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일본에서는 국제 정세를 뒤흔든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2월 2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습적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국제적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27일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오키나와(沖繩)현 지사가 무려 17년간 끌어온 미군의 숙원사업 후텐마(普天間) 공군기지의 헤노코(邊野古) 이전을 승인한 것이다. 미국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실망’을 표한 뒤 불과 하루 만에 후텐마 기지 이전을 ‘환영’하면서 “양국 관계가 한 단계 더 격상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안팎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에 필수적인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야스쿠니 쇼크’를 덮기 위한 ‘반전 카드’로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과 역사·영토 분쟁을 겪는 상황에서 한·미 동맹 강화를 추진해야 하는 한국의 외교 전략에도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이유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 도시 지역에서도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진 기노완(宜野灣)시 주택 밀집지역의 한가운데에 들어서 있다.
2010년 12월 말 기준으로 현청이 확인한 항공기 추락 사고만 88건에 달할 정도여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훈련 중이던 항공기가 마을의 신축 건물 건설현장을 덮치거나 농가에 추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04년에는 항공기가 오키나와 국제대 캠퍼스에 추락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후텐마 기지 소속 미군들의 폭행·절도 등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후텐마 기지 반환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계기 역시 1995년 발생한 ‘소녀 집단 강간·폭행 사건’이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 해병대 병사 3명이 12세 여학생을 납치하고 집단 강간한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미군 피의자들이 미·일 지위협정에 의해 일본 수사당국의 구속수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현민들의 분노를 샀다.
주민들은 미군 기지 반대 및 후텐마 기지 반환 요구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후보지를 검토한 뒤 1997년 나고(名護)시 헤노코 인근을 지목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현내에서) 장소만 옮기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현외 이전을 요구하고 헤노코 이전안을 반대해 왔다.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2009년 정권 교체로 집권한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반대 여론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아베 총리의 승부수
17년을 끌어온 이전 문제는 미·일 동맹 강화를 핵심 안보 과제로 삼은 아베 정권의 출범과 함께 급물살을 탔다. 아베 총리는 취임 1개월여 만인 지난해 2월 오키나와를 찾아 나카이마 지사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회담을 갖고 설득에 나섰다. 5년 내로 후텐마 기지의 운용을 중단하고, 미·일 지위협정을 개정하는 한편 연간 3000억 엔을 지원한다는 과감한 제안은 결국 나카이마 지사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경기 회복세를 앞세워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한 아베 정권의 안정성이 이전 승인 결정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최소 9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이전 예정지 매립 및 설계 등을 감안하면 일정 기간 지속가능한 정권이라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카이마 지사는 지난해 12월 27일 이전 승인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5년 이내에 후텐마 기지의 운용 중지 전망이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사는 변절자” 반발… 실현 미지수
나카이마 지사의 결단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 주민들의 헤노코 이전 반대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당초 ‘현외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나카이마 지사에 대해 “변절자”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전 승인 직후에는 2000여 명의 주민이 현청으로 몰려들어 “허락한 적 없다” “지사는 물러나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1월 중순쯤 후텐마 기지 이전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이어서 법정 공방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크다.
헤노코 이전을 직접 승인한 나카이마 지사 스스로도 “헤노코 기지 건설 완료까지는 9년 반이 걸리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약속대로) 5년 내에 후텐마 기지를 이전하려면 현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현외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NHK는 “나카이마 지사가 현외 이전을 계속 요구하는 것은 헤노코 이전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며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가 겨우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정대로 진행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김하나 기자 /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