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불안심리
한승조(대불총 상임고문, 고려대 명예교수)
국민복지정책의 확충과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 따라서 정부출범 이후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민복지는 무한에 가까운 정부예산과 경비지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그 정책수행을 위한 재원염출문제로 노심초사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빠른 시일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애쓰다 보니 자연 어쩔 수 없이 여러 무리수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니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도 크게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 글은 국민복지의 확충과 경제민주화 그리고 이런 문제로 인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소견을 피력함으로써 정부활동의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바다. 국민의 행복과 복지는 국민들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지 국가권력이 마음대로 시행하고 말고 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다. 국민의 복이란 자신들이 짓고 하늘이 주는 것이지 사람들의 소망대로 받거나 즐길 수가 없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말
예를 든다면 정부는 정책에 의거하여 어느 교육기관을 세웠다고 가정해 보자. 학교의 교장을 비롯하여 교사나 직원도 채용하고 학생들도 모집해 학교를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사들 또는 학우들과 어떻게 지내며 졸업 후 사회진출에 얼마나 성공하느냐하는 것은 학생들의 능력과 노력에 달려있는 문제이지 정부나 학교당국이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경제민주화나 국민복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福祉(복지)란 문자를 풀이해 보자. 福(복)이란 말은 보일 시(示)변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은 하늘 또는 귀신이 개입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한다면 福(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늘이 주는 밭에서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이 바로 복이라는 뜻인데 먹고 사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런 삶의 여건은 하늘이 준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 福祉(복지)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하는 행실을 보아서 하늘이 내려준다는 뜻이며, 국가가 주고 안주는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경제민주화란 말도 경제적인 가치는 소수 특정인들이 독점해서는 안된다. 경제 혜택은 많은 사람에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경제적 가치는 모두가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능력이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들도 다양하다. 고르지 못한 것이 세상의 법칙인 모양이다. 사람의 능력도 사람마다 다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능력이 특출한 사람들이 획득하게 된 분량을 나누어 가짐으로 모두가 다 먹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분배과정에서는 권력 강제성이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자유민주사회의 가치이며 철칙이 되어 있다.
정부는 財閥(재벌)에게 사업을 벌여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끔 기업을 일으켜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요구하며 권유한다. 그러면서 정부의 부탁을 잘 듣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적인 制裁(제재)까지 행사하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이다. 재벌들은 경제적인 利得(이득)전망이 밝지 않은 사업, 일만 번거로울 뿐 수익성이 좋지 못한 사업에 출자하려고 들지 않는다.
정부는 또 경제거래를 독점하려는 재벌의 내부거래에 간섭하려고 들며 정부의 施策(시책)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마음자세를 보인다. 그로 인하여 재벌총수가 구속 수감되는 예도 자주 보도된다.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서 정부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또 일만 번거로우며 수익성이 좋지 못한 사업을 기피하려는 財界(재계)의 심리도 이해한다.
국민복지의 어두운 전망이 전두환 비자금 재조사인가?
최근에는 사회의 불길이 前 대통령 전두환과 그 가족으로까지 미치고 있음을 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가 집권했던 1981년부터 1988년까지 7년동안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정치자금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공용된 것으로 이해되는 액수 외에 거액을 국고환수에 불응했다는 혐의다. 물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의로 은행에 보관된 예금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장남 전재국, 차남 전재용 그리고 부인 이순자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언론보도다.
전두환의 정치자금 문제는 오래 전부터 자주 거론되어 왔으며 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권하에서도 환수문제가 지난 20년동안 숫하게 거론되며 오랫동안 논란되어 왔던 화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두환 대신 그의 장남・차남, 그리고 부인이 그들의 재산과 사업이 정치자금과 무관함을 법정에서 증명해야만 할 상황인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조사의 효과성에 대하여 솔직히 회의적이며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편이다. 이번 검찰조사에서 그동안(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권하에서) 밝혀지지 못했던 全씨일가의 계좌추적이 새로 밝혀질 수가 있겠는지? 만일 새로 밝혀진 바가 없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를 사회적으로 또다시 죽이는 것 외에 아무런 효과도 없는 법적인 조치가 되는 것인데 국민복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으므로 느끼게 되는 국민의 욕구불만을 이것으로나마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인지?
국민에 대한 복지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이런 법적 조치가 이용된다면 너무 졸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두고두고 뒷말을 들을 소재를 만드는 것이 될 것 같다. 이런 논란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연류 되지 않기를 바라서 하는 소리이다.
국민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방법
국민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이상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박근혜정부가 국민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목표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대통령의 위치로 오른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복지사회 구호는 야당과의 대통령 선거경쟁상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목표설정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러한 정치목표는 한국이 완전히 선진국 사회에 진입한 다음에나 내세웠어야 했던 정치목표였다. 현재 한국의 경제는 세계적인 경제불황의 영향 때문에 계속해서 펴나가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2012년 한국 경제도 근래의 역사상 처음으로 2%미만의 경제성장으로 둔화된 상태였다.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등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이 펴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복지와 경제민주화의 어려운 목표를 내걸으며 노력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작년부터 박근혜정부의 경제적인 전망이 밝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지 염려해 왔다.
박근혜정부는 공약을 섣불리 내세우기보다는 차라리 국제정치상에서의 국격상승, 특히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설립을 주도함으로써 국운상승이라는 한국국민, 특히 젊은 세대의 꿈과 熱望(열망)에 부응해 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복지사회건설과 경제민주화라는 두 가지의 요건은 한국경제의 선진화와 국민도덕의 향상이라는 기본여건과 부합되어야 한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경제적 실제상황에는 밑받침되지 못하더라도 국민정신도덕의 향상만으로도 복지사회와 경제민주화는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망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고대 중국사회의 理想은 大同社會였다. 대동사회는 바로 복지사회의 완성된 형태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産業化라는 경제적 밑받침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도 인간사회의 완성된 형태로 思考되었던 사회형태였던 것이다. 고대 중국에도 鄕約운동이 있었다. 향약이란 무엇인가? 그 내용은 相扶相助(상부상조) 過失相規(과실상규) 禮俗相交(예속상교) 患難相恤(환난상휼)이다. 이것이 바로 고대 중국이 표방했던 大同社會이며 복지사회의 최고 형태였던 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한국에서는 새마을운동이 일어났다. 당시에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목표를 강조한 새마을운동은 60년대 조국근대화 및 산업화의 보조수단으로 발족한 시민운동이었다. 조국근대화와 산업화의 실현을 도우려던 물질적 외곽운동이었지만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新思考市民運動(신사고시민운동)이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 왔던 ‘아시아태평양공동체운동이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닌지? 본인은 아직도 연구하며 집필하고 있는 중이다.
본 필자는 1970년대 80년대에 새마을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이다. 현재는 아시아태평양공동체운동이 제2 새마을운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열심히 새마을운동을 世界化하려고 애써 왔다. 한국의 복지사회화와 경제민주화는 우리나라의 성패를 결정하는 시민운동의 주제가 되어 왔지만 그 목표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박근혜정부가 이런 시련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라 왔으며 우리는 그 전도를 비관하며 살고 싶지 않다.
원문: (사)아시아태평양공동체 www.apr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