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경찰이 조직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행적을 쫓던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이미 지난달 변사체(變死體)로 발견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달 12일 전남 순천시 서면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이제 와 유씨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시신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한 결과이다. 지문(指紋) 분석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다. 유씨가 변사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인
6월 10일 검찰·경찰은 군과 안전행정부 관계자들을 불러 대책회의를 열었다. 유씨 밀항을 막기 위해 해군 함정까지 동원하는 법석을 떨었다.
13일엔 전국에서 반상회도 열었다. 그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던 때 유씨는 변사체로 발견됐지만 그 변사체가 유씨라는 것이 확인되기까지 42일이나
걸렸다. 시신 발견 장소는 5월 25일 검찰이 유씨를 놓쳤던 순천 송치재 휴게소 별장에서 불과 2.5㎞ 떨어진 야산이다. 경찰은 검문소를
설치하고 연인원 8116명을 동원해 부근을 뒤지고 다녔다. 그 경찰관들은 눈만 뜨고 있었지 넋을 잃고 건성으로 근무한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은 6월 12일 변사체를 발견했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서는 행려병자로 지레 판단해 단순 변사 사건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유씨를 잡느라 법석을 떨던 와중에 변사체가 나왔다면 혹씨 유씨가 아닌지 눈여겨 살펴볼 생각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시신 옆에서 발견된
천 가방에는 유씨가 쓴 책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가방 속에 든 영양제 스쿠알렌은 구원파 계열회사가 만든 것이었다. 사망자 신원이 확실치 않은
변사 사건에선 부검(剖檢)이 필요하기 때문에 검사 지휘를 받게 돼 있다. 이번에도 경찰이 순천지청 검사에게 관련 기록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검사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부검 후 시신은 유족에게 넘기라'며 통상적인 지휘만 했다. 담당 경찰이나 검사는 온 나라가 유씨를 색출하기 위해
비상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을 텐데 어떤 정신 자세로 일을 처리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시신 DNA 감식 결과가 나온 21일은
검찰이 유씨 검거를 위해 발부받은 구속영장 유효기간이 끝나 새로 6개월짜리 구속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은 날이었다. 검찰 고위 간부는 이날
낮까지도 "추적의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며 뭔가 수사에 진전이라도 있는 듯 발언했다. 대한민국 검찰·경찰이 정말 이토록 무능(無能)한
조직이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할 때 제 발로 걸어나온 사람 이외엔 단 한 명도 구조해내지 못했고,
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실종자 숫자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했다. 대한민국 공무원 집단의 잇단 실패는 시중 괴담(怪談)을 확산시키고 정부
불신(不信)을 조장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이런 공무원들의 무능이 언젠가는 국가 운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국난(國難)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