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날 즈음 연이은 태풍으로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추석상차림이 힘들어졌고, 안 그래도 경제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하늘마져 도와주지 않는다며 한숨 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들에게 들려드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이가 부처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저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빈털터리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것은 일곱 가지나 되느니라. 네가 이 일곱 가지를 진실하게 행하면 하는 일이 순조로워지리라.”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무재칠시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화안시(和顔施)입니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채 부드럽고 정답게 남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정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언시(言施)입니다.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고 대하는 것이죠. 사랑의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양보의 말입니다. 세 번째는 심시(心施)입니다.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따뜻한 마음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줍니다. 네 번째는 안시(眼施)입니다. 호의를 담은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신시(身施)입니다. 힘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약한 사람의 짐을 들어주거나 일손을 거들고,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누는 것입니다. 신시를 실천하면 몸가짐이 바르게 됩니다. 여섯 번째는 성좌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죠. 지치고 힘든 이에게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곱 번째는 방사시(房舍施)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편하게 쉴 공간을 주는 것입니다. 굳이 묻지 않고도 상대의 속을 헤아려 알아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가 보시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불도를 이루기 위한 일곱 가지 덕arh을 왜 하필이면 재무에 비유 했을까요? 아마도 사람들이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처럼, 수행자는 여러 수행 덕목으로 불도를 이뤄 해탈과 열반을 누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재물 비유는 이 세상 최고의 부자는 바로 부처님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의 기준이 ‘평화와 행복’이라면 가장 큰 부자는 필시 부처님일 것입니다. 이것이 맞다면 ‘재물’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외롭고, 가엾고,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무언가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줄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간난한 사람이라도 베풀 것은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얼마나 의미 있습니까?
무재칠시는 쉽습니다. 길을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이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빛을 주어도 보시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긴 여행을 떠난 사람의 피곤을 생각해 귀한 자신의 방을 내어 주었습니다. 불암사에서도 지친 사람들에게 말없이 방 한 칸을 내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방을 내어준다는 마음으로 위로해 준다면 이웃의 정이 그리운 이 시대에 훌륭한 보시가 되지 않을까요?
장기기증 또한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배려이고,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보시입니다. 장기기증을 약속하는 희망등록을 한 회원 여러분들은 지금 기증한 것이 아님에도 서약 자체만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나눔은 기분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힘이 납니다. 힘이 나면 건강해집니다. 건강하게 공덕을 짓는 여러분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