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사치품 수출을 금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각종 결의안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한 해 사치품을
구입하는 데 4년간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액수만큼 사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한이 지난 2012년 호화·사치품 구매에 사용한 액수는 6억4580만 달러(약
6890억 원)에 이른다. 김 제1위원장의 막대한 사치품 구입은 김씨 일가의 수요도 있지만, 주로 권력엘리트들에 대한 선물 정치를 통해 유일
지배체제를 강화하는 통치술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미국 터프츠대학 외교전문대학원 플레처스쿨의 이성윤 교수와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자문관을 지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지난 2월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의 반 인권 실태를 보여주는 664쪽의 방대한 북한 인권보고서에 숨어있는 6억4580만 달러라는
숫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제1위원장이 화장품, 핸드백, 가죽제품, 시계,
전자제품, 승용차, 술 등 고가의 사치품목을 사들이는 데 사용한 돈의 규모다.
이 같은 한 해 사치품 구입비는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위해 사용한 13억 달러의 절반 수준이며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2013년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고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추산한 재원 1억5000만 달러의 4배가 넘는 규모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와 스탠튼 변호사는 8일자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에
기고한 ‘북한의 헝거게임’이라는 기고문에서 “북한이 2012년 호화·사치품 구매에 무려 6억4580만 달러를
썼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1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특히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던 해인 2012년에는 충성 유도 차원에서 사치품들을
엘리트층에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거 사들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연구위원은 “김 제1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엘리트층에
대한 통치 수단으로 삼았던 ‘선물정치’를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막대한 금액의 사치품 수입이 이뤄졌다는 것은 유엔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안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2006년 안보리가 결의한 대북 제재안에 무기 관련 품목과 함께 사치품이 금수조항에 포함된 이후 현재까지 줄곧 유지돼왔다. 북한은 중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들을 통해 밀수 등의 방식으로 사치품을 수입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와 스탠튼 변호사는 이와 관련, “미국은 북한에 강력한 제재를 취하고 있지만 유럽국가와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유럽과 중국도 북한에
대한 제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3년 북한의 사치품 수입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이보다는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대북 제재결의안 2094호에서 사치품에 대한 제재가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2094호 결의안은 사치품 품목과 관련, 진주·요트·경주용 차 등 예시 품목을 나열하면서도 ‘이외의 모든 사치품이 금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에서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적극 동참 기류로 변화한 것도 변수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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