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새해 예산안 처리 법정(法定) 시한인 2일 본회의를 열어 375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시한 내 예산안 통과는 2002년
이후 12년 만이다.
헌법(憲法) 54조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통과시키라고 규정해놓고 있다. 매년 12월
2일이 마감일인 것이다. 그러나 여야는 자신들이 여당일 때는 시한 준수를 요구하다가 야당이 되면 어김없이 어깃장을 놓아왔다. 국회는 결산안
처리도 매년 8월 31일 시한을 지킨 적이 거의 없다. 올해도 한 달이나 늦게 처리했고 작년엔 야당의 장외투쟁 여파로 석 달이나 지연시켰다.
때로는 정치 싸움에 쫓겨 사나흘 만에 심사를 마치기도 했다. 국회는 또 9월 1일 반드시 시작해야 하는 정기국회 개회 일정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헌법이 예산 통과 시한을 정해놓은 것은 국회의원들을 괜히 속박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내실(內實) 있는 심사를 하라는
뜻이다. 새해가 시작되기 30일 전까지 통과시키라는 것도 정부에 준비 기간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회가 정치 싸움 하느라 일정을 미루면서
국회 심사도 부실, 정부의 살림 준비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 예산안 시한이 지켜진 것은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다. 재작년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해도 자동 상정토록 해놓은 것이 처음 효력을 봤다. 이것은 국회가 잘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여야는 올해를 헌법·법률 준수 원년(元年)으로 삼아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법정 시한만은 철칙(鐵則)처럼 지킨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현재 국회엔 '김영란법', 북한인권법, 공무원연금개혁법 등 굵직한 법안들이 여럿 있다. 경제 상황에 직접 영향을 미칠
법안들도 여럿 올라가 있다. 이것들까지 제대로 심사·처리해야 국회가 오랜만에 기본 임무를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