菩薩道(보살도) 실천에 모두 함께 나서자 韓 昇 助/상임고문 보살도란 菩薩(보살)이 되어서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의 사상과 행동을 말한다. 보살이 무엇인가? 부처가 되고자 수행정진하는 사람들을 말함인데 부처님 후보 내지 예비 부처로서 발원하고 실천하여 일정 수준에 오른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살은 인간생존의 理想型(이상형)이다 사람은 모두 佛性(불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들이 갖고 태어난 佛性의 因子(인자)를 키우고 가꾸어서 아기 부처 내지 부처님의 후보자가 된다면 이 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불성은 사람만이 아니라 동식물들도 갖는다고 한다. 다만 그 불성을 키워서 부처가 되고자 발심하며 노력할 수가 있는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다. 이처럼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성이나 특권을 살려서 佛道(불도)를 공부하며 닦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菩薩(보살)이 되고자 노력하며 修行精進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불교인으로서 보살이 된다는 것은 自我實現(자아실현)과 人格完成의 최고 상태라고 할만도 하다. 보살에 해당하는 말을 유교에서는 聖人君子(성인군자)라고 하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딸 또는 천사라고 부른다. 道敎에서는 道人 또는 神人이라고 하며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의 使徒(사도)라고 말하지 않나싶다. 불교사전에 나와 있는 보살의 정의 ① 보리살타의 준 말. 성불하기 위해 수행하는 이의 총칭 넓은 의미로는 대승교에 귀의한 이. 큰마음을 내어 불도에 들어오고, 4홍서원을 하고 6파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오랫동안 自利(자리) 利他(이타)의 행을 닦으려는 이. 위의 수양계단을 지나 드디어 佛果(불과)를 취득한 이다. ② 조정에서 덕이 높은 스님에게 주는 칭호. ③ 우리나라에서는 우바이(청신녀)를 존경하여 쓰는 말로 보살계를 받았다 하여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사람의 等位(등위)와 보살의 여러 단계 사람은 겉보기는 비슷해 보여도 그 내면과 품위가 모두 같은 수준에 있지 않다. 유교에서는 小人과 君子를 구분하기를 좋아하며 불교에서는 衆生(중생)과 菩薩(보살)로 대별한다. 불교에서는 각자의 品格과 생활환경을 여섯 단계로 나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天上人으로 대별한다. 또 한편에 보살도를 분류하는 기준이 너무 다양하여 여기에 모두 소개하기가 번거롭다(유식론에서는 보살의 수행단계를 열 가지로 제시하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永架集(영가집)에서는 三乘(삼승)점차라는 절에서 다음과 같이 셋으로 나눈다. 크게 一乘(일승)인 聲聞(성문), 二乘(승)인 緣覺(연각)과 벽지불 그리고 三乘(삼승)인 보살로 구별한다. 보살이라고 해도 그 안에는 또 서너 단계로 나눠지는 것 같다. 一乘 聲問은 下근기 苦集滅道(고집멸도) 4諦(제)과정까지만 익힌 사람. 우매한 중생이 불교교리를 듣고 초보교리를 익히면 聲聞이 된다. 二乘 緣覺은 中근기 12緣起(연기), 因緣法도 觀할 줄 아는 사람. 佛法에서 모든 것이 因果律에 따라 생멸하는 道理를 알게 되며 業因果報(업인과보)로 생겨났음을 알고 있다. 三乘 菩薩(보살)은 上근기 六度, 보시 자계 인욕 정진 禪定(선정) 智慧(지혜)등 六바라밀까지 통달한 사람이다. 보살 중에도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보살들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보살이 行願제일의 普賢(보현)보살이며, 慈悲(자비)의 최고수로 관세음보살. 또 학문과 지혜는 文殊(문수)보살이 주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현행원과 보살도 보현보살의 보현행원품에는 보살사상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 세상을 淨土(정토)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究竟成佛(구경성불)의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 보현보살인데 그는 진리나 지혜는 반드시 행동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보살은 매일 향상일로로 나가며 하강이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다. 보살처럼 살다가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이상형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이 좋아지려면 願力(원력)을 세워야 한다. 淨土(정토)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협력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사회나 문화운동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악과 업장에 잡혀있는 중생을 교화하여 사회정화 노력에 앞장서게 만들어야 한다. 보살들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들이 행하는 일을 도와주며 보태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남들을 성심껏 돕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중앙에 나서게 된다. 그 사람은 모두가 승복하여 추종할 수 있는 지도자적 품격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고 설한다. 보현보살이 하는 일은 아미타불을 받들고 모시는 일인데 그가 하는 일은 ① 애경제불 ② 칭찬여래 ③ 보시공양 ④ 업장참회 ⑤ 즐거운 마음으로 살라 ⑥ 봉사를 피하지 말라 ⑦ 선지식에게 가르침을 청하라 ⑧ 중생에게 봉사하며 ⑨ 끝마무리를 잘하라고 가르친다. 한국의 현시점에서 보살도운동을 제창하고 앞장서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1948년 대한민국의 건립된 지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이승만박사의 建國(건국)과 한국전쟁을 비롯한 護國(호국)노력의 시기, 박정희대통령의 산업화의 시기, 그리고 노태우・김영삼의 민주화 시기 그리고 김대중・노무현의 친북좌경화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얼마나 격렬한 사상대립과 가슴 아픈 정치사회불안을 경험하였던가? 그로 인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30년간의 비약적인 성장발전은 친북좌경세력에 의하여 독재와 부패의 시기로 부당하게 왜곡 폄하되어 왔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과정도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죄악시 당하고 매도당해 온 것이다. 또 친북좌경사상이 나라를 휘덮는 동안 나라의 안전보장은 극도로 위태로워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완전히 일그러져서 쇠망과 적화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다행히 제17대 대통령선거가 중도우파의 승리로 귀결되어 좌경화 내지 북한화의 위험에서는 잠시나마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좌파세력의 뿌리가 아직 가셔지지 않은 가운데 한국의 先進化나 국제적인 위상의 상승 전망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국내외의 제반 난국이나 난관을 돌파해 나가려면 한국 국민정신의 일대 쇄신과 발상의 큰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국민정신의 발상전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쉽게 말한다면 나라의 지도층이나 국민대중이 자기나 자기지역 또는 자기들의 소속 정당의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정의와 진리에게 봉사하는 정신자세로 바꿔야 한다. 先公後私(선공후사)로 가자. 또 현실적인 이익을 뒤로 미루며 인류공영이나 나라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先苦後樂(선고후락)의 가치관으로 전환하자. 이러한 사상과 행동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보살도정신을 전파 확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뜻이다. 보통의 경우, 누구한테나 우리 집단이 손해를 보고 이익은 남들에게 돌리자! 好衣好食(호의호식)할 수 있는 기회는 남들에게 양보하고 쉽지 않은 봉사나 惡衣惡食(악의악식)의 고난을 자청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제안이다. 그러나 불교인들에게는 이러한 설득이 비교적 잘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는 근거는 불교인들은 緣起法(연기법)이나 業因果報(업인과보)의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애국심이나 人類愛(인류애), 이타주의사상이나 박애정신이 불교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先人後己(선인후기)의 미덕이나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남들에게 공덕을 베풀려는 정신자세는 기독교인이나 유교나 기타의 종교인들에게도 공유되는 미덕이지만 그런 주장을 큰 異議(이의)없이 잘 받아들일 수가 있는 집단은 연기법을 이해하는 불교인들일 것 같다. 그래서 이들을 앞장서게 하자는 것뿐이다. 자신이 지은 善業(선업)보다도 받은 果報(과보)가 더 크면 그것이 빚이 되어서 언제라도 갚아야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 우리가 먼저 선업을 베풀고 보상은 나중에 천천히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법은 연기법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므로 불교인들을 앞장서게 하는 것이다. 보살도시민운동과 동아시아공동체 구상 과거에는 올바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면 국가와 민족, 또는 사회와 역사를 위하여 헌신하며 무엇인가 기여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이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도 세계와 국제사회에 기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개별적인 활동이나 봉사도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야지 국내활동은 크게 인정받거나 대접받지도 못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민단체들이나 사회봉사도 주변국가, 곧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또는 기타의 나라들과 우호 친선 교류 협력을 증진하여 인정과 대접을 받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은 외국이나 국제사회보다도 남북한 동족간의 화해 교류 협력이 더 소중하다고 반발할 것이다. 그런 취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남북한 관계는 국가이념과 제도 그리고 사회문화와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접촉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남한을 공산화하려는 술수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교류 접촉하고 협력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남북관계의 증진은 적어도 당분간은 별도로 추진하는 것이 좋을 성싶다. 또한 동아시아공동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관심을 집중시키며 북한과의 교류 협력도 동아시아공동체의 틀 안에 넣어서 다루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다. 그렇게 보는 경우 동아시아공동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새로운 남북관계를 위한 원격적 간접적인 접근방법이라는 말도 성립될 수가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民族國家(민족국가)의 시대를 넘어서서 世界化의 시대로 들어섰으며 세계화가 우리 시대의 大勢(대세)이긴 하지만 그에 앞서서 동아시아공동체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순서이다. 동아시아는 21세기를 주도하는 지역이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소견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등이 대립하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공동체는 국가간의 이익대립으로 인하여 형성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동(超)아시아공동체의 형성은 이런 일은 중국이이나 일본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런 일은 욕심을 덜 부리는 나라나 이웃 나라들에 위협을 느끼게 하지 않는 나라가 주도해야만 그런 시민운동이 성사되기가 쉬운 일이 아닐까? 이런 일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번영에 도움이 되고자 희망하는 한민족이 나서서 봉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기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 보살도시민운동의 관련성을 말하고자 한다. (1) 孔子의 말에 欲己立(욕기립)이면 先立人 하라는 말이 있다(내가 일어서고 싶으면 먼저 남을 일으켜 주어라). 이웃의 섬김과 도움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들을 섬기며 도움을 주어라는 말처럼 한국이 앞으로도 이웃 나라들로부터 도움이나 협력을 얻고 싶으면 먼저 베풀고 봉사하는 활동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2) 한국이 앞으로 가까이 해야 하는 이웃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이다. 북한이 제일 가까운 이웃이며 또 동족이지만 여러 가지 특수 사정상 다른 4강과 행동과 보조를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접어두고 이웃 4강과 먼저 상호협력과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이웃 4강과의 외교나 경제관계는 한국 정부의 소관사항이므로 시민단체는 정부와는 상충되지 않는 일로 관계를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3) 韓中日 3각관계는 과거의 역사적인 앙금이 남아 있어서 상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다. 동아시아의 공동체가 설립되어야 하는데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상호불신과 국민감정의 앙금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상호화해와 협력을 촉진하는 업무는 비정치적인 민간단체가 일을 추진함이 훨씬 더 효과적이며 이것이 상호관계를 부드럽게 봉합하여 사실상의 화해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4) 中日美러 그리고 남북한의 6국관계가 원활하게 풀려야 동북아시아의 공동체가 원활하게 성립될 수가 있을 것인데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은 한국만이 비교적 원활하게 추진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나마 시민단체의 종교적인 신조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을 것이며 특히 정치경제나 군사외교적인 이해관계로 풀리기가 어려운 문제들이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5) 오늘의 국가적 상황과 여건에서 동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업은 한국인 특유의 융통성과 친화력 그리고 그 종교적 열성으로 성취될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한국의 민간단체가 여러 종교단체의 협력을 얻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본인이 이러한 공덕을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민족이 역사적으로 지어왔고 오래 누적된 그 많은 罪業(죄업)이나 두터운 業障(업장)을 빠른 시일 안에 消滅(소멸)시키기를 바라는 소망 때문이다. 한국이 앞으로 한반도를 佛國淨土(불국정토)로 만들려면 그에 앞서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으로 이끌어 주는 功德(공덕)을 꾸준하게 쌓아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하여 한국국민을 보살도정신으로 감화시키거나 그런 가치관을 내면화해야 할 것이다. 그런 목표가 이루어질 때 한국국민은 세계의 일등국민으로 추앙되며 모든 나라 국민들의 선망과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럴수록 타국인들은 한국국민과 경제협력을 선호하게 되며 한국문화와 학술의 韓流(한류)도 더욱 인기를 얻으며 활성화될 것이며 또 수많은 세계적인 명사나 스타들이 앞으로도 속출할 것으로 전망할 수가 있다. 보살도정신과 대불총 大佛聰은 2008년의 과업으로서 보살도시민운동의 旗手(기수)가 되고자 發心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대불총이 전개하려는 반좌파운동도 보살도정신을 선양함으로써 한국의 국민정신을 효과적으로 고양시킬 수가 있다고 보아진다. 북한공산주의와 남한의 친북좌파의 정책을 밑받침하는 사상과 감정은 부유층에 대한 시기와 증오, 강대국에 대한 불신과 고립 그리고 보수세력에 대한 적대의식이다. 국민대중의 품격과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러한 좌파세력은 계속해서 위축 소멸될 것이 전망된다. 대불총의 임원들은 우선적으로 자신들의 정신적 도덕적인 자질을 한 두 단계 높이는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다른 시민단체나 종교세력과 협력함으로써 한국불교계의 健全化(건전화)와 한국국민과 국가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와 같이 거부감이나 부정심리 그리고 무조건적인 반공정신을 가지고는 북한이나 남한의 친북좌파의 움직임을 견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떤 강경정책이나 과격주의 그리고 투쟁심리도 오늘의 時代精神(시대정신)이 부합되지는 않는다는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들도 보살도정신을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들뿐일 것 같다. 이러한 국민운동을 불교인들이 일으켜야 하는데 그에 앞서서 대불총이 그런 캠페인을 벌여야겠다. 이런 꿈같은 말이 실현될 수가 있을까? 일반인들은 믿기가 어려울 것이나 보살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북아시아공동체의 비전을 믿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나 그런 믿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초기에는 少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꿈도 점차적으로 현실화되며 국가간의 이익이나 감정대립도 차츰 완화됨으로써 제한된 범위나마 경제적 문화적인 교류협력이 이루어져 가지 않겠는가? 새로운 역사도 이렇게 창조할 수가 있을 것으로 믿어도 되지 않을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