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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북한동포를 외면한 한국의 죄많은 지식인들

톨스토이의 《復活》이 폭로하는 배부른 자들의 위선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는 소수의 귀족 및 지식인 계급과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에 찌든 대다수의 소작농계급(민중)으로 兩分(양분)되어 있어서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급진사회주의 사상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었었다. 따라서 일반 민중 뿐 아니라 귀족이나 지식인들(intelligentsia)사이에서도 사회주의 사상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나갔다. 막심 고르키(Maksim Gorky)를 위시한 당대의 많은 작가들도 시대의 대세가 되었던 사회주의 혁명 운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동정적이었다. 그러나 도스토에프스키나 톨스토이는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당대의 많은 귀족과 지식인들이 느끼고 있던 민중에 대한 죄의식에서 민중을 우상화하고 러시아의 精髓(정수)는 민중이라고 간주하며 민중을 위하여 “민중 속으로” 운동에도 참여했지만 폭력혁명이나 체제의 전복이 민중을 구하는 길이 아니라고 보았다.

도스토에프스키는 《악령(Devils)》에서 폭력혁명을 劃策(획책)하는 급진사회주의자들을 악마로 그리고 있다. 톨스토이도 ‘민중’에 관한 사회적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국가라는 大구조물을 붕괴하는 것 대신 ‘아름답고 강하게’ 개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배계급인 귀족과 지식인을 가해자로, 민중을 그 희생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배계급의 도덕적 각성과 정신적 재생을 통해서 민중과 지배계급간의 화합과 사회구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증오를 動力(동력)으로 하는 사회주의 폭력혁명대신 人間愛(인간애)로서 체제의 모순과 부조리의 치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復活》은 죄의식을 가지게 된 한 귀족출신 지식인의 정신적 부활과정을 그리면서 사회구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復活》의 주인공 네크류도프(Nekhlyudov) 公爵(공작)은 배심원으로서 살인 혐의로 起訴(기소)된 어떤 창녀의 재판에 관여하게 됨으로써 도덕적 각성과 부활의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證人臺(증인대)의 창녀피고는 그가 과거에 잠간 사랑을 하고 떠난 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카츄사(Katusha) 라는 美貌(미모)의 下女였다. 그는 배심원들과 법관들이 죄도 없는 카츄사를 불공정하게 유죄로 판정하고 宣告(선고)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죄의식은 그의 약혼녀 미시(Missy)의 아버지인 코르차긴(Korchagin) 장군의 만찬회에 참석하면서 더욱 더 강화된다:
<네크류도프는 비록 코르차긴을 잘 알았고 가끔씩 식사도 함께 하였지만 감각적이고 쩝쩝 씹는 소리를 내는 입술 및 허리에 찔러 넣은 냅킨 위로 드러나는 살찐 목덜미와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해진 그 군인의 모습은 오늘 따라 그에게 대단히 역겹게 보였다. 네크류도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이 군인의 잔인성을 기억에 떠올렸다. 코르차긴 장군은 부대를 지휘할 때에 자신이 부유하고 단지 병사들의 비위를 맞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병사들을 심하게 구타하거나 심지어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네크류도프는 코르차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코차긴이 兵士(병사)들을 학대하였듯이 자신도 카츄사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버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병사나 카츄사는 모두 학대받고 있는 민중의 化身(화신)들이다. 네크류도프나 코차긴은 민중을 학대하는 지배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네크류도프는 이제 每事(매사)가 ‘창피할 만큼 추잡하고 진저리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는 카츄사와의 사랑을 회상하면서‘ 현재 그는 자신이 愚昧(우매)하고 공허하며 가치가 없고 불성실한 삶의 그물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切感(절감)’하게 된다.

자신이 악당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네크류도프는 ‘지금까지 그의 영혼 안에 쌓여오면서 진실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였던 모든 쓰레기들을’ 쓸어내는 ‘영혼의 청소’를 시작한다. 그는 ‘카츄사를 만나서 용서를 빌고 필요하다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라고 결심까지 하게 된다. 이러한 懺悔(참회)를 통해서 그는 以前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있으며, 그래서 죽어있던 그의 영혼이 부활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첫 번째의 부활 후에 그가 느낀 ‘평화’와 ‘기쁨’의 경험은 처음으로 카츄사와 면담한 후에 산산이 날라 가버린다. 그는 카츄사가 현재 느끼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贖罪(속죄)와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츄사는 버림받음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神과 善(선)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망각의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가장 좋은 추억도 그녀가 알고 있는 과거의 이상적인 사랑도 양심의 소리도 억압하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마약을 복용하였고 ‘합리적인 意識(의식)’을 둔감하게 하기 위하여 섹스했다… 카츄사는 현재의 자신을 정당화고 또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냉소적인 세계관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현재의 모습은 버림받은 청순하였던 카츄사의 고통스러운 自我(자아)를 가리고 있는 假面(가면)이었다. 그래서 카츄사의 實在(실재)를 외면한 채 속죄의 수단으로써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네크류도프의 결심은 버림받은 카츄사에게 저지른 그의 죄를 淨化(정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네크류도프는 카츄사를 면회 갈 때마다 그녀의 말과 행동을 오판하게 된다. 그래서 카츄사는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나는 유형수이고 당신은 公爵이에요. 이런 형편에 당신이 할 일은 하나도 없어요… 당신은 나를 이용하여 당신을 구원하려고 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승에서 나를 즐기고 나를 통해서 來世(내세)에서도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어요. 당신은 정말 역겨워요. 당신의 안경도 당신의 살이 오른 목덜미도 역겨워요. 가세요, 가!’ 이 순간부터 그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죄의 관점에서보다는 그녀의 고통의 관점에서 카츄사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카츄사의 분노는 중세 러시아의 聖者傳(성자전)인 《서사(序詞, prolog)》에 나오는 부상한 거지와 이를 돌보는 수도사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거지는 날마다 더욱더 심하게 짜증만을 부리다가 어느 날 마침내 분노를 폭발 시킨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요. 내 앞에서 사라지시오. 난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또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있으며 나를 이용하여 당신 자신을 구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난 당신이 싫어요. 나를 길거리로 데려다 주시오. 여기서 당신의 보살핌을 받는 것보다는 거리에 있을 때 내 마음이 훨씬 더 편하였어요.>

이 이야기는 《復活》의 중심적인 내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 ‘우리’의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네크류도프가 카츄사의 입장이 되어 그녀를 구원의 수단으로서가 아니고 그녀의 황폐화된 영혼의 부활을 위해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녀의 고통에 동참할 때 그들의 손상된 첫 사랑이 회복되고 이 회복 과정에서 그의 영혼이 진정으로 부활된다.

《復活》의 클라이맥스에 가서 네크류도프는 시베리아로 流刑(유형)가는 카츄사를 따라가기로 함으로써 贖罪(속죄)의 旅程(여정)에 오른다. 그리고 국가폭력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7월의 숨 막히는 무더위로 모스코바 시내를 통과하는 죄수들의 고통은 莫甚(막심)했다. 몇몇 죄수들이 사망하게 된다. (호송병들의 무관심 때문에) ‘살해된’ 어떤 죄수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국가는 인간의 고통에 쇠붙이처럼 무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죄수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죄가 없다. 그러나 죄수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 모든 일은 이 모든 사람들이―주지사, 검찰수사관, 경찰간부, 순경―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일어난다. 일단 우리가 한 시간 동안이든 또는 어떤 특별한 경우이든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죄의식에서 벗어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범하지 못할 범죄는 없게 된다.>

네크류도프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에 빗물이 스며드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이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감정이 전혀 스며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국가의 관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관리들이 국가폭력의 중요한 도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들은 ‘인생의 근본 법칙’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타인에게는 물론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네크류도프는 이제 이해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그는 자기 자신의 행동도 재평가하며 재생과 부활의 길을 가게 된다.

 

지금 한반도는 19세기 말의 러시아 사회와 類似(유사)하다고 하겠다. 한반도는 너무 잘 먹어서 비만이 걱정이 되는, 자유가 너무 많아서 국가의 존립이 걱정이 되는, 5000만의 부유하고 자유로운 한국과 주민의 대다수가 굶어죽고 맞아 죽어가는 2300만의 “북한”으로 양분되어 있다.

北의 카츄사들(민중)은 권력층에 의한 폭력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특히 지식인들은 부당하게 학대받고 있는 2300만명의 사람들을 袖手傍觀(수수방관)하며 江 건너 불 보듯이 하고 있다. 그들은 네크류도프가 느끼는 죄의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2300만명의 同族(동족)의 고난에 대해 ‘쇠붙이’처럼 무감각한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죄이다. 2300만의 동포가 맞아죽고 굶어죽는 것을 그대로 구경만하고 있는 한국인은 역사와 인류에 죄를 짓고 있다.

부당하게 학대받고 있는 2300만명의 동포를 구출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모두들 나서야 한다. 특히 시베리아 수용소까지 따라가며 카츄사의 구출을 위해 헌신하는 네크류도프같은 “죄지은 지식인”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지갑으로 몸으로 筆劍(필검)으로 모두들 각자가 처해있는 형편에 따라 2300만의 카추사의 구출에 나서는 것이 한국인들이 정의로운 국민으로 부활하는 최선의 길일 것이다.

 

조갑제 닷컴 박승용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