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학
잊을 만하면 반복되곤 하는 군부대의 탈영병 총기 난사 사건은 대부분 정신적인 불안정이
극에 달한 병사들의 그릇된 소행에서 비롯된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국가안보를 책임지고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전쟁을 대비하는 특수한
공간에서, 이런 병사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은 다수의 무고한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차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군(軍)도
동부전선 전방소초(GOP)에서의 총기 난사 사건 직후의 초동대응에서부터 검거작전 중 오인 사고에 이르기까지 난맥상을 드러낸 바 있다. 군은
이른바 ‘관심병사’에 대한 부실한 사병 관리·감독으로 질타를 받고 있다. 신세대 장병들에게는 지금의 군대 생활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관심병사’를 담당하는 군 내부의 전문 상담인력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며, ‘관심병사’ 분류를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그런데 사건을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이번 ‘임 병장 사건’의 이면에는 ‘관심병사’들이 GOP라는 국가안보의 마지막
보루에 투입돼야 하는 구조적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겠지만, 한마디로 군 인력이
적재적소에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군(軍) 복무 기간 단축’이라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주장은 다분히 재고(再考)할
여지가 있다.
현재 대체로 우리 군 전체의 관심사병은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군부대 내 참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이들 사병들의 보직을 더욱 제한하게 된다면, 앞으로 병력 자원 부족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는 군복무를 18개월까지 줄이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은 바 있다. 과거 33개월이던 군복무 기간이 1984년부터 점차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 정부에서 현재의 21개월로 묶어놓은 상태다. 군복무의 향후 단축이 심각하게 재고돼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인구 구성의 변화로 인해 병력으로 가용한 인적 자원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추세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의 통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출산율은 1.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 환경 및 비싼 주거비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여러 특성이 어느 날 갑자기 개선되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 국가안보를 책임질 인력은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물론 이제는 과거처럼 북한 변수를 포함한 안보 이슈가 우리 국민을 설득하고 또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균형감을 가지고 냉정한 눈으로 보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금의 동북아
안보 상황은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렵다. 언젠가는 동북아 지역에도 상호 의존과 신뢰의 가치가 자리잡아 ‘동북아 공동체’ 정신이 팽배할 날이
오겠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아직 갈 길이 매우 멀다는 사실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군복무 단축으로 인해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전력(戰力)
손실을 초래할 시점은 아니라는 얘기다.
끝으로, 모든 업무에는 전문성과 효율성이라는 게 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대체로
군복무를 시작한 지 10개월쯤부터 각자의 군복무와 관련한 전문성과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0개월 이후 몇 달 간 최고의
업무 효율성을 보이다가 이후 후임 병사에게 관련 노하우를 전수해야 할 것이고, 또 전역이 임박해서는 사회생활로의 복귀를 꿈꾸며 군 생활에서 벌써
마음이 떠나 있게 되니 18개월로의 복무 기간 단축은 적절치 않다.
예전과 달리 오늘날에는 ‘군인 아저씨’라는 표현을 좀처럼 듣기
어렵다. 옛날에는 군에 입대하는 아들이 걱정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 세대의 특성상 우리 아들들이 아니라 나라가
더 걱정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군복무 기간 단축 문제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때다.
출처 : 문화닷컴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