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올해 초 시중에 떠돌던 '김기춘 비서실장 중병설 및 교체설'의 출처로 한때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했던 정윤회씨를 지목하는
내부 문건을 작성했던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靑(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 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던 경찰 출신 인사가 만들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건은 '증권가 찌라시'에 나오는 풍문을 취합한 동향 보고 수준에
불과하다"며 "당시 유사한 내용이 김기춘 실장에게 구두로 보고됐으며 해당 언론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문건에 나온 핵심 의혹은 정씨가 지난해 말 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을
만나 "2014년 초·중순쯤으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 시점을 잡고 있다"며 "사전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정보를 유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간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씨가 이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선(袐線) 실세'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문건에 거론된 3명의 비서관
역시 '문고리 권력'으로 불려왔다. 정씨는 1970년대 후반 박 대통령을 도왔던 최태민 목사의 사위이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이
3명의 비서관을 뽑은 것도 정씨라고 한다.
문건은 정씨가 이들 3인방과 서울 강남의 음식점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으며 이들을
비롯한 박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서관 10명과 "지난해 10월부터 주기적으로 만나 청와대 내부 상황을 점검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씨의 변호사는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과거 박 대통령을 보좌했었다는 것을 빼고는 이 정권에서 어떤
공적(公的) 자리도 갖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 정씨가 청와대 비서관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퇴 시점을 맘대로 정하고 여기에
필요한 사전 공작을 지시했다는 의혹은 선뜻 믿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 정권의 공직 기강이 이 정도로 무너졌다면 정권을 넘어서 국가의
안위(安危)를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청와대는 "당시 이 문건에 나온 내용을 확인한 결과 근거가 없어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일단 이런 의혹이 공개 거론된 이상 철저히 조사하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이 기회에 그간 나돌던 비선(袐線)이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말이 싹 들어가도록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고 앞으로 이런 유의 구설(口舌)로 인해 국정
기조가 흐트러지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문건을 작성한 경위와 외부에 공개된 과정 역시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현직 경찰이 청와대
시절 작성한 문건들을 박스에 담아 밖으로 들고 나왔고, 동료 경찰들이 외부로 유출했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청와대
설명처럼 '찌라시' 정보들을 묶어 보고서나 만들고 사후 관리도 안 될 만큼 청와대 내부 기강이 무너졌는지도 반드시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