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 '신성불가침' 영역 인식…경찰, 90년대 공권력 투입 전력
철도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 등이 은신 중인 조계사 경내로 사복 경찰이 잠입했다가 정체가 탄로나 끌려나가는 소동이 벌어진 가운데 조계사 공권력 투입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5일 오후 2시 10분쯤 사복경찰관 2명이 기자들 틈에 섞여 조계사 내부로 진입했으나 몸에 지니고 있던 수갑이 발각돼 철도노조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노조원들과 지지자들은 경찰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며 몸을 밀치는 등 욕설을 했고 경찰들은 이에 밀려 뒷걸음질로 경내를 빠져나갔다.
앞서 오후 2시쯤엔 철도노조의 공식 기자회견이 열린 용산구 철도회관에서 사복경찰 2명이 회견장까지 올라갔다가 조합원들의 항의에 쫓겨나기도 했다.
경찰은 현재 조계사 인근에 3개 중대 300여 명을 투입해, 사찰 인근을 수색·검문하고 있다.
경찰에 쫓기던 철도노조원들이 조계사로 도피한 것은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지는 종교시설에 대해 경찰이 공권력 행사를 꺼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찰은 이번 철도노조 지도부 은신 사실을 확인한 뒤에도 섣부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이 조계사에 경찰력을 투입한 적도 있다. 1995년 한국통신 노조 파업과 1998년 현대중기산업, 2002년 발전노조 사태를 포함해 네 차례 있었다.
1995년 6월, 한국통신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주도한 한국통신노조 지도부는 조계사와 명동성당에서 파업을 이어나갔고, 정부는 병력을 전격 투입해 이들을 모두 연행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은 “종교시설이라고 해서 법을 어긴 사람을 보호해주는 은신처가 돼서는 안 된다”며 “법은 성역없이 집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공권력 투입은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1998년엔 현대중기산업 노조가 현대건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조계사에 들어가 투쟁을 벌였으나, 내부 분규가 일어나 경찰이 개입했다. 노조와 일부 승려들은 5개월만에 조계사에서 쫓겨났다.
1998년 12월에도 경찰은 조계사 총무원 청사를 점거 중이던 조계종 정화개혁회 승려들에 대한 법원의 퇴거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50개 중대 6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당시 경찰은 포클레인을 동원해 노조원들이 들어가 있던 조계사 총무원 건물 1층 창문을 뜯어내고 진입했고, 기동대를 투입해 농성 승려들을 강제 연행했다.
2002년에는 경찰이 조계사 법당에서 농성 중이던 발전노조원들을 체포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때 이후 약 10년 동안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된 사례는 없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촛불집회에서 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와 민주노총 위원장 등 총 8명이 조계사에서 농성을 이어갔지만 경찰은 종계사 경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철도노조 지도부가 경찰 추적을 피해 파업을 지휘하기 위해 종교시설을 악용하려 한다”며 “이들이 조계사에 머물지 못하도록 조계사 측에 협조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