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와 민중폭동이 동일시될 수 있는가?
한승조 (대불총 상임고문, 고려대 명예교수)
최근 필자는 원광대의 이주천 교수가 TV조선의 시사토론에서
1980년의 광주사태가 민주화가 아니라 민중폭동이었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관련 민간단체로부터 고소를 당하여 광주법원에서 출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에 관하여 문의를 받은 바가 있으므로 정치학자로서의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언어소통상의 용어는 사람들간의 합의에 의하여 어떤 말이라도 사용할 수가 있다.
특히 여러 사람들의 동의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말이라면
의사전달을 위한 수단이라는 뜻에서 자의로 만들어서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이 사용하는 말과 학술적인 용어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것이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
광주사태를 많은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말하는데 합의하여 사용했다면 그것을 시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학술적인 용어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이주천 교수가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면
그것은 학술상의 용어로 부적절하며
차라리 광주민중폭동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함은
학자로서 할 수가 있는 말이며 그의 발언이 부당했던 것이 아니다.
서양의 ‘데모크라시’는 말은
민중을 의미하는 Demos와 권력을 의미하는 kratia란 두 말의 합성어이다.
이것이 번역이 되어서 민주주의란 말이 된 것인데 그 어휘는 민중이 권력을 장악하여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를 다음과 같이 3등분하였다.
첫째가 군주정치인데 그것이 타락 변질하면 폭군정치가 된다.
둘째가 귀족정치인데 그것이 타락 변질하면 寡頭(과두)정치가 된다.
셋째가 共和(공화)정치인데 그것이 타락 변질하면 민중지배, 곧 ‘데모크라시’가 된다고
그의 정치학에서 설명하였다. 그 후
데모크라시란 말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서양사회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말이다.
프랑스혁명이 프랑스의 왕정체제를 폐지하여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하는 민주정치란 말이 부활하였지만
프랑스혁명을 부정하는 정치권에서는 민주정치를 과격사상을 상징하는 말로써 거부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데모크라시란 말을 일상용어로서 재등장하게 된 것은
미국의 제7대 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에서 비롯된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과격사상으로 배척되어 왔던 데모크라시한 말을 끌어들어서
자신들의 黨名(당명)을 데모크라틱 파티(Democratic Party)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통적인 공화당(Republican Party)이란 말과 대적시켰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데모크라시란 민중선동정치로 받아들여져서
정치권에서 기피되었던 용어였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데모크라시를 민주정치로 동일시하여 받아들여지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정치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세금을 내지 못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文盲者(문맹자)들은 정치참여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재산이나 교육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20세 또는 18세 이상의 성인남녀는 누구나 선거권을 행사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으며
이런 주장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재산과 교양을 가지며 국가에 세금을 내며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를 가진 사람을
국민 또는 시민이라고 하나, 그런 자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민중이란 개념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데모크라시’는
현대의 말로 풀이하면 민주정치란 말보다도 ‘民衆(민중)정치’라는 말에 해당한다.
왜냐 하면 그 철학자는 데모크라시를
최악의 정치체제이며
오래지 않아서 파탄 나며 파멸될 운명에 있는 정치체제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정치는
정치제제 중 최고 최선의 정치체제로 인식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정치제제라면 그것은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폴리티(polity)’이라고 명명한다.
그 말을 굳이 번역한다면 공화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 철학자의 개념 정의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언어를 사용하여 왔다.
민주주의와
민중정치가
群衆(군중)정치와 구별되어야 한다면
민주화란 말도
민중화란 말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
이주천 교수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라 광주민중폭동이었다고 말했다면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 구별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개념정의나 언어사용에 잘못이 없었다고 판단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