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서울세계불꽃축제) 발사대까지 몰래 들어온 이들 "가까이서 보려…"
환풍구 추락 등 대형사고 생존자들 모두가 "내가 겪을줄
상상도 못했다"
100번 아무 일 없다가도 101번째 갑자기 일어나는 게 사고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부상자
"평소 남들
안전불감 탓했는데 제가 그렇게 행동한 건 한심"
고양 터미널 화재사고 부상자
"전체적으로 안전 소홀히 하는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 심각"
경주 체육관 붕괴사고 부상자
"터널 등 폐쇄 공간 지날 땐 천장이 튼튼한지 먼저 살펴"
지난해까지 한강대교 아래 둔치 끝자락에서 술판을 벌였던 노인들도 그랬다. 이끼가 잔뜩 낀 돌무더기 때문에 미끄러운 그곳에서 사고는 시간문제였다. 소방관들은 "어르신들, 제발 좀 나와주세요!"라며 몇 번이나 주의를 줬다. 노인들은 그런 소방관들을 오히려 나무랐다. "야, 내가 여기서 100번 넘게 술 마셨다. 아무 문제 없어!" 취한 노인 한 명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는 사고가 나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고가 난 곳은 말뚝이 박혀 지금은 출입이 금지됐다. 한 소방관은 "100번 아무 일 없었다가 101번째 갑자기 일어나는 게 사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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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풍구 지지대 하중 실험… 4분 만에 무너져 - 21일 오후 경기 성남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과 경찰이 크레인 1대를 동원해 환풍구 철망 지지대 하중 실험을 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받침대 1개를 도르래를 이용해 아래쪽으로 잡아당겨 어느 정도의 무게를 견디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윤동진 기자
서울소방본부 특수구조대 수난구조대장 홍성삼(52) 소방경은 20년 전 오늘 성수대교 붕괴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이다. 그는 "안전 불감증에도 단계가 있다"고 했다. 홍 대장은 "위험한 상황인데 그걸 '위험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위험하다고 고지(告知)해도 말을 듣지 않는' 말기 단계까지 다양한데 우리 모습은 말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줄 몰랐다"는 말이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원인 조사위원장을 맡았던 장승필 서울대 명예교수(토목공학)는 "성수대교 붕괴 당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도대체 어떻게 다리가 무너지느냐'였고 최근에는 '대체 어떻게 환풍구가 저런 식으로 무너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장 명예교수는
"그때와 지금의 안전의식과 불감증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했다. 그는 "설마 설마 하다 사고 나는 것은 여전하다. 사회가 바뀌는데 아직
우리의 안전 의식 수준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고 했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국민들은 "이제는 대한민국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20년간의 역사는 그런 희망을 배반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올해 4월의 세월호 참사까지 대형 참사가 줄을 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19일 발표한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 지수도 갈수록 급락하고 있다. 전국 20세 이상 성인 1004명에게 설문한 결과, 2007년엔 30.3점(100점 만점)이었던 안전의식 지수는 올해 17.0점으로 떨어졌다. 안전의식 개선도를 묻는 질문에는 5년 전과 똑같다고 응답한 비율이 65.3%나 됐다. 김동렬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20년 전과 비교해도 안전의식 수준은 제자리걸음 중"이라고 분석했다.
대형 참사를 직접 겪은 경험자들은 "말로만 '안전 불감증, 안전 불감증'이라고 계속 이야기 들었는데 실제로 사고를 겪고 보니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부산외대에 다니는 A씨는 터널이나 체육관 같은 폐쇄된 공간엔 잘 가지 못한다. 그런 곳에 억지로라도 가게 되면 꼭 천장이 튼튼한가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지난 2월 17일 그는 경북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현장에 있었다. 당시 A씨는 체육관 지붕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순간 인파에 밀려 문밖으로 튕겨나와 목숨을 건졌다. 함께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던 동기·후배들 중 10명이 사망하고 204명이 부상을 당했다. A씨는 "그 일을 겪기 전까지는 '설마 내가 대형사고를 당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며 "뉴스에 나오는 사고들은 남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6일 사망자 8명이 발생한 경기도 고양 종합터미널 화재 사고에서 부상을 입은 박성린(39)씨는 "그동안 각종 사고를 접하면서
'나한테 이런 일이 있겠냐'고 생각하다가 직접 당했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안전을 소홀히 하는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17일
발생한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에서 부상을 당한 40대 직장인도 한 언론에서 "평소에 무질서한 타인들을 비난하고,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고 말하곤 했는데, 제가 그렇게(환풍구 위에 올라간) 행동한 것을 깨닫고는 너무 한심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형사고 때마다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한 혐의로 처벌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한결같이 "관행이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그 뿌리는 '설마 사고(事故)가 나겠어?'라는 사고(思考)다. 침몰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세월호의 복원성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관행이었다"고 재판에서 진술했다. 붕괴 사고 당시 마우나리조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사고 당일보다 눈이 많이 온 (사고)
전주 주말에도 아무 일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남는 인력도 없어 지붕 제설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