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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가을, 산사의 이야기

멀리서 큰 산를 보면 산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다. 기암(奇巖)과 가을이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되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흐르는 청정한 물 등이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산속에 들어서면 독사(毒蛇) 등 무서운 동물들이 양육강식(弱肉强食)의 기회를 노리고 행동한다. 특히 모두가 평안히 잠들어야 할 깊은 밤에는 산속에는 수리 부엉이 등의 포식자(捕食者)들이 약육강식(弱肉强食)을 하는 것을 알리는 약한 금수(禽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산의 적막을 깨드린다. 신비하기 짝이 없는 산은 가까이 가보면, 주야(晝夜)가 고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더욱 신비스러운 산사(山寺)에도 갈등과 고해같은 이야기는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1970년도 중반이었다. 해인승가대학(海印僧伽大學)의 선배로부터 나를 긴급히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해인사를 찾았다. 선배는 당시 해인사 재무국장 소임을 보고 있었다. 그는 40대 중반이었다. 어느 본사이던 재무국장 소임을 보는 승려는 해당 본사주지의 신임을 가장 크게 받는 승려이다.

나는 재무실에 잔뜩 점잖을 빼고 않아 있는 선배스님에게 넘죽 일배의 큰 절을 올렸다. 그는 나를 부른 이유를 엄숙하게 말했다.

“해인사 교구 말사에 사고사찰(事故寺刹)이 발생했소. 주지가 그 지역 국회의원 부인하고 사랑의 도망을 해버렸다니까. 미친 짓을 주지가 한 것이오. 왜 남의 마누라를 데리고 도망을 간다는 거요? 그 산사의 남녀 신도들이 격분하여 산사를 점령하고 농성과 아우성이요. 본사에서 긴급히 새로운 주지를 급파했지만, 이틀만에 내쫓겨 돌아왔다니까. 늙은 할매 보살들이 멱살을 잡아 흔들고 ”너도 도망간 주지와 같은 부류지?“하더라는 거요. 그가 내쫓겨 온 소식을 들은 승려들은 이제 아무도 그 사고사찰에 안가겠다는 거요. 해서 법철스님이 주지로 가서 성난 신도들을 진정시키고, 해산시켜 주었으면 해서… 연락을 드린거요. 에헴.”

재무스님은 나를 데리고 해인사 주지실에 동행했다. 당시 해인사주지는 선승(禪僧)으로 유명한 분이었다. 나는 삽 배의 절을 하는 데, 해인사주지는 자신의 큰 푸대같은 걸망에 사과 배, 떡을 바쁘게 쓸어 담고 있었다. 재무는 해인사 주지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평생 수행한 승려가 결론이 남의 마누라하고 도망을 치다니 말이 됩니까?”

해인사주지는 걸망을 메고 길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긴 순톱이 있는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진정서에 의하면, 나이 지긋한 주지스님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법철 수좌는 너무 젊은 데, 가자마자 내쫓기면 어쩌나….” 그리고는 재무에게 이렇게 말했다. “속인은 자신의 집에 언제 불이 날지, 또, 언제 교도소에 갈지 모른다는 교훈이 있다네. 우리 비구승은 언제 여자에 빠져 환속할 지 모른다네.” 그는 과일과 떡이 가득 든 걸망을 메고 바쁘게 떠나버렸다.

나는 사고사찰의 주지 임명장을 받아들고 사고사찰이 있는 면소재지의 택시를 타고 사고사찰이 있는 산 밑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는 나를 보고 웃으며 “새로 오는 주지스님이요? 할매들이 그 절을 점령해버렸지요. 스님 가시면 자칫하면 쫓겨납니다. 지난번 스님도 쫓겨났어요.”

택시에서 내려서 걸망을 메고 소로(小路)의 산길을 걸어 산사에 도착하니 과연 노보살들이 십여 명 몰려 나왔다. 법당에 참배하고 큰 방에 들어가니 60∼70대 후반의 노보살들이 사납게 쳐다보았다. 누군가 이렇게 불평했다. “해인사주지에게 나이 지긋한 노스님을 보내달라 진정서를 보냈는데, 어찌 된 거야? 너무 젊은 스님을 보내다니 우리를 뭘로 보는 거야? 해인사 주지스님은 눈이 제대로 달리고 생각이 있는거야?”

70대 후반의 좌장(座長)같은 노보살이 근엄하게 나에게 말했다.
“박대보살이 3일 후 사고사찰건에 대해 소상한 조사를 마치고 절에 오신다니 그 분의 얘기를 듣고, 젊은 스님을 주지로 맞을 지 상의해 봅시다. ” 십여 명의 노보살들은 자기네들이 존경하는 구순(九旬)이 넘은 박대보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성깔이 있는 노보살은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에 주지가 남의 부인과 도주한 사건은 처음이고, 노보살들은 마치 자신의 정조와 명예가 훼손된 것처럼 분개했다. “수행자를 파계시킨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년 같으니!” 여기저기 비난성이 일어났다.

드디어 고대하던 박대보살이 산사에 나타났다. 그녀는 죽장을 짚은 백발노인이었다. 그녀는 권위있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실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웃었다. “토종 스님이 오셨구먼.” 박대보살의 권위에 모든 노보살들은 복종하듯 했다. 박대보살은 큰 방에 나를 포함하여 대중을 집합시켜놓고 중대선언을 하듯 입을 열었더, “내가 자세히 조사해보니 국회의원 부인은 나쁜 여자가 아니었소. 불쌍한 여자였소.” 다른 노보살들이 놀랐다. “무슨 말잉교?”

박대보살이 조사보고서 같은 말에 의하면, 국회의원 부인은 아버지 친구끼리 홍인약속에 따라 남자와 결혼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가세(家勢)기 기울어 학교도 여중학교를 간신히 나왔다고 했다. 배우자 약속이 된 남자는 서울에서 유명대학을 나오고 정치에 뜻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강권에 의해 여중학교 밖에 안나온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진짜 사랑하는 여자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여자와 동거하며 자녀를 두고 있었다. 남편의 아버지가 죽자 이름뿐인 서류상의 부부는 이혼했고,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국회의원 부인으로 호칭해주었다.

그녀는 결혼하고 나서 부부합방도 하지 못했고, 따라서 자녀도 없었다. 비밀리에 남편의 요구로 이혼한 후 슬픈 나머지 산사를 찾았을 때, 자신을 진실로 위로해주는 주지스님을 만났고, 마침내 둘이는 부산 해운대 쪽으로 떠났고, 그 곳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박대보살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그 여자는 국회의원 부인이라는 허울로 호칭이 있었을 뿐, 사랑이 없는 그동안의 한많은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자신을 진실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빈 손으로 떠났을 뿐이었지. 자, 이제 우리는 그 여자를 동정해야지, 저주를 퍼붓는 일은 그만 합시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탁치는 것을 중단하고 회칼을 들고 포장마차로 생계를 한다는 전 주지스님과 그녀의 남은 행복을 위해 축원해주십시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오신 젊은 주지스님은 장차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일할 고승의 기운이 눈에 보이오. 산사는 이 스님에게 맡기고, 우리 모두 내일 아침 부처님께 참회하고 해산하여 각기 집으로 돌아갑시다!“

다음날, 박대보살은 노보살들을 인솔하고 산사를 떠나기 전 내게 엄숙히 말했다.
“나는 이제 늙어 산사에는 다시 오지 못합니다. 내세에 아미타불(無量壽) 세계에 만납시다. 부디, 공부많이 하시어 광제중생 하시기 바랍니다.” 박대보살은 어느 고승 못지 않은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그 후, 사고사찰이 정상화 되었다는 장문의 보고서를 해인사주지스님과 선배 재무스님에게 보냈다.

얼마 후 나는 해인사에서 교무국장일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있어 해인사로 떠났다. 여기서부터 주제가 있는 후일담(後日譚)이다. 선배 재무스님은 해인사 산내 비구니 암자에 사는 20대 초반의 비구니를 데리고 환속했다. 남의 마누리를 데리고 도망간 승려를 질타하더니 본인은 비구니를 데리고 떠난 것이다. 그 비구니는 선배의 돈을 몽땅 챙겨 같은 또래의 남자와 종적을 감추고, 선배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촌에서 물고기 잡는 작은 배 선원 노릇을 한다는 소식이 있다. 큰 걸망에 떡과 과일을 담아 어디론가 떠나던 해인사 주지스님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내가 시체를 수습했다. 아름답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산과 신비가 그윽해 보이는 산사에도 인생의 희비(喜悲)와 우비고뇌(憂悲苦惱)와 남녀의 사랑, 불시에 닥치는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모두가 인생무상이었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