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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던 문창극 씨가 언론과 새누리당 일부의 반대로 본의 아니게 지명 취소당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본 번역자는 문창극 씨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세계의 10대 경제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의 월간지 세이론(正論) 200412월호에 게재된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날이라는 글을 입수하여 읽으면서 문창극 씨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어느 정도 유추 해석할 수가 있었다.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날이라니 이런 글이 요즘 쓰여 졌다면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인들의 저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을 것이나 이 글은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던 200412월호에 발표된 글이다. 그러면서 한국사정을 꿰뚫어 보는 일본인의 글이라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국민들 자성의 시기에 한번 읽어 볼만한 글이라고 생각하여 자세한 요약을 제공하고자 한다.

세월호 참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또 최근 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축구팀의 H조 최하위 성적에 국민들은 실망했다. 지금은 모든 국민들의 반성과 자성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하다면 그 글을 구해 직접 읽어볼 수도 있다고 보아진다. 시간이 허락하시는 분들의 일독과 논평을 기대하고자 한다. - 요약 번역자 주 -

 

 

대한민국이 소멸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 民族主義高揚이 자기들을 위태롭게 하는 현실을 알고 있는가? -

 

黒田 勝弘(구로다 가쓰히로)

 

   

1천만 명이 보았다는 한국의 전쟁영화

韓流(한류) 붐이 일어나 있는 일본에서 개봉된 한국 영화중에 <형제애 Brother- hood>(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일본어 제목)욘사마와 같이 인기를 누리던 원빈이나 장동건도 출연했다해서 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상영 후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영화로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모양이다. TV드라마였던 <겨울소나타>(원명 겨울연가)는 연애영화였는데 그와 달리 전쟁영화라서 여성들의 반응도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

南北관계를 다룬 영화로서 남북군사경계선에서 남북 장병이 비밀리에 교제하는 것을 그려낸 <JSA>가 소개되었다. 그러나 <쉬리> 정도의 성공은 아니었다. 액션 드라마라기보다는 심리드라마였는데 주인공인 한국병사가 그런 사실이 노출 발각됨으로써 고민 끝에 자살로 끝난 어두운 이야기였다. 자살하는 남한의 군인에 비교하면 북한의 병사는 당당하게 살아남는다. 그래서 장군님은 그 내용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여담으로 말하자면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도 映畵狂(영화광)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한국작품도 많이 보았는데 그는 <쉬리>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나 <JSA>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를 하였다는 말이 들린다. 쉬리에서 남북 수뇌폭살을 기도했던 북조선 테러부대가 북의 민중구제를 위해서 궐기한 북의 반란부대였다는 스토리이다. 북의 쿠데타를 선동하는 영화였으니 장군님이 좋아했을 리가 없었다.

일본에서는 그 후 <겨울소나타> 붐에 이어서 <브라더 후드><실미도>가 공개되었다. 두 작품 모두 한국 내에서는 관객 동원 1천만 명 이상의 인기를 누렸던 화제의 영화였다. 한국에서 국산영화에 대한 폭발적 인기가 있어서 官民(관민)이 모두가 즐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1천만 명하면 한국인구의 4분의 1이 된다. 영화인구로 말한다면 거의 모두가 봤다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텔레비전이라면 몰라도 영화관 람은 걸어와서 돈을 내며 보는 것이니 이 숫자가 이상스럽다. 전체주의국가라면 모를까 보통의 자유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좋아해도 되는가하는 비판적 영화평도 한국신문에 나왔지만 의외로 공감과 반응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1천만 명 이상의 국민이 이 같은 영화를 본다는 것, 이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이나 북이나 모두 다 같아

<브라더 후드(형제애><실미도>도 앞서 말한 <쉬리><JSA>도 모두 똑 같은 정치영화이다. <겨울 소나타>같은 무색의 연애물과는 달리 근래 한국영화는 정치색깔이 강하다. 제작자도 감독도 모두 젊어서 그런지 시대배경 영화에는 언제나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음을 본다.

<브라더 후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 전쟁에 본의 아니게 말려든 형제의 이야기. 그 영화에는 격렬한 전투장면이 많으며 한국전쟁 전 과정을 묘사한 대형 전쟁영화였다. 그 내용에는 兄弟家族애 색채가 너무 강하다. 일본판 수출을 위해 그 제목을 바꾼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일본 반응이 기대한 만큼 좋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일본에서 형제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의 스토리는 갑자기 거리에서 군인으로 끌려간 동생을 군대에서 빼내고자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러다가 그 형도 군대에 들어가서 戰功을 올려 그 포상으로 동생의 除隊(제대)를 추진하려고 애쓴다. 형은 후에 인민군 포로가 되어 인민병사가 되고, 동생과 대치하면서도 동생의 목숨구하기를 위하여 노력한다.

이 형제애를 주된 배경으로 하고 남북 쌍방에서 행해진 주민학살과 테러, 정치적 억압 등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인민군과 중공군의 모습은 나와도 미군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상한 부분이다. 전쟁 장면은 집요할 만큼 나오는데도 3만 명이상의 희생자를 낸 미군이 등장하지 않은 한국전쟁 영화가 미국에서도 성공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북의 침략이라는 기본사실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을 수평적(똑같이)으로 다루면서 남쪽에 있어서의 주민학살과 좌익 숙청, 주민들 괴롭히기 등 사회악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전쟁관으로서는 결국 남북 쌍방이 모두 같다는 인상을 남기는데 조국방위보다도 가족형제방위가 더 중요한 가치로 다루어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조국방위와 가족방위는 대등한 것이 아니다. 전쟁은 ()이며 가족과 형제는 인데 그 전쟁의 희생자라는 도식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 북한의 침략에 의한 조국방위 전쟁이라는 한국전쟁을 그런 가치관과 도식으로 그려내야만 국민적인 공감과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말이 나온 김에 <실미도>에 대해서도 더 말하겠다. 이것도 1천만 명을 동원한 영화이며 親北的 성향의 전쟁영화이다. 다만 북한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서울 근교에서 일어난 대북 파괴공작을 훈련한 한국 특수부대가 반란을 일으켰던 실미도 사건을 소재로 한 것이다.

남북의 대결로 인한 남자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내용을 소재하여 관객들의 눈물을 짜낸다. 애국심에 불타는 남자 집단을 이 세상에서 政治惡으로 제거하려는 내용을 다룬 영화이다.

영화 <실미도>를 그 후에 남북 정치현실과 비교해 본다면 한국은 남북대화라는 평화공작에 기만당하여 대북공작 부대를 없애버렸다. 그러나 북한에 의한 테러 활동은 그 후로 계속되어 왔다. 수많은 무장 게릴라가 한국으로 침입했으며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던 문세광 사건, 전두환 대통령 폭살을 기도했던 랑군 폭탄테러, 더욱이 김현희 등에 의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아직도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영화 <브라더 후드>의 원제는 <태극기 휘날리며>인데 그 뜻이 매우 상징적이다. 역사적으로 말한다면 한국 국민은 한국전쟁을 통하여 지켜졌던 대한민국으로 인하여 비로소 국가의식을 갖게 되었던 사람들이 아닌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전쟁이 북한에 의한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국민으로서는 북조선과 싸우는 것이 조국을 수호하는 노력이었다. 요컨대 한국국민은 북한의 침략으로 인하여 비로소 국가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조국통일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국국민은 북한과 전쟁함으로 인하여 비로소 대한민국을 祖國으로 의식하게 되었으며 또 국가의식도 생겨났다고 말할 수가 있다.

국가의식은 대한민국의 建國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북조선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등식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건국은 해방 후 격렬한 左右대립과 항쟁을 통하여, 또 북한과 싸우기 위하여 강화되었다. 한국전쟁도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달리 말한다면 한국과 북한은 해방 후 건국 이래 상호 함수관계를 가지며 남북 쌍방은 언제나 상대방의 존재에 의하여 생겨나고 또 존속하여 왔으며 양자는 단절하려고해도 할 수 없는 관계로 그 존재가 유지되어왔다.

그런 뜻에서 남북은 물론 모두가 총력을 걸고 싸웠던 한국전쟁도 서로 死活을 건 전쟁으로 최대의 역사적인 동기가 되어 있다. 한국으로서는 조국방위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존재가 확고해 졌다. 또 국민들의 조국의식이 싹트는 계기가 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건국도 그렇지만 한국전쟁을 빼버리면 국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책임을 스탈린에게 전가함으로써 북한을 免罪해준 김대중

그런데 2000625, 한국전쟁 50주년을 기해서 한국은 북한의 전쟁 책임을 면죄해 주었다. 10일 전에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수뇌회담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의 전쟁 책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으며 그 전쟁 책임도 국제공산주의-스탈린에게 전가해 버렸다.

전쟁책임은 국제공산주의의 음모에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김일성과 북조선의 책임을 면죄해 주었다. 결국 전쟁 책임은 스탈린의 음모에 의한 것이므로 김일성은 그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설명을 통하여 북한의 전쟁책임을 면제해 준다는 것은 사실상 역사왜곡이다. 이러한 역사왜곡은 노무현정권에도 계속되었다.

한국전쟁으로부터 북한의 책임을 면제해 줌으로 인하여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도 흔들리게 된다. 건국으로부터 체제간 경쟁을 해온 것이나 조국방위의 노력도 의가 없어진 것이다. 한국전쟁의 국민적 체험을 통하여 국가의 存在理由가 되어왔던 북한의 위협도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북한 위협이란 말도 사실상 없어졌다.

한국전쟁 이외에도 1974文世光 사건이나 1984년 랑군 폭탄사건 등도 모두 한국의 대통령 암살을 위한 국가테러였다. 북한의 국가파괴행위는 한국의 국가파괴 행위이며 동시에 체제도전이기도 했다. 그런데 랑군사건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작년 문세광 사건 30주년이 되는 금년에도 한국은 아무런 행사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관계 유지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국가로서의 체면도 긍지도 내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한편 북한은 敵國인 한국에 잡혀있었던 소위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에 성공하였다.

무장 빨치산이나 공작원 간첩으로서 조국-김일성김정일체제에 忠誠을 맹세하고 목숨을 걸고 활동한 비전향수도 끈질긴 설득과 요구에 의해서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북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한국은 북한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북조선에 납치된 한국국민들을 아직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니 북한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한국의 북한화를 촉진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노력

한국의 解體(해체)는 김대중정권(1998-2003)에서 급진전 되었으며 노무현정권하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김대중정권은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거액의 美貨(미화)를 김정일정권에게 갔다 바쳤으며 여러 가지의 國家解體(국가해체) 작업에 착수하였다.

앞에서 말한 한국전쟁관의 대전환이 그 하나였지만 또 하나는 한국군 내부에서의 主敵(주적)관의 변화이다. 북한을 가상 ()으로 본 과거의 관념은 통용할 수가 없어서 그 후 <國防白書>조차도 낼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서 한국군의 士氣도 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무장까지도 하게 되어 군사중심의 强盛大國이라는 국가 슬로건이 생겨나고 또 先軍(선군)사상이라는 이름의 군사우선사상을 당당하게 간조하고 있음을 본다.

노무현정권은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에 대하여 파괴공작과 혁명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이에 가담하고 협력하는 행위를 국가보안법으로 단속하는 활동을 해왔다. 그 최대목표는 한국에서 파괴활동을 하는 간첩들을 잡아들이는 국가보호와 국법유지를 위한 기본 장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규정을 폐기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화해와 협력의 시대에 맞지 않지 때문이라고. 과거에 정권비판 행위조차도 親北행위로 간주되어서 탄압하였기 때문에 자유와 인권의 관점에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을 불법단체로 보아서 국가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해 왔던 국가이념의 후퇴를 의미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결국 남북한을 대등한 국가로 인정하며 그 이념이 한국으로 침투해 들어옴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북한에게 한국전쟁의 책임과 국가적 테러행위에 대한 책임조차도 묻지 못하며 북한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체제활동을 인정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무현정권에서 본격화된 반일운동과 한국판 自虐사관

노무현정권의 주요 과제는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 청산 首都 移轉의 문제였다. 이것은 북조선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에 대한 한국의 위신을 떨어뜨림으로써 한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기반을 부정하며 무너뜨리기 위한 노력이다.

과거사 청산은 한국 특유의 주장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정치적 관점에서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꿔 쓰겠다는 것이다. 노 정권의 과거사 청산에는 두 가지 내용이 들어있다. 첫째는 이른바 反日法이라는 새로운 법률과 친일진상규명법을 제정함으로써 일본 통치시대의 친일파를 다시 조사하고 규탄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1980년대까지 한국의 역대정권을 國家惡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것이다.

친일진상규명법에 의한 과거 청산은 단순히 일본 통치시대에 그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친일파를 포함하여 일본 통치시대의 유산을 활용하여 공산화를 방지하며 경제발전에 기여해온 한국의 현대사를 비판하며 부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도 일제를 완전히 청산하였다고 자처하는 북한과 비교함으로써 한국이라는 국가정치체제의 민족적 정통성을 깎아 내리고자 한 것이었다. 예전부터 친일파 규탄의 핵심은 여기에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한 법률을 親北이 주장하는 이유가 된다.

또 하나의 현대사 관련 과거 청산은 역대정권하에서 행해진 인권침해와 정치탄압을 드러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발전상보다도 어두운 면 곧 민주주의 탄압사로 특징지우기 위한 한국판 自虐(자학)史觀이라 하겠다. 그 결과로 역대정권하에서의 反政府운동은 모두가 이며 그것을 통제하고 규제하려는 정부행위는 모두가 이었던 것이다. 民衆은 언제나 이고 국가는 언제나 이라는 民衆史觀 내지 계급사관에 의한 과거 청산의 정치노선이다.

이러한 정치투쟁은 이미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왔다. 예를 들어 과거 북한의 스파이나 공작원으로 체포된 인물들이 옥중에서 사상적 전향을 거부한 것도 민주화 운동의 국가유공자로 취급받으며 정부 관련 위원회로부터도 찬양받는 사태로 변해온 것이다.

과거의 정권에 대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북한스파이 경력 소지자들이 승진하고 그들을 체포하고 조사한 이나 치안기관의 관계자들이 역으로 조사받고 있다. 과거 국가적 법집행과 관련된 正邪 구분은 모두 다 반대로 뒤집혀진다. 알고 보면 이런 것이 모두 북조선에서의 공작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自虐史觀은 결과적으로 모두 다 친북활동과 결부되어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의 존재와 그 역사는 북한과의 함수관계로 생긴 것이므로 反共은 악이며 容共이라는 도식에 따라서 서술되며 또 교육된다.

또 좀 더 새로운 분야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高校의 근현대사 교과서이다. 한국의 역사를 서술할 때는 부정적인 면이 반드시 기술되어야 한다. 반면에 북한의 역사에서는 자료의 객관적 소개를 빙자하여 긍정적인 기술만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주민의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할 목적으로 추진된 천리마운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전반까지 사회주의경제 건설에 큰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한다. 반면 새마을운동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 자발적 운동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부주도운동이였다. 그래서 살림이 좋아지려면 어떠한 희생과 대가도 수용해야 한다는 정신자세를 강조했다. 그런 이유로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정부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歷代정권의 정치적 억압활동은 열심히 기술하면서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김일성 중심의 체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 ‘김일성 개인숭배라는 기술은 볼 수 있어도 독재라는 기술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서울 포기가 의미하는 것

노무현정권이 서둘렀던 수도 이전도 대한민국의 역사와 체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정치사건이었다. 서울로부터 首都 이전은 북한에 대한 한국의 국가적 位相(위상)을 저하하는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앙집권적인 이 나라에서 한국은 바로 서울과 결부되며 서울이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으로 서울 爭奪戰(쟁탈전)은 반복되었지만 서울은 바로 대한민국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런 서울을 한국의 수도로부터 밀어내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노무현정권의 수도 移轉정책은 남북관계에서 흡수통일 정책의 포기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정부관계 요인도 그런 말을 公言한바 도 있다. 한국은 독일통일과 같이 한국에 의한 북한흡수통일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흡수통일이 아닌 경우에 한국정부의 수도는 서울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있다. 흡수통일의 포기는 한국의 국가적 이념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남북한의 합의통일, 연방제통일, 국가연합제통일을 하게 되면 정치수도는 서울이나 평양이 아닌 제3의 장소에 별도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통일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겠다는 주장이 나올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주도의 남북통일의 의지가 후퇴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서울 포기는 바로 그러한 사고방법의 상징인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서울 사수를 고집한 것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존재를 앞에 두고 생각한다면 서울은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런 서울에서 수도를 철수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경시 또는 모독이나 다름이 없다. 북조선으로서도 宿敵(숙적)인 한국을 앞에 놓고 평양으로부터 수도를 철수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소멸인 것이다. 현재 한국정부의 움직임은 바로 그 방향으로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서 한국국민은 어떻게 저지할 수가 있을까? (일본 <正論>, 2004. 12월호) 요약 번역자 한승조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