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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아시아의 국제관계, 좋아질 수는 없겠는가?

 

아시아의 국제관계,

좋아질 수는 없겠는가?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

 

동아시아의 6개국하면 남북한 대립관계, 특히 북한 핵무장의 문제와 결부되어서 자주 거론된 6자회담의 당사자들을 연상하게 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남북한 등이 포함되는데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이 6개국간의 합의와 협조가 절대적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소치동계올림픽 개최로 세계 수십억 인구의 耳目을 집중시키고 있는 러시아를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의 불만과 긴장은 근래에 와서 더욱 격화되어가는 추세이다. 미국과 중국 상호간의 불신과 경계심은 그 쌍방의 철저한 표정관리에도 불구하고 더 깊어만 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왔다. 가까운 미래에 정면충돌이라는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관계개선의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인다.

 

지역공동체 창립의 소리는 왜 안들리는가?

여기서 또 아쉬운 사실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예상되던 아시아의 지역공동체를 키우며 가동케 하려는 중요국가간의 노력이나 움직임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아시아태평양공동체라는 地域협력 機構출현의 노력도 근래에 와서는 거의 논의조차도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이런 초국가적인 지역기구의 출현은 미국이나 중국같이 국제사회에 대하여 영향력을 가진 超强大國들이 주도함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지도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초강대국들은 모든 국가를 상대로 벌이는 개별적인 외교를 통하여 마음대로 통솔 조종할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기구가 새로 생겨난다고 해도 초강대국은 어떤 실익보다는 신경을 써야 할 일만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둘째, 그 지역 안에 초대형 국제기구가 생겨나는 경우에 그 국제기구가 자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강대국에 의하여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중국의 경우를 말한다면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미국이나 일본의 도움이나 조종을 받아서 중국에게 불리한 행동을 벌일 가능성을 경계하는 입장이었다. 또 한편에 미국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경제적 문화적인 근접성으로 인하여 중국에 편들며 反美행동에 동조하게 될까 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셋째,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역공동체가 말만 무성할 뿐 실천에 옮겨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 여러 나라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民族主義 감정 때문이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과반수는 과거 植民地로부터 해방되어 독립국가를 이룩하게 된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대국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경계심이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강대국들도 역시 또 제각기 일상적으로 상대하며 접촉하게 되는 상대국, 특히 다른 강대국에 대한 의구심이나 경계심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는 상호간에 경쟁심과 아울러 피차간에 불신과 경계심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중국은 세계의 유일 패권국가인 미국에 대한 경계심과 경쟁의식이 강한데다가 미국도 중국이 너무나 빠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게 되는 모습에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競爭의식과 적개심

21세기에 들어서서 中美관계는 어떻게 변화해 왔던가?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중국의 패권 드라이브가 너무 때 이르게 강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G-2의 위치에 올라왔으니 좀 더 밀어붙여서 G-1의 지위에 빨리 올라서보겠다는 野心 내지는 貪心이 두드러지게 드러난 시기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들어섰던 초기의 韜光養晦(도광양회)의 말에서 볼 수 있었던 조심성이나 신중성 같은 겉옷은 모두 벗어버린 것 같은 감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패권주의적 태도가 왜 급작스럽게 강화되었는가? 오바마 미 대통령이 미국이 아시아의 권력으로 남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인 것으로 짐작한다. 미국이 태평양을 넘어서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세기 초부터였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국주의를 응징하고 한국전쟁에도 출병함으로써 미국이 아시아에서도 최강국임을 세계만방에 과시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자신이 아시아의 최강국가임을 과시하고 싶은 모양이다. 아시아는 자고로 중국이 지배하는 지역이며 미국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미국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섣불리 나섰다가는 혼 줄이 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미국이 깨닫게 하도록 중국은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며 남지나해에 해군력도 크게 강화하여 동남아 각국에 군사적인 압박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일본 영토로 되어 있는 센카쿠(따오위다오)열도에 중국 해군이 무력시위를 강화하여 일촉즉발의 위험상황을 거침없이 만들어냈다. 중국의 領海 밖으로도 防空식별구역을 확대하는 등 국제적인 관례를 무시한 군사적인 위력을 휘둘러대는 모습도 보였다. 조선일보 13122일자는 동북아 신패권경쟁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되었는데 그 중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중국은 국방 개념도 공세적으로 바꾸는 분위기다. 인민해방군이 군대를 방어 위주인 7대 군구(軍區)체제에서 작전 중심인 5대 전구(戰區)로 개편해 연합작전 지휘체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일본 등과 동아시아 주도권을 놓고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공산혁명 이후 손보지 않았던 군체제도 개혁하려는 것이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競爭의식과 적개심

중국은 또 일본에 대해서도 지나칠 정도의 피해의식과 경쟁의식을 가져왔다. 하루 빨리 일본의 영향력을 아시아에서 밀어냄으로써 고대 아시아에서 유지해 왔던 패권적인 지위로 복귀하려고 열망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1960년대 이래로 우세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아시아의 여러 後進국가에게 많은 경제원조와 기술원조를 제공해 왔으므로 아시아의 후진국들로부터 많은 환심과 지지를 얻어왔다. 얼마 전까지 巨人貧國이었던 중국으로서 여러 나라에 그 영향력을 확산하는데 일본이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되어 왔음에 마음이 매우 불편함을 느껴온 터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과거 침략행위를 일삼았던 일본이 동남아시아에서 大國행세를 하는 것이 못마땅하였을 것이다. 중국은 과거에 누렸던 패권국가의 位相을 회복하기 위하여 아시아의 많은 군소국가들의 지지와 추종을 얻고자 노력하는데 戰犯국가인 일본이 아시아에서 先進국가 행세를 하는 모습이 중국의 입장에서는 눈에 크게 거슬려 왔던 것이다. 중국도 개혁개방의 초기에는 일본의 경제적 기술적인 指導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이 중국에게 지은 죄 값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중국인들의 對日인식이다.

중국의 패권주의 노선에 또 다른 장애요인은 자유대만의 존재이다. 대만은 자고로 중국대륙에 부속되어 왔던 작은 섬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僻地(벽지) 같은 도서는 1894년의 淸日戰爭의 결과로 일본이 통치하는 식민지로 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敗亡으로 대만은 중국의 영토로 복귀하였으나 1947-48년에 蔣介石의 국민당 정부와 國府軍이 중국대륙으로부터 中共軍에 밀려나면서 대만섬으로 후퇴함으로써 자유중국의 군사진지이며 또 그들의 영토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중공군은 국부군이 점거하고 있는 대만마저도 점령 장악하기를 원했으나 蔣介石(창카이섹)정부를 지원해오던 미국의 군사력이 대만을 지켜 공산정권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국 공산정권으로서는 중국의 주권행사를 방해하는 미국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어 왔지만 중국은 그들의 국력과 군사력이 미국을 능가하게 되는 날을 기다리며 은인자중하면서 무력행사를 자제해 왔다. 대만인들에게는 중국대륙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또 투자하여 돈을 벌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등 대륙의 중국인들과 동일한 자유와 권리를 주어 왔다.

앞으로 대만이 중국대륙으로 귀속될 것인지 아닌지는 대만인들의 자유의사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현재 대만인들의 과반수는 자유중국으로 남아 있겠다는 인구가 훨씬 더 많은 형편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륙중국이 대만의 분리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미국과 일본을 미워하는 이유가 되어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적대감정과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에 관해서는 여태껏 다른 글에서 충분하게 언급한 바가 있었으므로 이 글에서는 그런 내용에 대하여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한국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침략과 수많은 해악, 비인도적인 가해행위를 고발하고 질타하며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 왔다. 필자는 여기서 그러한 한국의 대응방법이 잘하는 일인가? 또 국제적인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일인가를 냉철하게 평가해 보고자 한다.

 

한국의 對日感情이나 敵對행위에 대한 고찰과 평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한국의 대일태도와 적대노선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은 1945년 일본의 36년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나라이다. 일본에 의한 壓政(압정)을 받았던 나라가 일본에 대하여 호감을 갖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516군사혁명을 일으켜서 한국의 경제를 부흥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하고 있었을 때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3억불의 배상금과 또 3억불의 민간융자를 받았으며 또 일본측의 기술지원에 힘입어서 1960년대에 산업화정책에 큰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산업화혁명이 단시간에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거의 기록적인 단시일 안에 한국이 세계의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일본과의 관계는 惡緣(악연)만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아니어도 한국이 세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대한민국정부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민족이 더 행복해 질 수가 있었다고 강변하는 부류들과 유사한 무리들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 후 韓日관계는 박정희정권으로부터 시작하여 김대중노무현정권에 이르는 동안 비교적 큰 무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명박정권 말기에 와서 뜻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失言으로 인하여 한일관계가 악화되기 시작하더니 박근혜정부에 와서는 한일관계가 더욱 껄끄러워졌다. 이와 같이 한일관계가 악화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박근혜정부는 일본이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을 가져왔으며 한국에 대한 과거의 침략과 악행들에 대하여 죄의식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 또 일본 아베정권의 보수화 回歸추세가 한국여론을 자극하여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보수세력은 日本民族主義를 계승하면서 과거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친일파였다는 좌파세력의 惡口를 의식했던 탓인지 과거보다 더 뚜렷한 反日민족주의의 입장에 서서 그 氣槪(기개)와 정치노선을 과시하려는 듯이 보였다. 친일은 반민족이며 反日만이 愛國主義라는 좌파세력의 거듭된 홍보선전으로 한국의 국민정신이 세뇌되어 왔으므로 이러한 고정관념이 반일감정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종래의 親美주의와 새 시대의 親中의지를 같은 수준의 열의를 가지고 추진하는 인상을 주어왔다. 종래의 외교전통과 새로운 刷新(쇄신)을 결합한다는 것은 정치지도자로서도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롭게 드러난 反日외교 성향이 박근혜외교의 새로움으로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잘하는 일일까? 이러한 문제는 보다 더 크고 넓은 안목을 가지고 지켜보아서 그것이 얼마나 지혜로운 판단인지가 가려져야 할 일이다.

박근혜외교 노선의 새로움 여부는 아시아의 국제관계라는 환경과 맥락에서 판단되어야 할 일이다. 중국의 패권화 움직임은 미국과 일본의 동맹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일본의 민족주의를 소생시킴으로써 보수세력의 정권장악을 가능케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시키는 구실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것이 모두 中國民族主義에 의하여 강화된 反美의식과 反日열기가 불러들인 결과가 아니던가?

보수파의 두목인 아베 신조가 일본의 새로운 통치자로 올라서도록 여건을 조성한 것도 중국민족주의 파장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변화가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반일외교의 방향으로 유도한 것이며 이러한 親中反日외교가 미국의 대 아시아정책과 충돌하는 것이 된다면 그것이 한국의 국가이익에 보탬이 될까 아니면 부담이 될까?

한국외교는 내친 김에 반일외교활동을 다른 인접국가들에게 확장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세계의 주요국가들이 적극 호응 동조를 받을 수가 있었는지? 마치 크게 결심하여 칼을 힘껏 내려쳤는데 그 목표물체가 보기 좋게 두 동강이 난 것이 아니라 칼날만 부러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런 칼질에도 불구하고 아베정권이 밀려나지 않았다면 한국정부의 체면도 무사할 수 없는 것도 정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남에 대한 비난과 악구는 조만간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말도 흔히 들어 온 말일 것이다. 한국언론이 연일 일본을 비난 공격 폄하하니까 일본언론도 한국에 대한 욕설과 비난으로 들끓고 있다고 한다. 한일관계가 왜 이렇게 악화되었으며 이러한 상호파괴가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국가이익을 증진하는 외교가 아니라 반외교이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연일 反日선전 선동과 그와 관련된 기사보도에 신바람이 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국민은 그런 몰지각한 언론 보도태도나 선동을 부추기는 편인가 아니면 제어하는 편인가? 한국 전역의 공격적인 언론활동에 덩 따라 흥분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위엄과 품위를 손상시키는 언론과 선동을 자제케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민족주의의 세 가지 수준

민족주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개인주의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므로 어느 나라에도 없기를 바랄 수는 없다. 개인주의는 흔히 이기주의와 동일시되는 경향을 가지나 그 개념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개인주의에는 利己的인 요소와 함께 利他的인 요소가 있듯이 민족주의에도 여러 가지 유형의 민족주의가 있다. 도덕적인 측면과 결부시켜본다면 上質 中質 下質의 민족주의가 共存하는 격이다.

下質의 민족주의란 자기 민족집단의 안전이나 이익만 챙기며 다른 민족은 먹이나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므로 타민족을 마구 죽이거나 노비나 성적인 노리개로 취급함을 서슴지 않는다. 中質의 민족주의는 사람들을 선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대우할 줄 아는 사람들이 실천하는 민족주의이다. 상질 또는 고질의 민족주의는 민족주의를 겉으로 내세움을 자제하려고 든다. 말하자면 민족주의는 敬天愛人의 사상이나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또는 국제평화주의 명분에 밀려나서 그런 새로운 명분 뒤에 숨어버리기가 일쑤이다.

결과적으로 민족주의란 말보다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애국주의 국제주의 또는 세계평화사상의 베일 뒤에 숨어버리지만 그 사상의 밑바닥, 곧 집단 무의식 속에 민족주의가 소멸되어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다. 上質 또는 高質의 민족정신은 자신이나 자국민에 못지않게 타인타인종집단을 포용하며 봉사하려는 의지를 간직한다. 韓國民族主義理想은 바로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민족집단이 받들고 봉사하며 실천하는 정신상태를 표방한다.

사람을 백인 황색인 흑인 등 색깔이나 인종에 따라서 차별대우하는 것은 수준 높은 사람들의 소행이 아니다. 수준 낮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차별대우하며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리며 즐겨 따지려고 들 뿐이다. 참고삼아 인류애의 문제와 관련하여 莊子의 말을 인용하겠다. ‘聖人無名하고 神人無功하며 至人無己. 수준 높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나 자국 민족이 잘났거나 못났다고 들먹이지 않는다. 사람이 들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이나 민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개인이나 민족집단이 얼마나 크고 또 높으냐 하는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근대화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은 저급의 민족주의로부터 중급의 민족주의로 발전하는 물질적 기반을 얻었으며 또 민족성도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민족이념이 표방하는 홍익인간적인 민족주의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우리가 홍익인간적인 민족주의의 수준에 오르려면 한국국민의 인간성 민족성이 현재보다도 훨씬 순화되고 높아지며 깊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거저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도의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꾸준히 이루어 질 수가 있을 뿐이다.

과거에 일본이 한국인들을 천대 또는 박대한 것은 일본민족주의가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下質 민족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침략주의적인 민족주의로 과거에 한국을 강제 합방하였다. 그 결과로 생겨난 것이 반일 민족주의였다. 반일민족주의에도 下質이 있고 또 上質의 민족주의가 있을 수 있다. 下質의 민족주의는 일본이 한국에게 한 것과 똑같이 아니면 좀 더 더 혹독하게 일본인들에게 보복하고 더 잔인하게 가해하며 보복하자는 사람들이다.

다행히도 한국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日帝와 타협하여 日政시대를 편안하게 잘 지낸 사람과 독립운동을 하거나 저항투쟁을 하느라고 고생했던 사람들을 차별화하여 저항적인 애국파와 타협적인 친일파로 분류하여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민족주의 좌파들의 사고방식이다. 타집단에 대한 증오와 적대행위를 부추기는 것은 저질 민족주의의 특징이다.

그에 비하면 자국 민족주의의 순화 발전을 도모하면서 이웃 나라들과 화해 협력을 통하여 국제적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中質의 민족주의이다. 自國의 안전과 이익을 추구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좋은 이미지와 위엄을 고도로 유지하면서 국가이익을 챙기는 것이 중질 민족주의의 속성이다. 오늘날 歐美사회의 선진국가들이 이런 입장을 유지하면서 대체로 민족주의란 말은 사용하기를 꺼린다. 그 이유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자국의 위엄과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민족주의란 말을 굳이 회피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한국은 아직 分斷국가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赤色민족주의는 증오와 파괴를 선동하는 전형적인 低質민족주의이다. 남한이 내세우는 민족주의는 홍익인간적인 민족주의인데 이것은 上質의 민족주의이다. 우리는 북한민족주의를 이런 상질의 민족주의로 끌어올리며 또 이런 이념으로 북한체제를 동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필자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북한정권이나 인민을 설득해서가 아니라 한국이 중국과 일본과 힘을 합쳐서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창건을 주도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남한이 내세우는 홍익인간적인 민족주의는 아시아인들을 자비와 용서로써 포옹하고 감싸 안는 세계평화의 사상인데 이것이 바로 아시아태평양공동체의 이념인 것이다. 북한은 한국이 하라면 말을 듣지 않겠지만 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말한다면 순종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美中대립, 中日갈등, 남북대치를 홍익인간형 민족주의로 수습할 수가 있다. 남북불화는 한국이 내세우는 弘益人間的 민족주의에 의하여 순화 격상되며 또 한중일 3국의 협력에 의하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가 있다고 믿어진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의 정치인들은 無名 無功 無己에 바탕한 한국의 리더십에 동조해 오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만일 한국민족주의가 일제하에서 억압되고 착취당했다는 이유로 敬天愛人의 정신을 망각하여 똑같은 부도덕한 행동으로 일본인들에게 보복한다면 그것은 한국국민이 다른 나라와 같은 저질스러운 국민성을 지녔음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미국 일본에 대한 중국인들의 비우호적인 감정과 적대의식

위에서 우리는 중국이 왜 미국이나 일본에게 비우호적이며 적대감정을 가져왔는지 그 원인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중국이 미국 일본에 대하여 비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은 이유 없는 행위가 아니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의 비우호적인 태도나 행동은 美日양국 측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적대감정과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므로 중국은 더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런 여파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더 악화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그런 보복행위의 악순환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도 커다란 沮碍(저애)요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바람직스럽지 않은 영향이나 결과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과 일본에 대하여, 또 한국은 일본에 대하여 적대적인 행위를 계속해 온 내면의 심리적 동기는 어떤 것일까? 또한 비우호적 태도 내지 적대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확대될 보복의 악순환을 어떻게 단절할 수가 있겠는가?

불교에서는 중생들의 공통된 특성으로서 貪瞋痴(탐진치)를 들고 있다. 이것을 감정적 동물인 인간의 성격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요인으로서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근본번뇌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전에 韓中日 3국의 성격적인 약점으로 중국은 ()의 병을, 한국은 ()의 병을, 일본은 ()의 병 때문에 잘못 나가게 됨을 지적한 바가 있었다.

인간의 탐진치 3독은 중생의 어리석음 내지 迷妄(미망)으로 인하여 짓게 되는 惡業이다. 그것이 또 불가피하게 좋지 못한 業報(업보)나 재앙을 불러들이는 요인임을 알아야 한다. 불교신앙과 무관한 사람들도 개인이나 국가의 경우도 그런 금기사항을 범하는 경우 재앙과 징벌을 면할 수 없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계획적인 정치공작이나 정책을 통하여 미국을 초강대국 자리에서 밀어내지 않더라도 미국이 세계의 유일초강대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중국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엄청난 군사력을 가진 미국을 중국의 군사력으로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다하려는 것은 중국측의 어리석음으로 굳이 말한다면 자기 파멸의 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일본의 중국침략과 해악을 자주 거론하며 일본을 깎아내리려고 드는 행위도 중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정치목적을 위해서는 필요할는지 모르겠으나 아시아의 평화를 확립하려는 취지에서 본다면 욕먹는 행위일 뿐이다. 우리의 가까운 동맹국이 그런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저지하고 충고하며 선도할 책임은 우리 한국에게 주어진 임무가 아니겠는가?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이사장대불총 상임고문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