한민국은 내전으로 폭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날의 대한민국 안전을 위해 무장한 시민군을 진압한 군경은 좌파 대통령들과 좌파 언론인들에게 의하여 한국민주화를 총칼로 짓밞은 천추에 저주받을 자들로 만들어졌다.

또, 전라도 최고의 정치인이요 선동가인 DJ는 수하 김원기를 대동하고 전라도 군,읍, 면 단위까지 순회강연을 하고 다녔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려 군작전을 했다.” 또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 다 죽이려 든다“로 순회강연을 다녔다. 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가 들으면 기가 막혀 통곡할 선전선동이었다. 이러한 선전선동으로 전라도는 DJ의 정치텃밭이 되었고, 광주사태로 보상비를 받은 명부속의 진위(眞僞)는 언제인가 역사에 들어날 것이다.

따라서 반공의 전두환 장군을 5,18 민주화를 짓밟는 학살저로 낙인을 찍은 자들은 북-남에의 좌파들로서 한통속이 되었다는 항설(巷說)도 난무한다.

미국이 건국해주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준 미국의 해는 한국에서 서산낙일(西山落日)의 신세라고 나는 주장한다.

근거는 19대 文대통령 시대에 여야 국회는 당당히 제주 4,3 반란 사건 등 대한민국을 부정한 모든 무장반란을 민주화 운동으로 법안 통과를 만장일치로 해주었다. 모든 무장 반란을 진압한 군대와 반공을 주장한 정치인과 경칠은 민주화를 짓밟은 만고역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정부와 여야 정치인들은 반공의 전두환을 대역죄인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현충원은 북-중-러를 추종하는 좌파 대통령들만 안장되는 “좌파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아직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박정희 묘역은 좌파들에 철거 운동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신니간 일부 국민들이 사회민주인지, 자유민주인지 분간을 못하고 좌파에 투표질을 하는 바람에 현충원에까지 영향이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 미국의 자유민주를 배신하고 사회민주를 추종하는 종착역은 제2 한국전 뿐이라고 생각한다. 붉은 완장에 재산과 생명을 빼앗기는 인민재판에 의한 인종청소가 닥쳐야 대오각성하면 무엇하나?

거듭 주장하여 전두환, 노태우 둘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자마자 머리에 태극기를 감고 조국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군문에 투신한 반공지사요, 애국군인들아었다. 그런데 그들을 철저히 죽인자들은 반공이 아닌 용공지사(容共志士)인 YS, DJ 등이었다. 특히 YS, DJ는 군대에 기피한 자들이었고, DJ는 한국전쟁 때, 목포시 남로당 선전부장이었다. 그 두 명은 애써 대통령이 되어 행위는 북의 보급관, 대변인 노릇이라는 일부 항설이다.

따라서 한국을 건국해준 미국은 반공주의에서 탈퇴한 듯 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근거는 미국이 전두환 대통령 때, 공갈협박하여 DJ를 감옥에서 빼내어 미국에 초청하여 국비(國費)로 보호하고 훗날 한국 대통령이 되도록 후원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좌파는 급기야 만세를 부르고, 좌파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미국정부는 북-중-러의 사회민주인지, 미국의 자유민주인지, 헷갈리는 민주화만 외쳐대면 자기편인줄 믿는 바보 얼간이들로 변해버린 버린것같다.

따라서 문민정부 때부터 미국의 대한정책(對韓政策) 좌파 용인정책으로 작금의 한국은 반공지사는 만고의 역적이 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끝으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일생을 반공투사로 살아왔지만, 돌변한 한국사회는 영면할 현충원에서 외면하고 또 영면할 장지(葬地)조차 좌파 정부 당국은 외면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분이 고교 때부터 반공지시기 아니고, 군대도 기피하고 YS, DJ, 노무현 같이 북-중-러를 추종하고, 국민혈세를 수탈하듯 하여 대북퍼주기를 해주는 인사였다면 온통 “죽여라!” 힘성은 없었을 것이다. 전두환 장군은 반공의 소신대로 수상한 “5,18 무장사태를 보면서 찬동과 묵인의 동의를 표하지 않았고, 반공과 구국의 눈으로 보았고, 반공의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고 개탄하며 반공의 소신대로 살다가 운명한 것이다. 한국의 반공지시가 아직도 존재하는가? 아직 존재한다면, 낙동강 전선에서 대한민국의 사활이 달렸을 때, 반공정신으로 자진해 군문에 투신했던 대구시의 소년반공 애국지사였던 고교 졸업생 전두환, 노태우의 대한민국 수호 정신을 기억해주고, 명복을 기도해주기 바란다. ◇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




[대불총성명서]"이종명의원" 제명한 자유한국당 윤리위원회 결정은 잘못이다. 자유한국당이 이종명의원을 "5.18 진상규명 공청회 환영사" 관련하여 출당을 결정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럽다. 남남 갈등의 원인 중 5.18 사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2018년 "5.18민주화 운동 관련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면서 까지 재조사 하는 것으로 증명 된다. 모든 국민은 이번 조사를 통하여 의문이 명명백백히 가려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이 법의 조사범위에는 "북한군 개입여부 및 북한군 개입 조작설"이 자유한국당의 제안으로 포함되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5.18 공청회"도 분명히 이러한 위 진상규명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실시되었다. 본 공청회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측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반대하는 측과의 토론을 위하여 실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측의 주장이 반대측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은 필연적이므로 쌍방간의 이견이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있다. 이것이 민주국가에서 공론의 과정이다. 그러므로국회가 문제를 삼는 것은 부당하다 더욱5.18 진상규명을 국회가 입법하고도, 잘해보자는 국회의원들의 발언내용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제명을 운운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국회 모

[대불총] “국민발안제 개헌”반대 성명서 [대불총] “국민발안제 개헌”반대 성명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 우리는 중국폐렴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고, 정권심판을 위한 4.15총선으로 어수선한 틈에 여야 국회의원 148명 들이 “100만명의 국민이 동의하면 개헌하는 국민발안제” 개헌안을 날치기 발의하였습니다. 이 개헌안은 4.15 총선과 동시에 “국민발안제 개헌안”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의 주장은 유신헌법에서 삭제된 국민발안권을 되찾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자고 함이라고 합니다. 또 독일과 스위스는 국민발안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잘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과 스위스의 정치환경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말하지 않습니다. 독일과 스위스는 우리처럼 남남갈등이 없으며 나라를 뒤엎을려는 세력도 없습니다. 독일은 헌법수호청이란 강력한 기구가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전제주의나 공산주의식 헌법개정의 발안은 못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공안기관이 무력화되고, 종북주의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국민발안이 헌법화 된다면 국가의 혼란은 가중될 것입니다. 100만명은 우리인구의 2%입니다. 100만 명이란 숫자는 노조와 전교조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인원이 됩니다. 또한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