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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단독] 박상학, “숙부 죽이고 약혼녀 고문… 이제 무서울 것 없다”

침묵의 지지자들이 성원을 보내주는 한 계속할 겁니다

▲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3일 국회 본관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남북관계 및 탈북자운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저 보고 평화의 파괴자라고 하더군요. 그래도 두려운 것 없어요. 침묵의 지지자들이 성원을 보내주는 한 계속할 겁니다.” 남북관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인 대북전단 살포의 ‘주동자’ 박상학(46)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3일 그에게 쏟아지는 이런저런 따가운 소리를 의식한 듯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이른바 실세 3인방이 지난 10월 4일 깜짝 방문에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바람에 사실상 무산된 분위기 속에서 그는 대한민국에서 요즘 욕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이날 국회에서 2시간여 가진 박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정치화한 이슈인 대북전단 문제가 빠지기는 힘들었다. 그에게는 ‘존재 이유’가 돼버린 이 문제에 관한 한 그는 무척 당당했다. 요즘이 가장 힘든 시기냐는 질문에 그는 “힘들다. 저에게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격려해준 사람들이 그 배 이상”이라며 소신을 강변하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일이라는 점, 결국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는 요구였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거짓과 위선에 속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평화적인 편지를 보내는 것인데 이걸 어떻게 남북대화를 가로막고 한반도 평화를 깨는 흉기라고 말하는지 도저히 이런 현실을 이해할 수 없어요. 일부 언론이나 종북 좌파 세력은 그렇다 해도 저를 분노케 하는 것은 겁먹은 기회주의 보수주의자들까지 가세해 이렇게까지 진실의 편지를 모독할 수 있는가 싶어요.”

그의 말에는 서운함을 넘어선 분노가 서려 있었다. “심지어 제가 대북전단을 띄워 수익사업을 한다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이건 너무한 것 아닙니까.” 박 대표의 분노는 정치권을 향했다. “북한 인권법만 해도 미국에서 10년 전에, 우리와 가장 사이가 나쁘다는 일본도 5년 전에 통과시켰는데 우리는 이게 뭔가요. 김정은에게는 관대하면서 피해자인 북한 주민들에게 왜 이토록 잔인한가요. 마키아벨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잔인한 자를 동정하는 자는 동정받아야 할 사람에게 잔인하다’고요. 지금 제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후원자들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대북전단을 보내는 동안 적게는 1000원씩 8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후원해 주셨어요. 많게는 1000만 원도 보낸 분들이 몇 분 계시고요. 침묵하고 있으면서도 무명으로 후원해 주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전단을 보낼 수 있어요. 김정은의 공갈 협박, 전혀 두렵지 않아요. 진보와 통일, ‘우리민족끼리’로 위장한 종북 세력들이 협박하고 방해하고 모독하지만 그것도 두려울 게 없죠. 정말 두려운 게 있다면 대북전단 후원자들이 우리의 진정성을 모르고 일부 언론과 좌파 선전선동에 넘어가 우리를 오해하고 후원을 중단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진실을 북한에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는 결의에 차 있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얼굴에 나체의 여성을 합성한 사진이 담긴 전단을 보내는 것은 진실을 알리겠다는 의도와는 좀 다르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건 우리가 보낸 게 아니라. ○○단체에서 보낸 거예요. 저도 유치하다고 생각해요. 유치하면서 확인도 안 된 것을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전단을 본 북한 동포들은 남조선에서 원수님을 촬영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것이 나돌까 갸우뚱하게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우리는 김정은 가계도 같은 것을 보내죠. 김정은 생모인 고영희는 북한말로 ‘재포(재일교포)’예요. 재포는 북한에서는 노동당 간부들과 결혼도 할 수 없죠. 김정은이 재포의 아들이다, 이런 얘기들은 동포들에게는 충격적인 얘기예요. 이런 얘기가 전해지면 수령 우상화에 어려움이 있죠.”

그는 왜 전단을 날리게 됐을까. 탈북 이후 통일전문 매체의 기자도 하고, 전공(정보·통신)을 살려 서울대 모바일연구소에서 일하면서 한동안 평범한 탈북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전해진 친지 소식이 발단이 됐다고 그는 털어놨다. 북한에 남은 가족들과 약혼자에게 가해진 보복 소식이었다. “숙부가 국가안전보위부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사촌들은 꽃제비가 돼 행방을 알 수 없었죠. 저에게는 3년 사귄 약혼자도 있었는데 보위부는 약혼자가 모를 리 없다면서 두 달 동안이나 잔인한 고문을 가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탈북한 사람들한테 전해 들었죠. 순간 얼마나 분노가 치밀던지…. 당시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나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만 잘살겠다고 자기들을 외면했다고 하지 않겠나, 이렇게 살다가는 벌 받지 않겠나, 이런 생각들을 했죠.”

그는 탈북 후 한국에서 북한 정보장교 출신의 아내와 결혼했지만 약혼자 얘기를 스스럼없이 한다고 했다. 심지어 아직 옛 약혼자의 사진까지 가지고 있단다.

“북한을 떠날 때 함께 가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탈북과정에서 잘못돼서 죽을 수도 있고, 나중에 데려올 생각이었는데 지금 후회가 되죠.” 현재 결혼한 부인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집사람도 가슴 아픈 일이라서 다 알고 있으니까 이해한다”고 했다.

폐쇄된 북한의 인권 참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들여보내려는 그의 의도는 생각과 달리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탈북자 몇 명이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를 만들었어요. 당시 노무현정부 때인데 단체 이름이 남북대화를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정부에서 법인 등록조차 못 하게 했어요. 법인이 돼야 후원도 받을 수 있고 해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라고 이름을 바꿔 활동을 시작했죠. 당시에는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더군요.”

왜 전단을 날리기 시작했는지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1∼2년 동안 미국 상·하원에 초청받아 증언도 하면서 국제사회에 실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그게 호응이 없더군요. 생각 끝에 정보가 차단된 북한 인민들에게 뭔가 진실을 알리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 2003년 남북이 군사회담 이후 대북심리전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어요. 이 중요한 것을 정부 차원에서 안 한다고 하니 우리가 해보자.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박 대표는 북한 명문 김책공대 체신학부 출신의 엘리트다. 왜 탈북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는 남파간첩이었어요. ‘노력영웅’ 칭호까지 받았어요. 재일교포 출신의 아버지는 무상교육 유혹에 북한으로 이주했고 김책공대를 나와 노동당 과학기술부를 거쳐 대남정보를 수집하는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 남파공작원을 했어요. 그곳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주도했던 곳이기도 하죠. 그런데 1997년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선생의 망명으로 북한 내부가 뒤숭숭해진 상황에서 아버지의 직속상관이었던 권희경 35호실 부장이 체포되면서 아버지가 남한행을 결심했어요 (권 부장은 소련 KGB와 내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1997년 11월 처형). 아버지는 사업가를 통해 북한을 탈출해야 한다는 육성편지를 보내왔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모략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죠. 김정일의 최고 신임을 받고 일한 분이 서울로 간다니. 당시 두 달 동안 고민했는데 한 20년을 산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북한 공작원의 자제들은 ‘노동당 11가 대상’이라고 해서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에 시험도 안 치고 진학하며, 간부 대상으로 뽑혀 양성되는 특수계급이었기 때문에 그의 고민이 더 깊었다는 것이다. 그의 부친은 현재 일본 도쿄(東京)에 거주하고 있다.

가족들의 만류는 없는지, 계속 전단을 보낼 것인지를 물었다. “제가 만약 서울 출신의 여자와 결혼했다면 10번도 더 이혼당했겠죠. 집사람도 북한 정권에 대한 분노가 있는 사람이니까 끊임없는 살인·공갈, 협박에도 계속할 수 있도록 내조해 주는 것이죠.”

박 대표에게 북한 체제의 특성상 자체 혁명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목소리가 버럭 높아졌다. “그 얘기는 북한 인민에 대한 최대 모욕이에요. 로마의 노예들도 아니고. 그래도 21세기에 살고 있지 않나요. 불모지 아프리카에서도 재스민 혁명이 일어났는데 그런 혁명이 북한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요. 백지장 같은 아이들 마음에 통일이 경제적 부담이 된다느니, 생활 수준이 낮아질 것이라는 선입견적인 반(反)통일의식이 심어져 있어요. 아주 나쁜 것이죠.”

박 대표는 “이렇게 구시대적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단을 날려 보내고 하는 게 그만큼 북한이 폐쇄적인 사회이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출처 문화닷첨  /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