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의 주장인 즉 “대화하자는 마당에 북한을 자극해선 안 된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려는 것과 똑같이 북한은 자기들의 ‘최고존엄’을 수호하니까 그 ‘다름’을 존중해줘야 한다” 어쩌고 하는 것이다. 참 말들은 잘도 만들어 쓴다.
그렇다면 북한이 우리를 자극하는 건 어떡할 작정인가? 6·25 남침,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안함 폭파, 연평도 포격, 관광객 조준사살...에 대해 “북한은 남한을 자극하지 말라” “그런 자극을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라”고 한 적이 있나?
자유민주주의나 자유사회는 물론 남의 ‘다름’을 존중하는 이념이요 체제다. 그러나 거기엔 조건이 붙는다. 자유민주주의나 자유체제 자체를 깨려는 ‘다름’까지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자유체제와 자유인들은 그래서 좌우의 전체주의, 즉 파시즘, 나치즘, 볼셰비즘에 대해선 치열한 가치투쟁, 사법(司法)투쟁, 힘의 투쟁을 전개한다. 북한은 ‘전체주의+신정(神政)체제’다. 이런 범죄 집단에 대해 자유체제는 ‘전쟁억지(抑止)에 의한 평화’ 조치는 취하되 존중까지 해줄 수는 없다. 존중은 존경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는 전쟁난다. 전쟁하자는 거냐?“고 일부는 말한다. 그렇다면 되묻는다. ”그럼 투항하자는 건가?“ 전쟁을 막기 위해선 우리는 유약해선 안 되고 강해야 한다. 우리가 강하지 않으면 북한 같은 범죄 집단은 더욱 우리를 깔아뭉개려 할 뿐이다. 그게 깡패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강하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주뼛주뼛하는 자세나 수세적인 자세가 아닌, 당당하고 공세적인 자세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힘을 갖추는 것이다. 이래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이런 공세적 자세의 한 가닥이 북한인권법이다. 그런데 새민련이 이걸 적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북 전단지 살포는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는 당신들 정말 누구요?“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출처 코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