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운(실버타임즈 편집국장)
“왕께서는 하필 왈 이(利)입니까?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은 <맹자> 첫머리 양혜왕(梁惠王)장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맹자(孟子)가 처음 양(梁) 혜왕(惠王)을 만났다.
왕은 맹자를 보자 “노인장께서 천리를 멀다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어떻한 이로움이 있겠나이까?” 이렇게 물은데 대한 대답이다.
이 말에 이어 맹자는
"왕이 나라의 이익만을 찾는다면
그 밑의 대부들은 자기 집의 이익만을 취할 것이고,
또 그 아래의 선비와 대중들은 자기들 일신의 이익만을 추구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상하가 서로 이익만을 추구 하는 것으로 얽힌다면 그 나라는 망하고 말 것"이라고 한다.
공자는 <논어> 첫 머리에서 “배우고 때로 익힌다(學而時習之)”라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보다 약 150여년 늦게 전국(戰國)시대를 산 맹자는 책의 첫 머리를 ‘인의’로 시작하고 있다. 이로 보면 춘추의 공자 시대는 교육이 중했고, 맹자의 전국시대는 ‘인의의 도덕’이 더 중시되었던 같다.
그런데 오늘 날 우리 사회는 맹자 시대를 몇배 능가하는 ‘義.의 道德’이 더 필요하다.
맹자가 말 하는 인의는 이미 공자가 설파 한 것이지만, 맹자는 그 의의(意義)를 더욱 강조 했다. 주자(朱子)에 따르면
인은 마음의 덕(心之德)이고 사랑의 이치(愛之理)이며,
의는 마음의 제약(心之制)이고 일의 마땅함(事之宜)이다.
이렇게 볼 때, 맹자의 의는 모름지기 군주는 마음의 덕을 쌓고, 과도한 욕심을 자제하며, 사리의 마땅함을 따라 백성을 다스리고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시대 수 십개의 제후국들은 서로가 이익만을 위해 쉴새 없이 무자비한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양혜왕도 맹자 같은 현자를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려 물어 본 것인데, 맹자는 오직 인의가 있을 뿐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특히 맹자는 정치와 인간사(人間事)에서 의(心制와 義理)를 강조 했다.
맹자는 군주를 비롯한 사회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어서는 안되고 오직 의로써 자신들에게 지워진 정치적, 도덕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양 혜왕에게도 과감하게 義를 가르친 것이다. 맹자가 그 시대의 지도층에게 이토록 외친 ‘인의’는 요새말로 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실천에 해당한다. 로마 시대부터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서 전승되고 있는 이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리고 있는 높은 사회적 지위만큼 그에 걸맞게 수준 높은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 그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사관급 이상의 행정관료나 장 차관, 판-검사 등의 법조인들은 노블레스 계층에 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현직을 떠나면 로펌이나 기업체 등에 재취업하면서
현직 때의 월급의 수십배에 달하는 수입을 올리고
또 다시 기회가 되면 장 차관급의 고위 공직이나 국회의원으로 진출한다.
그래서 명예와 엄청난 부가 개미 체바퀴 돌듯 윤회 하는 행복을 누린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천은 먼 나라의 이야기다. 퇴직한 법조인들이나 관료들이 로펌이나 기업체에 재취업하여 받는 연봉은 수억에서 10억대를 능가하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의 정-관 -법의 상층 권력구조가 어떻게 짜여저 있길래 퇴직 관료. 법조인들이 이처럼 천문학적 대우를 받는 일이 가능할까?
일개 변호사 업체인 하나의 로펌에서 한 사람의 전관(前官)을 변호사로 영입하여 연간 10억을 주는 것을 우리 같은 평민들은 이해 할 수 없을 뿐더러 분노마저 참을 수 없다.
이건 결코 질투가 아니다. 부조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업이란 다른이에게서 법적인 소송을 수탁 받아 상대방과 다투는 일이다. 그런데 그 변호사가 이런 일을 매일 하지도 않고 가끔 한건씩 하면서 10억을 번다는 것이니, 관과 변호사, 업자 간의 삼각 관계 속에서 모종의 암묵적 관행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로펌도 이들을 채용하여 어떤 큰 이익을 보는 일이 없는 한 이처럼 막대한 보수를 지불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위 전직을 기용하면 소송 등의 다툼이나 인허가에서 필시 승(勝)할 수 있는 큰 확률이 이미 실증되었기에 전관(前官)의 몸값이 이처럼 천정부지가 아니겠는가 싶다.
‘전관예우’라는 공직 사회의 관례가 이런 현상의 원흉이다.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법적 다툼이나 법적으로나 관례상 불가능한 일들도 ‘전관예우’의 관행에 따라 전직 상관의 또 다른 ‘직함’ 앞에서는 가능한 일로 될 수 있기에 로펌이나 기업들은 전관을 영입하여 크게 예우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관’들은 이런 곳에 얼마간 몸담고 있다가 다시 한층 높은 자리로 다시 복귀하는 사례가 허다하여 ‘현관(現官)’들은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이들 ‘전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위의 이러한 내용들은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조각에서 드러난 사실들이다. 연봉 10억이면 우리같은 대학 교수들은 월급에서 용돈도 아끼며 가히 20년은 모아야할 금액이다.
이들이 교수들 20년 월급량을 1년에 번다고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부조리가 한국 사회의 반목과 갈등의 양극화를 부채질할 중대한 요인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이다. 여기는 탐욕으로 가득찬 뉴욬의 월가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조각에서 각료 후보자들의 수많은 부조리 즉 병역, 세금포탈, 부정한 재산증식 같은 것들을 목도 하였다. 그리고 본인 자신들의 탐욕도 문제지만, 그 탐욕의 현실화를 가능케 하는 관계와 법조계에 뿌리 깊게 내린 불의(不義)한 관행들이 더 문제라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관행들의 원흉은 ‘전관예우’라는 사실도 파악 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 전관예우가 존속하는 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향하는 온전한 ‘법치’는 불가능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을 통하여 일부 특수인들이 엄청난 이익을 챙기는 것은 현대사회의 자본주의 윤리로 보아도 노동과 관계없는 불로소득이며, 불특정 다수에게 막대한 불이익을 주는 불공정 행위다.
박대통령은 이점을 명심하고 재임동안 이를 척결할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바란다.
작가로서 우리나라 사극계의 원로인 신봉승 에술원 회원은 지난 2월 국무총리 후보감들이 언론에 설왕설래 할 때, 한 TV방송에서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서 꼽을 만한 인재를 조선시대 인물에서 고른다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 선생을 들었다. 이원익 대감은 선조, 광해, 인조의 3대에 걸처 각종 벼슬은 물론 영의정만도 5번이나 지냈다. 그러고도 말년 퇴직하여서는 초가 삼칸 집에 살며, 베옷 입고 쓸쓸히 혼자 살아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줄을 몰랐다 한다. 그는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淸白吏)다. 그리고 능력과 식견, 신녑과 원칙을 견지한 인의(仁義)의 실천자 였다.
또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평생토록 철저히 실천한 선비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유로 신봉승 선생은 그를 박근혜 정부의 초대 총리로 추천 하였던 것이다.
(2013.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