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지전>을 관람한 노인세대의 감상 한승조(대불총 상임고문) 영화, 고지전(高地戰)을 관람하였다. 그 영화가 한국의 6・25전쟁을 묘사한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전쟁의 비극을 몸소 경험하였던 노인세대인 나도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의 6・25전쟁은 한국사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사에도 크게 기록될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전 세계인의 주목과 관심을 끌만한 문학작품도 영화도 나오지 않았던 일을 아쉽게 생각해 왔던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난 나의 감상은 참 잘 만들었다. 한국의 영화제작 수준은 이미 거의 세계 정상급에 도달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한국전쟁을 보는 시각이나 인식이 너무 피상적이다. 몇 년 전에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고는 그 제작의 관점이 너무 유치한데 대하여 크게 실망하였다. 남북한의 국가보다는 형제애가 더 우선한다는 메시지에 대하여 세계 지성인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그 줄거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에 본의 아니게 군에 입대하여 여러 전선을 전전하다가 제법 고참병이 되었던 젊은 병사가 어느 날 인민군과 교전하다가 적의 참호로 쳐들어갔다. 거기서 죽은 인민군 병사가 자신의 친형임을 확인하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런 전쟁은 무엇 때문에 했나? 이 때문에 심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 신분을 위장하여 인민군편에 서서 싸우게 된다. 이런 작품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인의 호평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국제무대에 내놓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번 高地戰은 1953년 휴전회담 막바지에 벌어지는 高地쟁탈전이었다. 남북한은 휴전명령이 나려오기 전에 한 뺨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라는 명령을 상부로부터 받고는 이전투구의 살육전을 펼친다. 휴전회담이 거의 2년 반이나 계속되는 바람에 그 동안 50만 명의 남북한 병사들 생명이 소모되었다는 것이다. 일반 장병들은 휴전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학수고대하지만 명령은 지겨울 정도로 안 떨어진다. 그리고 국지전이라는 인간도살 행위만 계속되니 끔찍한 지옥생활과 인간비극만 끝없이 되풀이 된다. 이런 지옥의 염화(炎火)와 아수라들의 북새통에서도 매우 인간적인 사건들이 벌어진다. 후방이나 타 지역에 남겨두고 온 가족이나 애인에게 편지를 전달하고자 노심초사하던 남북한의 장병들이 그들 편지를 땅에 묻으면서 그와 함께 술이나 떡 등 음식물을 같이 묻어둔다. 이 편지를 후방에 가서 부쳐주는 노고에 대한 사례(謝禮)를 위한 것일 것이다. 남북의 고참병들은 그런 뜻을 알면서 음식과 술을 찾아내어 꺼내어 먹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들도 편지를 써서 뇌물과 함께 묻어두는 것이다. 이것은 남북한 장병들간의 내통행위로 보일 수가 있는 일이나 이런 인간적인 감정표현으로 보아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의 괴이스러운 일은 남북한의 장병들이 즐겨불렀던 ‘전선야곡’이란 노래였다. 대부분 장병의 심정 속으로 파고들며 큰 공감을 짙게 일으키는 애달픈 유행가인데 가끔 마음을 실어서 혼자서 불러 보다가 그러다가 그것이 어쩌다가 남북 장병간의 합창으로 이어졌던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도 反理念的인 과장이 작용했겠지만 이런 거짓말 같은 에피소드가 결단코 없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도대체 이런 저주스러운 6・25 전쟁이 어째서 일어났던가? 또 본의 아니게 일어났던 전쟁이라면 왜 더 빨리 끝내질 못했던가? 6・25 전쟁은 북한의 공산정권이 남한을 적화통일할 목적으로 오랜 준비 끝에 계획적으로 일으켰던 전쟁이었다. 남한은 당시 그 침략에 맞서서 싸울 만한 군사력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미국은 세계공산주의의 확대 팽창을 저지할 목적으로 모든 외교수단과 군사력을 동원하여 남한 방위에 투입하였다. 그렇게 남한의 국방력을 보충하며 지켜주다가 남한방위의 목표를 성취한 것이다. 左派세력은 미국의 이런 역할을 저주하며 미워한 나머지 절치부심 적극적으로 저지하고자 광분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 및 경제원조가 한국에 반쪽정권이나마 세워서 유지하는데 기여하였던 것이다. 북한공산주의는 미국이 세계지배를 강행하고자 남북한을 분단하여 한국전쟁을 지속시켰다고 악선전하여 왔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한국정부는 美帝國主義의 괴뢰정권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이렇게 부인하려는 것인데 이런 부정적인 인식과 정서가 북한공산주의의 사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이런 악선전은 끈질지게 되풀해 온 결과로 이러한 악선전이 종북좌파세력에 의하여 받들어짐으로써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한 왜곡논리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온 것이다. 그런 못된 나라를 왜 지키려고 그렇게 어려운 전쟁을 지속하느냐? 이러한 논리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이 이 나라 보수 우익 반동들의 논리이나. 그 목소리는 크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기왕 한국 땅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을 겪게 되었을 바에는 북한까지 점령하기를 바랐던 것이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그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의 휴전은 한국전쟁이 한반도 밖으로 확전되어 나감을 저지하려는 연합국의 배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그 휴전회담이 2년 반이나 계속되었던 이유도 전쟁수단으로 쟁취할 수가 없었던 혁명전쟁의 성과를 회담의 수단으로 얻으려는 북한공산주의의 전략 때문이었다. 그런 북한공산주의의 전략전술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결과적으로 휴전회담은 2년 반이나 지속되는 동안 남북한 간의 땅 빼앗기 경쟁, 상대방 밀어내기, 우리만이 아니라 너희들도 같이 죽어야 해, 이런 惡心과 오기) 대결이 계속되어서 남북한의 장병들은 물론 주민들까지도 지옥고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래서 너무나 지겹도록 계속되었던 전쟁인데 이것이 바로 한민족이 치러야 했던 업장(業障) 때문이 아니었던가? 필자가 불교도이다 보니 한국전쟁을 자연 인과응보(因果業報) 설에 의하여 해석하게 된다. 무릇 좋은 일이 일어나려면 그 보다 먼저 나쁜 일이 생겨서 사람들이 큰 고생을 겪게 된다. 그런 업장을 슬기롭게 넘겨야만 애초에 오려고 했던 경사를 맞이할 수가 있게 된다. 또 무릇 나쁜 일(凶事-흉사)이 일어나려면 그에 앞서서 좋은 일(慶事-경사)이 먼저 온다. 그렇게 마음을 들뜨게 한 다음 진짜 나쁜 일(凶事)이 급습을 하게 된다. 한국전쟁은 엄청난 흉사였다. 그러나 한국국민이 그 큰 不幸을 슬기롭게 또 용감하게 잘 넘겼기 때문에 한국은 국가수호와 경제발전이라는 큰 길운(吉運)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을 통하여 한국인의 조상이 지어왔던 모든 罪因과 業障을 씻어냈기 때문에 한국은 1960-80년에 이르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성취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본다면 6・25전쟁은 한국의 民族復興을 위하여 치러야 했던 값비싼 代價였던 것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국전쟁은 한민족사의 가장 불행하고 수치스러운 사건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며 좌파성향의 否定的인 해석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태극기를 휘날리며>라는 전쟁영화는 한국전쟁을 완전히 부정적으로만 보려는 좌파성향의 영화였다. 흥행에서는 100억 이상의 거금을 들여서 만든 영화로 1000만 관객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하나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는 데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에 비하면 <고지전>도 한국전쟁을 부정적인 시각에서만 다루던 좌파적인 시각을 아주 벗어난 것은 아니나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님으로 <태국기 휘날리며>보다는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2011년 8월 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