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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호국불교와 민중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

한국의 호국불교와 민중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

지난 2007년 6월 27일 (수) 오후2시부터 6시까지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대한민국의 미래와 불교도의 자세" 라는 대주제로 대불총 제1회 호국불교 대토론회가 있었다.


 


이 글은 기조강연인 "한국의 호국불교와 민중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국난극복을 위한 대불총의 과제와 활동방향-"에 관한 글의 요약이다. 원문은 길기 때문에 자료실에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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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강연 요약


韓國의 護國불교와 民衆불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


- 국난극복을 위한 대불총의 과제와 활동방향-


 


 


 



 






1. 이 나라의 危機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나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국가위기는 대충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가 있을 것 같다. ① 국가안보 외교상의 危機(위기). 대한민국은 현재 북한의 군사력과 核위협 아래 놓여져 있다. 그동안 한미연합사가 한반도의 안보를 지켜왔는데 정부의 反美성향으로 인하여 한미동맹체제는 현저하게 弛緩(이완)되어 있는 상태이며 따라서 한국은 서방국가들로부터 同盟체제의 弛緩(이완)과 外交的으로 孤立化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② 국민경제가 成長動因을 상실하여 국민대중의 상대적 궁핍화와 빈곤화가 확대되어 왔다. 사회의 양극화가 언론에 의하여 논란되어 왔으며 만성적인 경기불황인데다가 국제적 收支 赤字와 家計負債의 증가로 인하여 40대 자살률 세계1위의 불명예로 국민적 좌절감과 사회갈등이 심화되어 왔다.


③ 학교교육의 황폐화. 가정교육도 TV시청에 의하여 밀려나 있는 꼴이다. 全敎組 교사들에 의한 어린이들 意識化 교육도 저지되지 못하고 있으며 제도권 언론사들에 의한 편파보도와 國民誤導的 방송내용의 악영향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개선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④ 親北左派세력의 主導權 장악과 애국적 保守右派세력의 왜소화 고립화 추세도 인지는 되어왔으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대한민국의 正體性 혼란과 國論분열의 深化가 염려되고 있으며 조만간에 벌어질 고려연방공화국과 대한민국의 대립과 爭覇(쟁패)는 과연 어느 쪽의 勝利(승리)로 종결할런지 예측불허의 상태이다.


오늘의 국가위기에 대하여 한국의 불교가 속수무책이었으며 역사적으로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던 이유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도 불교의 基本敎理라고 할 四諦八正道 六바라밀의 원리가 지켜졌는가를 검토해 보면 거의 絶緣(절연)의 상태였음을 발견하게 된다. 八正道라 하면 正見, 정사유, 정언, 正業, 正命, 정정진, 정념, 正定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까맣게 失踪(실종)되어서 오늘의 國家危機를 맞이했던 것이었다.






2. 韓國佛敎의 역사적 位相과 그의 현주소


    


한국이 현재 不治(불치)의 亡國病에 걸려들어서 그로부터 헤어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그런 재앙과 고난이 제거됨이 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더구나 惡化一路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우리는 눈을 크게 돌려서 불교라는 종교신앙과 그와 관련된 역사를 되돌아보아야만 우리가 처해온 현실과 그 현주소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成(성) 住(주) 壞(괴) 空(공)의 변화과정을 겪는다고 말한다. 고타마 붓다는 어딘가에서 불교가 正法시대 500년, 像法시대 500년 그리고 末法시대 약 500년동안 겪다가 그 사회가 멸망해 없어지거나 아니면 불교가 되살아나서 밝은 전망을 보여주는 경우 새 부처님 곧 미륵불이 降臨(강림)하여 세계를 佛國淨土가 지상에서 세워질 것으로 전망하였던 것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근절되기에 약 50년 앞서서 중국에서도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佛法을 傳道(전도)하였다. 그 후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불교는 중국대륙에 와서 漢字문자로 탈바꿈한 끝에 크게 일어나서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지역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그러나 중국으로 전파된 불교는 약 1100년 만에 공산주의 혁명으로 탄압받다가 소멸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중국화된 불교가 고스란히 한반도로 들어 왔는데 新羅시대에 크게 꽃피었다. 신라・통일신라이후에 와서 正法시대로부터 像法(상법)시대로 옮겨 왔으며 고려조에 와서 正法시대가 초기에 활성화되는 듯이 보였으나 像法시대의 혼합이 고려조 말까지 지속되었다. 13세기에 蒙古(몽고)의 침략을 받은 고려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몽고군의 침공으로부터 국토와 문화를 지켜냈으며 또 세계 어느 나라도 발간하지 못했던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각인 인쇄해낸 것은 동양불교의 위대한 성취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대까지는 조선의 崇儒抑佛(숭유억불)정책의 도입으로 한반도는 末法시대의 모습을 밀려내려간 상태였다. 그러나 休靜 西山大師가 임진왜란시 僧兵을 이끌어서 일본침략에 抗戰(항전)할 수가 있었던 것은 대단한 성취였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末法시대라는 것은 불교의 儀禮行使(의례행사)나 사찰과 문명의 외형은 존속하나 불교신앙의 정신과 내용이 크게 쇠퇴해버린 형상을 두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한국불교의 정통으로 자리잡은 것은 호국불교였지만 호국불교의 그늘에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불교와는 길을 달리 하는 민중불교의 움직임이 있어왔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앞서도 시사한 바와 같이 신라의 불교는 국태민안과 왕실의 隆盛(융성)을 기원하는 왕실불교가 주축을 이루었지만 또 한 편에는 하층민중에게도 구원의 손을 뻗으려는 민중불교의 命脈(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왕실불교의 대표자가 慈藏(자장)율사나 義湘(의상)대사라면 大安대사나 元曉 등을 비롯한 여러 高德들은 민중불교의 선구자들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원효가 창건했다는 淨土宗은 無學貧民(무학빈민)들 만을 위한 敎宗라고 말할 수가 없다. 민중불교에는 엄밀한 학문적인 체계를 갖춘 교리가 없으며 승계되는 학풍도 계파도 없다. 이론의 체계가 없는 대신 타종교와의 혼합잡탕성과 폭발적인 행동(실천)지향성이 그들의 특징을 이룬다. 신라 말에는 미륵으로 자처했던 궁예, 교려시대에는 大爲國(대위국)을 선포했던 묘청이나 그리고 일부 민중들로부터 미륵으로 불렸던 신돈의 개혁노력도 그의 드러난 사건들이었다고 보아진다. 19세기 후엽에 생겨난 최제우의 東學운동이나 전봉준의 농민반란운동도 민중불교의 한 변형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고려의 멸망 후 조선의 崇儒抑佛정책 아래 민중불교운동은 해체와 변태 그리고 異質化의 길로 빠지더니 19세기 한말에 와서는 불교계가 더욱 쇠퇴하면서 천도교, 증산교, 원불교 등 신흥민족종교의 여러 宗派(종파)들이 분열되었다. 이런 종파들은 바로 民衆佛敎가 각기 시대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여 새로운 衣裳(의상)을 걸쳐 입고 나타난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성 싶다.


북한의 김일성의 사상과 체제도 민중불교 내지 신흥민족종교의 가장 타락된 형태라고 보아야겠다. 북한공산주의는 소련 주둔군의 한 정치장교가 각본을 쓰고 각색 연출하는 동안은 제법 공산국가다운 모습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에는 학식이 높았던 남노당출신 공산주의자들을 모조리 처형하여 제거해 버렸으며 50년대에 친소파, 친중파 공산주의자들을 남김없이 숙청한 다음에는 김일성체제는 공산국가 중에서도 매우 異質的(이질적)인 존재로 변질해 버렸다. 즉 소련공산주의체제의 후견을 벗어나자 공산주의국가와는 거리가 먼 하나의 邪敎國家(사교국가)의 면모를 보여왔다. 金日成主義는 民衆佛敎의 변종의 타락 왜곡된 상태로 보려는 관점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3. 親北勢力과 共産主義思想에 대한 佛敎思想의 시각




共産主義 思想과 勢力의 뿌리와 한국불교


우선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사상과 불교사상은 상생관계인가 또는 상극관계인가? 또 상생한다면 무조건적인 상생인가 또는 조건부 상생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시공산주의와 원시불교사상에는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두 사상이 모두 사회공동체주의를 표방하지만 개인주의나 사유재산제도를 선호하지 않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 오로지 차이가 있다면 불교의 공산주의사상은 사람들의 자비심으로 인하여 자발적으로 재산을 헌납하는데 비하여 原始共産主義는 사유재산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현대공산주의는 이른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말하며 그 사상은 다음 다섯가지의 요인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철학적인 유물론이며 유물변증법의 철학이다. 불교는 唯心論(유심론)이나 유물변증법과 같은 독단을 부정한다. 둘째는 역사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사적유물론을 주장한다. 불교는 계급투쟁에 의해서 역사가 발전한다는 도그마를 받아드리지 않는다. 셋째 불교에서는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지배하고 그것이 정치사회체제를 만들어낸다는 마르크스의 국가론을 받아드리기를 거부한다. 넷째, 마르크스주의가 자랑하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의 분석이다. 그러나 불교도는 그러한 설은 환상이거나 착각이라고 생각할 뿐 그런 사이비 과학에 대하여 흥미도 갖지 않는다.


요컨대 불교사상은 마르크스의 철학, 경제학, 역사이론, 정치론에 흥미도 관심도 갖기를 거부함으로써 두 사상은 양립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주민들이 불교도이면서 공산주의자가 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좌경사상은 有産者(유산자)와 無産者(무산자)간의 빈부격차를 중요시한다.




공산주의와 불교사상의 평등사상은 다르다


불교사상도 사회적 평등을 매우 중요시함으로써 양자간의 類似性(유사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으나 불교의 평등사상은 사람들의 가능성 잠재성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지 켤코 결과의 평등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두 사상은 전혀 부합되지 않는 사상임을 알아야 한다.


김일성・김정일 체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들먹이지만 그것은 외부적인 형식이나 言辭의 借用(차용)에 것이지 실질적 내용은 동양적인 전제군주체제이며 또 민중불교의 변형이며 타락된 형태인 邪敎國家(사교국가)에 귀착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민중불교와의 相合性 類似性을 볼 수 있으나 호국불교와는 상반하는 성격으로 나타나 있다.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기 전에는 반공정권 내부를 분열시킬 목적으로 또 반외세투쟁에 앞장 세워주기 위하여 최대한으로 이용하지만 집권 후에는 불교를 폐지하거나 탄압하려고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해방 후 좌우익세력의 분열 대립 그리고 民衆宗敎-佛敎




호국불교와 민중불교의 차이점


호국불교는 4諦8正道 및 육파라밀의 교리를 지키려는 正法을 선양하고 보살도정신을 실천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통불교사상임을 자처한다. 그에 비하여 民衆佛敎는 正法과는 거리가 있는 阿修羅정신을 발휘하여 衆生들의 번뇌 망상을 자극하고 선동함으로써 기존질서를 파괴하고 북한의 좌경정권에게 복속시키려는 친북좌편향의 불교사상이 아닌지 검토해 볼 일이다.


護國佛敎(호국불교)는 衆生(중생)을 불완전한 인격체로 보며 그들의 罪業(죄업)을 소멸하고 善業(선업)을 짓도록 권유함으로써 모두의 가려진 佛性을 밝혀내어 자신과 남들에게 福德을 짓게 하는 함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고자 기도한다.


반면에 民衆불교는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한다는 이유로써 국가나 사회의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며 기득권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저항투쟁으로 민중의 佛性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煽動(선동)과 선전을 통하여 보다 많은 죄업으로 誘導(유도)해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호국불교는 正法(정법)이 선양하고자 하는 慈悲(자비)와 智慧(지혜)의 정신과 衆生濟度의 願力을 가지며 불교교리와 보살행을 보급하려고 힘쓰는데 비하여 민중불교는 사회적 약자를 두둔하며 저항투쟁을 통하여 고난을 더 힘들게 하는 투쟁노선을 추구한다.


호국불교가 1500년 전부터 전래되어 내려온 정통불교라고 하지만 그동안 역사적으로 범해온 많은 過誤와 형식화된 관례와 허례허식 속에 유지되어왔던 무책임성이나 腐敗(부패)를 시정화고 개혁하기 위해서 민중불교가 출현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불교는 해방후부터 19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불교 내부의 분열과 분규가 끊이지 않았으며 부정부패와 온 갓 비리의 소문으로 사회적인 威信과 信望을 잃어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해방후의 한국불교가 무법과 불법의 늪에 빠져 있었으므로 불교의 淨化와 재건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말도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래서 佛敎개혁의 깃발을 올린 것이 高銀, 黃晳瑛 등을 비롯한 여익구, 전재성 등 민중불교론자들이었다.


불교사학자 김광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교계에서 민중불교라는 새로운 흐름이 구체화된 것은 1976년 여름 전주 송광사에서 4박5일간 개최된 대학생불교연합회의 제4차 화랑대회였다. 그 중의 한 논문인 전재성이 발표한 민중불교론이었다. 이 민중불교론은 한용운의 불교 대중화의 이론에서 착용한 ‘민중불교’를 도입하여 지배자의 입장에 섰던 불교를 피지배자 해방에 기여하는 불교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핵심이었다.


이런 민중불교의 운동은 1980년의 광주사태로 인한 저항운동의 波高(파고)를 타고 급성장하였다. 그러므로 민중불교가 일어난 데는 재래의 불교계와 사회현실이 적지 않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정부의 과오나 실수가 김일성 김정일 정권에 의하여 시정되는 것도 보상되는 갓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랜 護國佛敎의 과오가 民衆佛敎의 지배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보수우파의 호국불교세력의 게으름과 무책임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호국불교와 민중불교는 화해 협력할 수 있을까


호국불교는 현재 한국의 보수 내지 中道派(중도파)들이 지키려는 불교사상임에 비하여 民衆佛敎(민중불교)는 혁신 내지 친북좌파들이 주장하는 불교노선이다. 그래서 화해 협력이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 현실이나 불교는 본래가 智慧(지혜)와 慈悲(자비)의 종교이다. 그러므로 불교도이면서 이런 기본정신을 망각하고 남들을 무조건 불신 증오하고 적대하려는 사람들은 불교인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또한 불교는 본래가 中道(중도)사상이다. 따라서 좌우를 극단적으로 고집하는 사람은 眞性(진성) 불교인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불교인은 좌파이든 우파이든 자신들의 입장을 절대시하며 고집하려고 들 것이 아니라 늘 양보하고 타협하며 상대방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좌파는 상대적으로 젊고 적극적이며 투쟁적이어서 자기파가 아닌 측을 미워하며 멸시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하거나 상대방을 극구 비난 폄하하려는 버릇이 있다. 이러한 罪業을 계속 짓고 있으면서 福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보수파나 중도파의 불교인들이 친북좌파들을 아량으로 감싸고 포용하는 자세를 가짐이 바람직하다. 세계나 정치 경제 사회 문제 중에 지혜와 자비의 정신을 가지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겠는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견뎌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의 김정일정권, 남한의 친북좌파 그리고 민중종교세력이 하나로 뭉쳐져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일이 없도록 저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혁신적이며 친북좌파성향의 인사들에게도 해야 할 말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두둔하고 편들며 무조건 옹호하며 지지하려는 정신상태를 버려야 한다. 오늘의 북한은 현대세계의 가장 위험하고 말썽이 많은 문제아이며 不良國家(불량국가)로 지목받고 있는 정치집단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하는 사악한 말, 反文明的인 행위를 편들며 무조건 협력하며 지원하려고 드는가?


그러므로 김정일정권이나 북측 지도층과 어떤 관계를 갖거나 지원해야 하는 경우에도 남한의 보수세력이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의 언론 또는 식자들의 의견을 들으며 자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공통으로 결정하고 행동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정신자세를 가진다면 좌우파나 호국불교와 민중불교측이 화해 협력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5. 한국불교의 현실적 課題와 大佛總의 활동방향




위에서 보아 온 바와 같이 현재 대한민국의 國家危機는 모두 대한민국을 없앰으로써 한반도를 공산화통일하려는 북측정권과 그들에게 협조하는 남한의 친북좌파세력에 의하여 조성된 것이었다. 그나마 북한의 군사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한공산주의와 손잡은 남한의 친북좌파들의 문화투쟁, 곧 사상투쟁과 심리전술등이 이룩해 낸 성과였다.


좌파들의 문화투쟁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남한의 정치권력의 획득에 앞서서 언론방송과 학교교육의 장악을 장악하기 시작함으로써 좌파세력이 퍼뜨린 역사인식이나 사회인식의 왜곡과 偏見(편견)과 邪見(사견)을 영속시킬 수가 있는 사회적인 발판을 마련하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종교세력마저도 상당부분이 북한과 친북좌파세력에 의하여 무력화되거나 부분적으로나마 오염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重視(중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강구해야만 할 것 같다.




(1) 韓國佛敎의 先進化


이러한 현실상황에 비추어서 대불총이 앞으로 벌이고 추진해야 할 과제를 몇 가지만이라도 제시해 보겠다. 첫째는 한국의 불교계로 하여금 한국불교를 쇄신하여 先進化함으로써 한국에서 正法治世(정법치세)를 할 수가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또 불교계와 한국사회에 대한 文化革命(문화혁명)의 主體(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로 보아서는 대불총이 그런 일을 할 만한 권한도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고는 보기 어려우나 추구하는 목적이 옳고 건실하다면 불교계는 물론 각계각층의 호응과 지원을 받을 수가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他宗敎단체와의 연대투쟁


둘째, 대불총은 당면한 투쟁목표에 보다 훨씬 광범한 사회집단과 계층의 동참과 지지를 얻는 일이 중요하며 종교집단과 사회집단과의 연합을 추진해야만 한다. 그러자면 당면과제보다도 고차원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천에 앞장서야만 할 것 같다. 예를 든다면 동아시아공동체를 추구한다던지 한국인의 국민성이나 그 등급을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기독교세력이나 기타 유력한 사회집단의 동참과 협력을 끌어내기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는 民族國家(민족국가)의 시대를 넘어서서 世界化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세계화는 시대의 大勢(대세)이지만 그에 앞서서 동아시아공동체를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아시아는 21세기를 주도하는 지역이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소견이다.


동아시아공동체의 일은 중국이이나 일본도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일이다. 그러나 한민족이 잘 할 수가 있고 또 불교단체가 비교적 적은 저항을 받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추진할 수가 있다. 또 동아시아공동체의 형성은 한국문화의 韓流(한류)추세를 최대화하는데도 크게 기여할 수가 있다.




(3) 세대간의 갈등과 사상대립을 극복하는 문화투쟁


셋째는 한국사회에 국가위기와 사회해체를 공작해온 북한 및 친북용공세력에 대한 문화투쟁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대상으로 문화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한국의 혼란과 위기의 震源地(진원지)를 공략한다는 것이 된다. 그런 과업을 비켜가면서 한국의 국난을 극복할 방안이 없는 것인지 막연한 희망사항을 제시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문화투쟁의 기법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이버 투쟁방법


그를 위한 구체적인 투쟁방법을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젊은 세대와의 접촉이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사이버투쟁을 강화해야 하며 또 그 내용물과 조직망을 확충하는 일이다. 특히 다른 단체의 사이버매체와의 연계도 최대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법에 숙달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CBD이론의 보급


② 위태로워진 국가위기에 처하여 상황이 요구한다면 대불총 회원들은 일선을 지키는 장병들처럼 나서서 체제수호를 위하여 싸우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武器도 없는 시민들이 어떻게 전투행위를 하느냐는 말이 나올 것이나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정부권력자들을 골탕 먹이거나 좌절케 하는‘민간주도방위( Civilian Based Defense)’의 이론과 기법을 알고 있으므로 기회가 주어지면 이것을 소개할 것이다.




他종교세력과의 연대투쟁


③ 대불총 支會 활동을 활성화하며 또 다른 종교나 사회단체와의 연합이 지역단위로 이루어짐이 바람직하다. 현실적으로 지회의 창설과 유지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지만 사이버매체의 활용 여하에 따라서 또 청년부를 크게 확대하며 젊은 세대를 다수 끌어드릴 수가 있다. 또 지역주민들에게 민간주도방위의 기법을 연습시키는 일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지회로 인하여 전국순회 강연회도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가 있을 것이다.


④ 대불총 본부나 지회나 회원들간의 연수활동이 강화되어야 하나 또 국제적인 민간교류 협력한다. 회원 연수나 성지순례를 이용하여 연수 및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시민은 主權者(주권자)이며 따라서 民意(민의)를 거스르는 정부권력을 다스릴 수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주권회복운동은 소수의 높은 수준의 시민들이 주도해야 하는 것이나 나라를 잘 못 이끄는 정치권력을 제압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보급하는 일도 중요할 것 같다.


이러한 원대하고 웅장한 發願(발원)이 없이는 한국국민의 熱情(열정)과 鬪志(투지)에 불을 지필 수가 없을 것이며 또 이런 거대한 꿈과 결의로 단결하지 않는 한 한국의 좌우대립이나 남북간의 순조로운 합심과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에필로그




大佛總(대불총)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菩薩道정신의 앙양과 그 실천의 주도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은 자기자신과 이웃 동료들의 인격완성을 도와주면서 理想社會 곧 佛國淨土(불국정토)를 구현할 사명감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불교인들의 이상적인 人間像을 제시한 것이나 다른 종교도 이와 대동소이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살도정신은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기독교인들에게는‘참다운 기독교인’‘하나님의 使徒’가 되라는 뜻이지 불교신자가 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無住相(무주상) 布施(보시)나 봉사할 기회를 갖자는 것이며 동아시아 나아가서 세계의 평화와 복지에 이바지할 봉사의 기회를 가짐으로써 내 자신과 우리의 善業(선업)을 지을 기회를 가지면 되는 것이다. 언어나 종교에 구애됨이 없이 가능한 일부터 하나하나 추진해 나가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


 


 

참고자료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