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공공재’로 찍힌 언론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지난 16일 오전 476명의 탑승객을 실은 세월호가 바다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동안 TV와 인터넷에는 이런 속보가 쏟아졌다.
‘사실이었더라면 하는’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한국 언론 역사에 남을 대형 오보가 됐다. 지난 12일 미국 뉴욕에서 빌딩이 붕괴됐을 당시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했던 뉴욕타임스 기자가 철저한 사실 검증 단계를 거쳐 사고 발생 후 1시간45분이 지나서야 첫 속보를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30일 “사건 초기 정부의 일방적 발표를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보도한 순간부터 언론은 국민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재난방송 실시의 기준)은 ‘재난방송은 단순히 재난 정보를 전달하는 재난 전달 시스템이 아니라 발생을 예방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송’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도 초점도 시청자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 맞춰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언론사가 사고 초기 피해자들의 얼굴을 여과 없이 노출하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에 떨고 있는 생존자와 실종자, 그 가족들에게 무리하게 인터뷰를 했다. 구조작업이 한창이었던 사고 발생 당일, 사고와 관계 없는 시신 운구 사진을 노출하는가 하면, 피해자 보험금을 따지는 보도로 피해자 가족들에게 충격과 상처를 줬다. 객관성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민간인 인터뷰로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방통위는 방송심의규정을 어긴 6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렸고, 정도가 심각한 3개 보도에 대해서는 전체 회의를 열고 주의 및 경고조치를 내렸다. 언론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면서 한국기자협회도 지난 20일 ‘생존 학생이나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등 10개항이 담긴 ‘세월호 참사 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30일 경기 안산 합동분향소에 임시로 차려진 기자실에 단원고 학부모 대표가 찾아가 “돈을 줄 테니 인터뷰를 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제발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처참한 사고현장을 취재하면서 속보, 단독 경쟁에 내몰리는 기자들도 자괴감과 무력감을 토로한다.
한 방송사의 기자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취재윤리 교육 등을 거치지 않고 바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기자는 “마감 시간과 특종 압박에 쫓겨 고민할 틈도 없이 취재하고 나면 허탈함이 밀려올 때가 많다”며 괴로워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당시 언론사들의 과잉 취재 경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한국기자협회는 재난보도 준칙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해당 준칙은 끝내 제정되지 않았고,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과열된 언론 보도 행태는 반복됐다. 과거 참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며 정부를 겨냥했던 비판의 화살이 언론에 되돌아오는 이유다.
선문대 박정호 교수(언론광고학)는 “언론이 하루 종일 특보체제를 유지하며 실시간으로 방송하거나 속보를 전달하다 보니 사실 확인을 거치기가 어렵다.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여러 단계를 거쳐 검증된 사실만을 보도해야 한다”며 “선정적이고 감성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정보전달과 사회 감시라는 직업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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