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 그리고 그 대안
한승조 대불총 상임고문・고려대 명예교수
최근 2014년 12월 3일자 A35면에 조선일보는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강성학 박사의 “중국의 ‘한반도 中立化 통일’ 제안에 대비해야”라는 제목의 기고를 게재하였다. 그 글의 취지는 중국이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을 추진하는 모양인데 그것이 과연 한국인들에게 바람직한 외교정책인지 국제정치학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한 글이었다. 姜 교수의 글은 길지 않으므로 그 글 전체를 인용하며 필자의 논지를 펴보고자 한다.
“요동치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바다 위에서 대한민국호(號)의 외교적 항해가 몹시 불안해 보인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대(對)한국 정책은 치밀하면서도 꾸준하게 한국을 유혹하고 있다. 한국도 거부반응이 거의 없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반기고 있다. 빈번한 한・중 정상회담에다가 집권 여당 대표도 취임하자마자 동맹국을 제쳐두고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찾아가 인사할 정도가 되었다. 오랜 우방국인 일본에 대해선 모든 현안을 제쳐둔 채 도덕적 우월감으로 일본을 굴복시키려 한다. 반일(反日) 감정은 높아졌고 중국은 이런 한국의 대일 자세가 참으로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외교의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중국은 한국에 기습적으로 '한반도 중립화(中立化) 통일 방안'을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런 중국의 제안은 한국인 사이에 한민족이 정말로 통일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폭발시키면서 극심한 국론 분열을 일으켜 정국이 불안정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난공불락의 성(城)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분을 일으켜야 한다. 중국의 '한반도 중립화 통일 방안'에 한・미 간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에 불만을 품고 주한미군의 사드(THAAD) 요격 시스템 배치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무조건적인 반미 세력들이 열광할 것이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인에게 '중립(中立)'은 19세기 말부터 아주 유혹적인 개념이었다. 그러나 지정학적 조건에서 한국은 스위스보다는 벨기에에 가깝다. 1차 세계대전의 여명에 영세 중립국 벨기에는 프랑스로 가는 길을 내달라는 독일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참담하게 짓밟혔다. 1950년대 초 서독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스탈린의 거듭된 독일 중립화 통일 제안을 거부하고 북대서양 동맹에 가입했다. 그는 중립이나 연립정부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제안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빌리 브란트의 유명한 동방정책도 중립화 통일을 모색한 것이 아니라 동독과의 관계 정상화였다. 그리고 이것을 차용한 한국의 북방정책도 중립화 통일 방안과는 무관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추상적인 외교적 수사학을 되풀이하다가 난데없이 '한반도 중립화 통일 방안'을 제안하여 한국의 정치적 지축을 흔들어댄다면 결국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체제 손상 및 궁극적 붕괴를 추구해온 북한의 정책을 성공시켜 주는 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전략적 행위에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은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동맹국 미국의 대체국이 될 수 없다.
세계 외교사에서 빛나는 최고의 전략가 비스마르크는 5대 강대국 사이에선 항상 '3의 모임'에 속하는 것이 낫다고 충언했다. 한국의 미래는 나 홀로 야망에 들뜬 중국이 아니라 유럽 및 일본과 동맹을 맺어 '3'을 이루는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토대 위에서 한국의 모든 대외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외교 전략이 군사적 동맹의 국가 방위 전략과 크게 엇나간다면 단순한 외교적 실수가 아니라 자멸(自滅)의 길을 택하는 셈이 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중국이 불쑥 '한반도 중립화 통일 방안'을 제안해 올 경우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할 준비를 미리 치밀하게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동아시아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의 4강이 마주쳐서 서로 온갖 수작을 주고받음으로써 언제나 국제적인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지역이다. 한반도도 그런 국제적인 대립이나 갈등에 휘말리기가 쉽다. 그러므로 중립화하라. 그래야만 안전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 교수는 그러면 안된다고 경고한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 등 해양세력 편에 머물러 있으면서 러시아나 중국을 비롯한 대륙세력과 평화와 협력을 발전시키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는 것이 본 필자의 소견이다.
왜냐 하면 중립화란 주변국가나 그 당사자가 국제적인 합의를 존중해 줄 때에만 유효한 방책이다. 주변국가가 그 약속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만일 그런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을 때는 대한민국은 自救하는 능력이나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대 한국은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중립화 때문에 미국이 그 군대를 철수시켜야 하는 경우 한국에서 다시 전쟁이 났다고 해도 미국이 군사력을 이끌고 한국문제에 개입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또 한반도는 아시아 대륙에 붙어있는 半島(반도)이다. 아시아의 세력변동에 휘말리게 되어 있다. 한국이 대륙국가들의 지배를 받을 때 가장 불안해하는 것이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를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의지도 갖는 나라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일본을 불신하기 때문에 한일군사동맹의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하다면 한반도의 중립화는 바로 과거에 그래 왔듯이 한국을 아시아 대륙의 강대국에 事大(사대)하는 屬國(속국)의 신세를 모면할 수가 없다.
여기서 한반도의 중립화라는 發想(발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원인과 과정을 소급해 보자.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의지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에 한반도 통일을 성취해 보려는 의지에 불타 있다. 그리고 통일의 민족적 열망을 성취한 사람이 되기를 열망한다. 그 모든 先任(선임)자들이 하지 못한 역사적인 大業(대업)을 처음으로 성취한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북한을 살리던 죽이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니라는 오로지 중국뿐이다. 또 다행히 박 대통령은 중국의 통치권자인 시진핑 주석과 매우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시진핑 주석에게 부탁해 보자! 실제로 시 주석은 마음만 먹는다면 박근혜대통령을 남북한의 통일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미군사동맹이다. 한국을 한미군사동맹에서 풀어줄 수가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구상일 것 같다.
만일 중국과 한국이 중립화 통일방안을 합의한다면 미국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한국내에는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한사코 반대하는 세력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이라는 민족주의의 비원과 갈망을 반대하고 저항하는 세력은 얼마라도 억압하고 짓밟아 버릴 수 있다는 것이 요즈음 한국의 정신풍토인 것 같다. 어쩌면 중립화 통일의 문제가 2017년의 대통령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 아닌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요즘의 한국 상황인 것 같다.
요점: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집념은 유별나다. 박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유난히 좋아하고 신뢰하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의 통일을 성사시켜줄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으로서는 오랜 血盟(혈맹)인 북한을 무참하게 내쳐버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소원을 들어줄 입장에 있지 못하다.
시진핑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한국이 미국 일본과 관계를 끊고 중국으로 붙겠다고 선언하라. 그러면 박 대통령의 소망도 완벽하게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도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 차라리 한국은 중립화하겠다고 선언하라. 만일 그런 주장도 하기가 어려울 처지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런 중립화 바람만 일게 하고 때맞추어서 물러서라. 그 업무수행은 다음 정권에게 물려주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니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입장을 다시 밝히고자 한다. 본 필자는 대한민국의 中立化보다도 中道化를 選好(선호)한다. 한국의 中立化는 중국으로 경사하여 그 屬邦(속방)이 되는 길이지만 中道化는 모든 나라와 대등한 입장에서 親善하려는 정신자세이며 또 정책노선이다. 필자가 강조해온 아시아태평양공동체가 바로 그러한 정치노선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다운 정치노선으로 전진해 주시기를 바라는 바이다.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공동체 이사장) 2014.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