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장재균 촬영 장재균
이날 자유연합 홍관희 공동대표는 인사말에서 2010년 9월27일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총 연합체라 할 “자유민주주의시민연합”(이하 자유연합)이 출범의 닻을 올렸다. 북한의 지속적인 대남 군사위협과 중국의 북한 끌어안기, 그리고 특히 국내 종북좌파 세력의 확산과 세력 확대가 눈에 띄는 가운데 창립된 자유연합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적 정체성과 대한민국의 한반도 유일 합법 국가정통성, 자유민주 통일, 그리고 한미혈맹 강화를 강령으로 내걸었다.
자유연합은 창립을 계기로 향후 건전한 국가관, 안보관, 역사관, 세계관 확립을 목표로 대국민 안보제도와 합리적이고 건전한 젊은이 육성에 나선다. 이를 위해 세미나, 강연회, 기자회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용인교회 박복우 목사, 공동대표 양태호, 공동의장 송종환(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공동대표 이춘근(이화여대 겸임교수)등이 <중국의 팽창전략과 한반도 안보정세>라는 과제를 가지고 강연에 이어 토론가졌다.
3대 세습, 한국주도의 통일 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주제를 가지고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는 4년간의 유훈통치를 끝내고 1998년 9월5일 북한 지도자로 공식 등장한 김정일은 2001년 1월4일자 로동신문 보도를 통해 21세기는 거창한 전변의 세기, 창조의 세기라고 하면서 “이제 2000년대에 들어선 만큼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높이에서 보고 플어야 한다”는 21세기 신사고“를 제창했다.
이어 1월 중순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후 신의주를 시찰하자 당시 햇벝정책을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를 배경으로 북한의 변화가 소련, 동구 제국의 체제변화는 아니더라도 중국식 개력, 개방론으로 갈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10년 동안의 희망이 수포화되었음에도 지난 9월28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대표자회를 앞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덩샤오핑식 개혁”과 같은 변화를 택할 것을 전망했다. 특히 김정일이 지난 8월26일~30일 지린성 지린, 창춘과 헤이룽장성 하얼빈 등지의 경제 발전상을 둘러본 것을 보고 한국 언론계와 학계에서는 또 다시 중국식 개혁개방에 기대를 거는 분석들이 많이 나왔다.
체제 연명 위해 혈통과 군부 충성 인사로 당 개편 북한의 최대 당면과제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아울러 경제난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온 수령유일지배체제를 그만두고 최소한 중국식 개혁개방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44년 만에 9월28일 하루 개최된 당대표자회는 2006년 말에 후계자로 내정된 3남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공식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9월28일 오후2시 “중대 방송” 예고 후 김정일의 총비서 재추대 발표를 하고 그날 총참모장 리영호 대장(68세)을 차수로 승진시키고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64세), 김정은(26세) 등 대장 6명, 상장 1명, 중장 6명, 소장 27명 등 41명의 군 장성급 임명 및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9월29일 북한 매체들은 기존 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없던 “부위원장”자리를 신설하여 김정은을 선임했다고 보도하고, 9월30일 북한 조선중앙 TV는 27세 밖에 되지 않은 김정은 사진을 방영하였다.
10월10일 창당 기념일을 계기로 공개 활동에 나선 김정은은 김정일, 김영남, 최영림,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은 순으로 형식상 서열 5위이고 당 중앙위원이다. 그러나 인민군을 관장하고 군사정책을 총괄하는 김정일 당 중앙군사위원장 다음의 부위원장에 선임되고, TV 아나운서가 김정은 이름을 거명할 때 김정일을 거명할 때와 같이 정면을 보고 한자 한자 씩 읽고 있음에 비추어 3대 세습은 사실상 공식화되었다.
제3차 당대표자회는 1980년 제6차 전당대회 이후 30년 만에 간부 물갈이를 하면서 당 최고위 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김정일, 김영남, 최영림, 조명록, 리영호 총참모장을 선임하고 정치국 상무위원 5명, 정 위원 12명 후보위원 15명과 비서국 10명, 중앙군사위 위원 19명 중앙위원 124명 선임하였다.
특히 김경희의 부상은 경험이 적고 젊은 김정은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할 경우 유일 핏불인 김경희에게 실권을 넘기기 위한 안전판으로 분석된다. 수령유일지배체제 유지를 위해 핏줄과 군의 충성파에만 의존하므로 개혁·개방과는 거리가 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